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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미상궁 라하 Dec 28. 2023

카프카 <어느 시골 의사>의 공간 배경 변화 분석

작가의 일생 중 부친과의 관계에 대입하여

              

목차

서론: 카프카의 억눌린 욕구

본론

(1) 시골 의사의 집: 꿰뚫린 방어막, 나약했던 유년기 자아

(2) 소년 환자의 집: 배제된 아버지, 아버지 되기

(3) 설원: 닫힌 공간에서 떠돌기

결론: 반복되는 소극적 도망(~하지 않기 위한 도망)




서론: 카프카의 억눌린 욕구

프란츠 카프카는 연대와 유대를 잃어버린 현대인을 표현한 「변신」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더불어, 특히 그는 어찌할 수 없는 부조리를 맞닥뜨린 개인이 무너지는 비극을 주로 썼다.

그를 연구하는 학자 대부분은 이 작품세계가 부친에 의한 억압으로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오늘날 보기에도 ‘카프카의 시공간적 위치는 모순덩어리다.’ 국적은 체코인, 몸은 유대인, 정신은 독일인이었던 프란츠 카프카는 가부장적이고 목표지향적인 부친과 갈등을 겪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16세에 도시로 상경해 장사를 시작할 만큼 성취에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어머니, 율리에 뢰비는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다섯 형제를 돌보고 가사를 돌보면서 겸손함과 활동력을 함께 갖춘 순응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헤르만 카프카의 보조자 역할에 충실했으므로 카프카 부부는 남매 양육을 보모나 하녀들의 손에 맡겼다. 더욱이 카프카가 2세, 4세 무렵 태어난 게오르크와 하인리히는 길게 살지 못했으므로 그는 어려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훗날 카프카는 이를 두고 “우울하고 고독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와 그 부친의 갈등을 두고 「카프카의 전기」에서 ‘양친은 어린이가 부딪치는 최초의 문제이며, 대결해야 하는 최초의 저항이다. 인간은 인생과 세계를 적으로 투쟁을 시작하는데, 적으로 우선 출현하는 게 양친이다.’라고 밝혔다. 카프카의 편지나 일기에는 부친을 집안 폭군으로 고발하는 장면이 많다. 그의 엄격한 부친은 물질적 이득을 못 얻는 아들의 생활 관계를 심하게 비난했다. 헤르만이 보기에 프란츠는 지나치게 나약하고 신경이 예민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아버지가 지배하는 생기 없는 가정에서 여러 번 도피하려 했다. 그러므로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그의 소설은 폭군 같은 부친에 대한 고발과 못 이룬 욕망의 표현들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문학적 소명 의식이 뚜렷해, 비단 부친뿐 아니라 결혼 관계 등 사회 질서에 구속되는 상황 자체를 못 견뎌 하면서도 그러한 보편적 상황에 소속되지 못한 것을 불안해했다. 몇몇 평론가들이 그를 우유부단하다고 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뮌헨에 유학 가려 했으나 부친의 명령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고 시험을 거쳐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훗날 그는 이를 두고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았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헤르만 카프카가 16세에 가정에서 나와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프란츠의 태도는 다소 소극적이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당시의 성인 남성이 아버지의 요구에 욕망을 꺾는 것은 주체적이지 못하다고도 보인다. 그는 양친, 특히 아버지가 보이는 극단적이고 강렬한 욕망의 투사체(投射體)로서의 삶을 미처 버리지 못해 갈등했다. 필연적으로, 문학적 소명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욕망은 서로를 갉아먹으며 상존하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에선 ‘경험적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이 중지되고 구체적 대상도 파괴되었으며 자아의 통일성 역시 붕괴’하는데, 이 사실은 문학적 소명과 아버지의 요구 사이에서 분열된 자아 탓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카프카가 쓴 「어느 시골 의사」의 공간적 배경을 의사의 집, 환자의 집, 설원으로 나누고 작가가 그처럼 기획한 까닭을 부친과의 관계에서 유추하려 한다.     


본론

(1) 시골 의사의 집: 꿰뚫린 방어막, 나약했던 유년기 자아

나는 굉장히 당황해하고 있었다. 긴박한 외출을 해야 했던 것이다. 위급한 환자가 16킬로미터나 떨어진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그 환자 사이의 넓은 공간을 세찬 눈보라가 채우고 있었다.

「어느 시골 의사」는 위 문장들로 시작한다. 시골 마을의 공의(公醫)인 ‘나’는 밤 중에 연락을 받고 환자를 보러 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타인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혹감을 느끼는 중이다. 유일하게 있던 말 한 마리는 무리한 나머지 죽었다. 그는 하녀, 로자에게 말을 빌려오라고 시키고 진찰 가방을 든 채 뜰에 나와 서 있다. 로자는 말을 빌리는 데 실패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마구간도 아닌 돼지우리에서 눈이 파란 남자가 네발로 기어 나온다. 로자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니까요.”라고 말한다. 마부와 의사는 이 말을 듣고 웃는다. 그러나 마부는 마구를 가져다주는 로자의 뺨에 멋대로 이빨 자국을 낸다. 이에 의사가 “짐승 같은 놈”이라며 위협하나 마부는 마치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양” 의사의 위협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마부가 ‘나’를 보내고 로자와 단둘이 있겠다고 말하자, 로자는 집에 들어가 자물쇠를 잠그고 모든 불을 끈다. 마부는 제멋대로 마차를 출발시키고, 마차는 “물결에 휩쓸린 나무토막처럼 앞으로” 나아가 환자의 집 뜰로 의사를 옮겨놓는다.

주목할 점은 사람들은 자기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로자의 대사이다. 나머지 부분은 이미 다른 학자들이 연구한 바로 일반적인 해설이 정해졌으므로 본고에선 상기 두 지점을 카프카와 그 부친의 관계를 바탕으로 간단히 다루겠다.

카프카의 삶에서 로자는 펠리체 바우어를 비롯한, 그의 연인들이다. 자기 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은 의사나 마부가 해도 맥락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작가는 이 대사를 로자가 하게 시켰다. 돼지우리를 걷어차 마부를 나오게 한 인물은 의사지만, 현상을 파악해 한 문장으로 정리함으로써 두 사람을 웃게 한 재치있는 인물은 로자다. 그녀는 의사나 마부와 대조적으로 활동적인 인물이다. 시골 의사의 지시로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빌려달라고 청하러 다니거나 마부의 집에 남겠다는 발언 이후 집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불을 끄는 등, 그녀는 뜰에 가만히 서 있는 의사와 마부보다 훨씬 동적으로 행동한다. 작가는 그녀가 원초적 욕망인 마부에게 위해를 입는다고 암시하고, 의사는 그녀를 구하려 하지만 마차에 이끌려 환자의 집으로 운반된다. 그러나 이를 카프카와 부친의 관계에 대입한다면 의사의 집은 그 자체로 카프카의 어린 시절이 된다. 어렸던 그의 로자 같은 재치와 활기는 폭군 같은 아버지, 마부의 폭력으로 위험에 처한다. 현재의 카프카를 상징하는 의사는 그 과거를 제대로 마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아버지(마부)의 손뼉 신호에 맞춰 의지와 상관없이 집에서 분리된다.

즉 시골 의사의 집은 어른이 된 카프카가 바라본 유년 시절이다. 그는 떠나면서 집 문짝이 마부의 발길질로 부서지는 소릴 듣는다. 문을 잠그고 불을 꺼 숨는 등의 방어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부친의 폭력을 막지 못했다. 현재의 카프카(의사)는 그 장면을 계속 떠올리며 어린 자신(로자)를 지키지 못했음을 후회하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므로 그녀에게 돌아갈 방법은 요원하다.     


(2) 소년 환자의 집: 배제된 아버지, 아버지 되기

눈보라는 그쳐 있고 사방엔 달빛이 가득하다. 환자의 부모가 뛰어나오고, 그 뒤를 환자의 누이가 따르고 있다. (…) 그러나 나는 내가 더위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 생각한 환자의 누이가 내게서 털 외트를 벗기는 것을 내버려 둔다. 한 잔의 럼주를 마시라고 내놓으며 노인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 환자의 어머니는 침대 곁에 서서 나를 오라고 손짓한다.

집 뜰에 도착한 의사를 환자의 가족들은 부산스럽게 대접한다. 그들은 환자의 모, 부, 누이, 조부(혹은 조모)일 것이다. 그런데 각 인물의 행동 묘사 중 아버지의 묘사만 부재하다. 누이는 의사의 옷을 벗기고, 노인은 럼주를 내주면서 어머니는 침대 곁에서 손짓하는데 “환자의 부모가 뛰어나오고” 이후 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손님들이 들어서고 의사가 환자의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의 존재감은 전무하다.

당시 아버지는 가정에서 군림하는 독점적 지배자였다. 그는 규칙에 따르는 쪽이 아니라 규칙을 만들고 선고 내리는 역할이었다. 특히 자녀 처지에선 진로나 결혼 등을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는 어른 카프카가 생각하기에, 청소년 시절 자기에게는 죽음에 준하는 위기였던 모양이다. 의사는 치료하는 직업이면서 삶과 죽음을 선고하는 판결자이기도 하다. “부모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서 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묘사가 나오는 이유다. 어른이 된 카프카는 청소년기의 본인(소년 환자)을 둘러싼 상황을 두고 그의 혈연적 아버지를 배제한 다음, 그 자리에 어른 카프카를 끼워 넣었다. 그로써 소년 환자의 집에서 의사는 필연적으로 아버지의 역할이다. 그러나 소년 환자는 “의사 선생님, 저를 죽게 내버려 두세요.”라며 누운 자기를 일어서서 내려다보며 진찰하는 의사의 치료를 거부한다. 이불조차 걷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의사의 시각은 소년 환자에게 죽음의 충동을 부추길 뿐이다. 소년 환자는 자기의 상처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의사를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후 의사는 더 적극적인 관찰로 환자의 상처를 발견하고, 소년은 언뜻 삶에 대한 희망을 보이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자, 원하는 대로, 내가 스스로 자청한 것은 아니니까. 당신네들이 나를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사용하겠다면 그것 또한 용납하리라. 늙은 시골 의사인 내가, 하녀를 빼앗긴 채, 무슨 더 나은 것을 원하랴! (…)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고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하며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의사는 그를 설득하기에 이르고, 결국은 마치 희생 제물이 제단에 놓이듯 침대에 눕혀진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작가가 의사를 소년 환자 곁에 눕힌 것이다. 소년 환자는 그(아버지)에게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내며 힐난한다. 특이한 점은, 의사가 카프카의 아버지와 달리 어린 소년의 말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네. 수치스런 일이지.” (…) “언제나 나는 만족해야 하겠지요. 아름다운 상처 하나를 지니고 나는 세상에 왔어요.”

물론 그의 설득과 주장은 변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수용적인 태도다. 이에 소년 환자는 상처 하나를 갖고 세상에 왔다며 속내를 털어놓으나 의사는 그것이 도끼에 찍힌 상처라며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소위 남성적인 판결을 한다. 이것이 의사의 한계이자 소년 환자와의 관계에서 단절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카프카는 아버지를 제거한 인위적인 환경에 아버지가 되어 움직이는 현재의 자신을 등장시키고, 그가 청소년기의 자신(소년 환자)을 대하게 했다. 그의 내면 욕구는 아버지가 자기와 같은 눈높이에서 얘길 들어보길 바란 듯하다. 설령 그가 어린 청년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내의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몸으로 수평적 시선을 나누고 싶어 한 것이다. 이 욕망은 카프카 본인이 직접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3) 설원: 닫힌 공간에서 떠돌기

「어느 시골 의사」에는 물리적으로, 설원이 두 번 나온다.

그러나 쉿쉬거리며 마차가 내달리는 소리는 모든 감각에 균일하게 밀어닥치며 내 두 눈과 두 귀를 채운다.

이것이 첫 번째 설원이다. 의사의 집과 환자의 집 사이에 존재하는, 눈보라 치는 공간이다. 본고에서 카프카의 유년기 아버지로 상징되는, 마부의 손뼉으로 시작된 설원은 순식간에 끝난다. 첫 번째 이동이 가늠할 수도 없이 속도감이 빠른 건 그것이 타인의 요구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카프카의 공간은 무한히 확장되거나 축소된다. 즉 그의 세계는 자연의 모사가 아니라 인간이 상실감을 느끼는 폐쇄된, 혹은 버림받은 공간이다.” 로자와 환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유부단한 의사(카프카)는 첫 번째 설원의 틈에서 아무 의지,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작 두 문장 만에 청소년기로 이동한다. 무력한 유년기 자아로는 그 설원을 이겨낼 수 없는 까닭이다.

나는 소리쳤으나 힘차게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늙은이들처럼 천천히 우리는 눈보라 속을 나아가고 있었다. (…) 혹한 속에 내던져져, 현세의 마차와, 초현세의 말들을 타고, 늙은 나는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이 부분이 두 번째 설원이다. 의사는 벌거숭이 상태로 환자의 집에서 뛰쳐나와 마차에 짐가방 따위를 던져 싣고 급하게 말을 달린다. 그러나 모진 채찍질에도 말들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을 헤매기라도 하겠다는 양 천천히 걸음을 놀릴 뿐이다. 말들의 느릿한 걸음걸이는 앞선 첫 번째 설원의 속도감과 크게 대조적인데, 이 차이는 타인에 의해 쫓겨난 방황과 제 발로 시작한 방황은 그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는 눈밭을 방황하며 모든 걸 후회한다. 더불어, 야간에 울린 벨 소리와 마부의 추악한 요구, 소년 환자 가족들의 부름 등에 원망을 쏟아낸다. 이는 현재, 어른이 된 카프카의 내면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망을 쏟아낸다고 한들, 카프카(의사)는 로자가 있는 따듯한 집으로도, 환자의 폐쇄적인 집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억압당한 유년기와 아버지 되기로 청소년기를 돌아봄으로써 카프카는 옷가지를 벗은 알몸뚱이, 프란츠 카프카 그 자체가 된다. 마차 끝에 매달린 털 외투는 아버지에게 구속된, 떨치지 못한 미련이다. 카프카와 주인공의 방황은 로자가 있는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도, 화자의 집에 재차 방문하는 걸로도 해결할 수 없다. 두 마리 말은 자기들을 모는 자가 성장을 맞이해, 도망자로서가 아닌 방랑자로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영영 설원을 헤맬 것이다.

즉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는 데 급급한 그는 내면의 예술적 소명에 집중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인 방황을 겪게 되는 것이다.     


결론: 반복되는 소극적 도망

도망은 크게 적극적 도망과 소극적 도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것이고 후자는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 피하는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세계는 ‘악몽 같은 부조리함과 불가해한 초현실성에서 나오는 기묘한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는 ‘갑자기 닥친 부조리한 상황으로 인한 주인공의 불안과 우울’을 주로 표현했다. 이 감정들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속해야 할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데서 발생한다. 카프카는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프라하에 머물렀고 가정에서는 소외당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문학적 소명과 기존 질서에 편입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는 끊임없이 닥쳐오는 암막 같은 세계에서 분리되고자 발버둥 쳤다. 세계와의 분리는 단순히 개인의 폐쇄성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자립적인 공간 확보를 위한 의지 표현이다. 외부 세계는 끊임없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카프카에게 세속적 외부 세계는 아버지의 영역 자체였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카프카 자신을 아버지라는 개념에 영영 묶이게 만든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는 얘기에 자연스럽게 코끼리를 떠올리듯, 아버지를 피한다는 개념은 그 자체로 아버지의 영역이 기준이 된다. 한때 카프카는 ‘아버지를 세계 지도에 팔다리를 뻗게 해 눕혀놓고, 그의 신체가 닿지 않는 곳만이 자기 영역이 될 것이다’라고 「아버님께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바 있다. 그의 내면 투쟁은 분명한 힘을 잃고 우유부단함으로 전락할 위기를 여러 번 겪는다. 그때마다 문학이 그를 구원했으나 본질적으로 이러한 위기와 방황은 그가 제 영역에서 아버지라는 폭력적 군주상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그가 지배하는 영역을 두고 피신하듯 떠나겠다는 결정에서 온다. ‘외부 세계와 주인공의 내면세계는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통일적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벗어날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그의 투쟁을 지엽적이고 국소적인 것으로 전락시킨다.

카프카는 문학적 소명이 뚜렷해 여러 특이한 작품을 남긴 20세기 문호다. 그러나 이러한 소명 의식은 그 자신의 주체성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프라하, 아버지, 문학에 매여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었다. 카프카의 도망은 적극적 탐색이 아닌 소극적 도피에 그쳤다. 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성년기를 거치며 형성된 극도의 위기감과 불안이 원인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다만 그의 삶과 작품이 무의미했다고는 볼 수 없다. 카프카의 작품들은 사회적 격변기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므로 현대인들이 그것에서 깊은 통찰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란츠 카프카는 도망자이면서 개척자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1차 문헌>

- 프란츠 카프카, 김영옥 옮김, 「어느 시골 의사」,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문학과지성사, 1998, p.20~p.31      

<2차 문헌>

- 김태환, 「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카프카의 「시골 의사」에 대한 (비)프로이트적 독해」, 한국카프카학회, 2017, p.1

- 박환덕,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과 생애」, 열음사, 1992, p.334

- 최은혜, 「단편 애니메이션 작가 야마무라 코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연출 특성 연

- 단편 애니메이션 <프란츠 카프카의 시골의사>를 중심으로」, 조형미디어학 17권 4호, 2014, p.303

- 한봉흠, 「카프카의 난해성과 그 구성요소」, 『인문론집』 제8집, 1967, p.51

- 한석종,  「카프카의 초기 작품에 나타난 삶과 공간의 문제」, 한국카프카학회, 1998,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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