IQ 77 아이큐77 제3화 05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제3화


05


고칠이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반에서 중간 이상은 했다. 아이큐는 거의 꼴찌였는데, 반 석차는 중상 정도할 때도 있었다는 것. 전교에서 아이큐 꼴찌는 72였나 보다.

그런데 아이큐가 72 라는 아이는 자신의 아이큐를 측정하는 게 왠지 싫어서 거의 다 찍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실질적으로는 고칠이가 꼴찌인 셈이고, 82정도 하는 친구가 꼴찌에서 두 번째 같다.

왼쪽 콧구멍이 유난히 커 보이는 아이큐가 82인 이 친구에 대한 평가는 친구들 마다 가지각색이다. 그 중에서 가장 공통된 의견이, 노력은 많이 하지만 성적은 그만큼 안 나온다는 거다. 거의 매일 새벽 1-2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적은 반에서 중하위권이다.


그런데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고 3때 막판에 그 친구가 대입모의고사 뿐 아니라 내신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올라가더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던 것이다.

다들 깜짝 놀라했다. 거의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고 3때 지나가다가 그 친구의 눈빛을 보면 밝게 살아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잠을 못 자서 충혈 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공부를 늦도록 한 모양이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그의 눈빛이었다. 왼쪽 콧구멍보다 더 커 보이는 눈빛이었다고나 할까.


두 번째 기적은 반에서 5등 꼴 하던 친구가 서울대에 들어간 것이다. 고칠이가 사는 지역의 고등학교는 전교 1등 해야 서울대를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반에서 5등이 서울대를 갔다는 것은 정말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독일(서독)이 엄청나게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일명 '라인강의 기적' 과도 같았다. 그 친구의 아이큐는 크게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기적이 고칠이에게 올 줄 알았지만, 고칠이는 대입시험에서 영어만 좀 자신이 있었지, 영어를 제외한 과목들은 반타작정도 한 점수로 4년제 대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고칠이는 결국 대입 재수를 선택했다. 부모님은 고칠이가 괜히 고생한다고 생각하셨는지, 집 가까운 전문대에 입학 원서 넣기를 바라셨다. 그럼에도 고칠이는 재수를 강행했다. 부모님과 그것 때문에 매일 싸우다시피 했지만 부모님이 지고 말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많지 않은가 보다.

고칠이의 재수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시작됐다. Y학원 종합반, S학원 단과반을 수강신청하며 처음에는 열심히 하는 듯 했다. 그러나 한두 달이 지나서는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는지, 술 먹고 늦게 지그재그(zigzag) 자로 집에 들어오더니 한두 번 구토하고, 머리 좋은 동생이 부럽다며 말하다가 잠들곤 했다.

고칠이 책상 위에는 『내일은 태양이 떠오르는가』라는 대입재수성공담 책이 나뒹굴고 있었고, 코피 닦은 휴지가 스탠드 한쪽 편에 처박혀 있었다.


고칠이의 재수생활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고칠씨는 대입 재수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의지가 한순간에 무너진 적도 있었다면서요?”

“맞아요. 그래서 가끔 대입재수 성공담 책을 읽기도 했어요.”

“생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는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이성보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보다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맹목적인 충동에 의한 삶의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말 중에 오해 부분이 있었어요. 그는 인간의 욕구는 끊임이 없어서 삶은, 욕구불만의 세계 최악의 세계라고 전해진 거죠. 그러다보니 이런 세상에서 살면 뭐하냐, 라는 식의 자살도 있었고요. 우리가 사회를 공부하고 논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 같은 지식이 궁극적으로 삶의 활력소가 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겠어요. 고칠씨는 당시 주변 또래들은 벌써 대학생인데, 자신이 너무 뒤쳐진 게 아니냐, 라는 식의 생각과 욕구불만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머리 나쁜 제가 재수 스트레스도 심한데 금욕적으로 살라하면, 진짜 죽으라는 의미 아닌가요?”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대입 재수하는 고칠씨에겐 위안을 준다기 보다는 하나의 채찍질이 될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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