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모아나2

스포 주의: 주인공이 주인공이 아닌, 허술한 이야기

by 기미상궁 라하

안녕하세요, 대중문화 평론에 도전하는 라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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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늘도 수다 떨 만한 소재를 들고 왔습니다.


이렇게 찾아뵌 건 최근 디즈니에서 개봉한 모아나2를 보고 매우 크게 실망한 까닭인데요.

모아나2 애니메이션 포스터. 좌에서 우로 마우이, 모아나.
선조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부름을 받은 ‘모아나’가 부족의 파괴를 막기 위해 전설 속 영웅 ‘마우이’와 새로운 선원들과 함께 숨겨진 고대 섬의 저주를 깨러 떠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담은 스펙터클 오션 어드벤처

이야기 전개에서 온갖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가장 큰 실망은 영화가 모아나가 아닌, 그의 파트너인 마우이에게 대부분의 분량이 집중되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어른을 겨냥한 것인지 어린이를 겨냥한 것인지 어느 쪽이든 미묘하게 모자란 주제의식도 큰 몫을 했습니다.

신나는 음악과 율동, 고퀄리티 렌더링에 슈퍼 컴퓨터가 필요했을 법한 그래픽을 제하면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나 싶었어요.

보는 내내 '이게 이렇게 된다고?'와 '여기서 얘가 이런다고?'의 연속이었습니다.


만약 모아나2가 흥행을 못 한다면 그건 모아나가 여성 청소년 소수민족 비 백인 주연이어서가 아니라 겉껍질만 여성 주연이고 속알맹이는 남성 파트너의 이야기여서일 겁니다.

미국식 보수의 마지노선이라는 디즈니식 정치적 올바름에 많은 걸 바랄 수는 없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웠어요.


우선, 전개 속도가 매우 빨라서 주인공인 모아나의 내적갈등이나 욕망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모아나는 전형적인, '계시를 받아 모험을 떠나는 영웅'인데요.

그는 영화 초반부에 본인이 사는 섬이 아닌 다른 섬이 있고, 거기에 사람이 산다는 단서를 얻습니다.

그리고 조상님의 계시를 받아 그들을 찾으러 떠나죠.

왜냐면 다른 부족과 연결되지 않으면 섬 사람들이 멸망한다고 조상님이 말해주었기 때문이에요.


모아나는 모투누이 섬의 족장이자 모험가, 길잡이로서 동료 세 명, 동물 파트너와 함께 다른 섬의 문명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려면 기약 없는 항해를 하면서 어느 악신이 건 저주를 깨야 합니다.

왜냐면 악신이 다른 섬의 문명(을 찾는 거점 섬)에 저주를 걸어 바닷속으로 묻어버렸거든요.

즉, 모아나는 바닷속의 섬을 끌어올린 다음 그 땅을 인간의 몸으로 딛어 저주를 풀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이게 이렇게 된다고?' 싶었습니다.


첫째로는 모아나가 가족 및 고향과 이별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떠나는 데 본인의 의지가 없었다는 점인데요.


물론 신화 속 오디세우스도 예언을 피하려 떠난다지만 그건 2천 년 전이나 통한다고 봅니다.

이야기 방식이나 소재 등이 발전한 21세기에는 떠밀려서 모험하는 영웅이라는 특성이 적극적이고 용맹한 모아나라는 인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특성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사실 모아나 내면의, 사적인 고뇌와 욕망이 보고 싶었는데 디즈니는 제게 모두를 위해 여정을 떠나는 영웅을 쥐여주더군요.

이건 1편과 아주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1편에서는 모아나가 모험을 떠나겠다는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갖고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주인공 인물 해석이 모아나2가 모아나1보다 퇴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족장으로서 책임질 게 많다고는 하지만 그가 정말 가족과 섬만을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했다기엔 그 수평이 맞지 않는다고 보입니다.


'고생에 상응하는 보상' 구조는 관객에게 안정감과 기대를 주고 향후 주인공의 앞날을 응원하도록 공감하게 합니다.

만약 모아나가 섬 전체가 아닌, 소중한 특정인을 위해 떠나거나 섬 사람들과의 아주 긴밀한 사연이 있었다면 그렇구나, 하고 이해했을 거예요.

결국 모아나는 명확하지 않은 대상을 지키려 목숨을 건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그 모험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세 사람까지 끌어들이죠.

그 동료들이 모아나의 모험에 합류하는 까닭은 너무 가볍고요.

모아나 동료들.jpg 모아나의 동료들. 좌에서 우로 기술자, 뱃사공, 농부.

그들은 기술자, 농부, 뱃사공입니다.

저라면 농부 캐릭터를 없애고, 최근 디즈니의 캐릭터 스펙트럼 다양화를 위해서라면 기술자와 뱃사공을 한 명의 장년 여성 인물로 합쳤을 겁니다.

그러면 동료와 모아나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구조를 정리하고 서사를 간추릴 수 있으니까요.

동료들이 각자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 역할이 반드시 따로 떨어진 인물이었어야 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여기서 이렇게 된다고?'라고 계속해서 의문이 든 두 번째 이유는 모아나의 파트너인 마우이가 너무 큰 분량을 잡아먹어 주객이 전도됐다는 점입니다.

바닷속에 잠긴 섬을 끌어올리고 인간이 그 땅을 밟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임무를 물어오는 것도 마우이,
섬을 끌어올리는 것도 (신적인 능력을 얻은 모아나가 아닌) 마우이,
반인반신의 몸이지만 신적인 힘을 전부 희생하는 것도 마우이,
주인공을 북돋아 일으키면서 자기 서사를 푸는 것도 마우이, 번개와 전투를 치르는 것도 마우이,
주인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제일 처음 나서는 것도 마우이.
마우이.jpg
저는 <모아나2>가 아니라 <마우이>를 보고 온 게 아닐까요?


모아나의 이야기는 마우이의 성장과 희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프롤로그였고요.


그는 모아나의 모험에 방해만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대적자 등 주인공의 장애물이 아닌, 주인공 중점 서사의 중심을 흐려놓는 식의 방해입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모아나는 시련을 겪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린이 관객의 집중 시간과 영화의 러닝타임 문제로 구체적인 임무 내용을 주인공에게 알리는 건 마우이가 하는 게 맞긴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심이 되는 '괴물 폭풍'과의 전투나 '거대 조개'를 무력화하는 임무, 번개를 뚫고 섬의 중심까지 뚫고 들어가는 시련을 전부 다른 인물들이 해 버렸어요.


괴물 폭풍과의 전투는 마우이가, 거대 조개 무력화는 코코넛이, 번개를 뚫는 건 기술자 동료가 했지요.

모아나는 섬에 닿는 훌륭한 계책을 내긴 하지만 아주 마지막의 마지막에나 그렇게 합니다.

그 직전에는 마우이가 모아나를 위해 희생하느라 반신의 힘과 고유한 무기를 잃어버리고요.


영웅이자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인 모아나는 명확한 욕망도, 지켜야 할 구체적인 가치도, 상황을 헤쳐나가는 지혜도 없는 말 그대로 고전적인 디즈니식 '공주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아나와 마우이는 대등한 파트너 관계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모아나가 마우이를 동료로 아끼는 것을 넘어서서 너무 큰 의존을 보입니다.


물론, 모아나는 마우이가 위험에 처하는 걸 그대로 둘 만큼 냉혈한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이 헤쳐나가야 하는 시련을 '마우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식으로 나누려 하거나 마우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켜야 할 동료들이 셋이나 있음에도) 가족을 떠나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절망을 느낀다든가 하는 부분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그 모습이 꼭 파트너를 잃은 전사가 아닌, 양육자를 잃은 아이처럼 보이도록 연출되었거든요. 표정이나 동작, 얼굴빛과 카메라 각도 등으로요.


더불어, 모아나의 멘토가 되는, 박쥐를 닮은 신이 등장하는데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모아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기운을 북돋아줍니다.

또,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하는 것도 모아나가 아니라 그의 동료 세 명 중 하나인 뱃사공이지요.


모아나는 그가 죽을 뻔했다는 점을 두고 리더로서 절망에 빠지지만 어째서인지 마우이의 '넌 짱이야!'라는 노래 한 곡으로 회복하더니 동료들에게 돌아가 그들이 수리한 새 카누를 얻습니다.

그 카누도 나중에는 박살이 나지만 사실 모아나가 시련을 겪고 그 보상으로 얻은 게 아니므로 크게 안타깝거나 긴장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카누야 다시 얻으면 되니까요.


그보다, 영화 속 세계가 소위 '주인공 버프(보정)'이 강하게 들어갔다는 인상 때문에 모아나가 그 어떤 위기에 처해도 걱정이 되거나 긴장감이 들지 않더군요.

그는 섬에 닿는 전략을 직접 행동에 옮기는 과정에서 번개에 맞아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우이가 다가와 노래를 부르고 조상님들이 몰려들어서 그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로서 모아나는 부활합니다. 관객은 그의 몸에 새겨지는 문신을 보고 그가 반신의 힘을 얻었다는 암시를 받습니다.


하지만, 번개라니요! 관객은 모아나가 희생을 겪으리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그 희생이 번개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왜냐하면 그때까지도 모아나의 적수나 적대 요소가 전혀 나오지 않았거든요.

즉 관객은 모아나가 '저주를 깨기'위해 '위험'에 처할 거라는 공식조차 익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디즈니는 엉뚱한 시련인 '번개'를 보내더군요.

상상치 못한 것을 맞닥뜨리는 기분 좋은 놀람과 이야기에 따돌림 받는 듯한 엉뚱한 느낌은 전혀 다른데 말이에요.

모아나3.jpg
주인공의 희생은 반드시 얻으려는 보상이나 지향하는 가치, 목적과 욕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게 제 기본 주장입니다. 물론, 대중문화 한정으로요.


그런데 모아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저주를 깬다는 보상에 따르는 위험을 전혀 인지하지 않은 상태로 몸을 던졌습니다.

제 말은,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맛없다와 맛이 없다(no taste)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그 순간의 모아나에게는 각오가 아예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객은 모아나가 바다로 뛰어들면서 '무언가를 하긴 하겠구나'라고는 생각하지만 희생을 감수하고 위대한 선택을 했다고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장애물 후보(사실 이 후보군도 텅 비어 있었지만요.)에 들지도 못한 번개가 대뜸 등장해 모아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니요.


저라면 모아나가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그의 동료의 입을 빌려서 "그렇게 하면 너는 죽을 수도 있어!"라고 외쳤을 겁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그의 구체적인 계획이 드러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눈빛만으로 알아차렸다고 하면 되니까요.

그래야 관객이 모아나의 선택으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런데 모아나는 정말 본인의 계획을 설명하지도, 각오를 보이지도 않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더군요.

그때부터 정말 아득해졌습니다.

뭐라도 사정이 있겠지, 뭐라도 모아나의 이야기가 나오겠지, 싶어서 참고 참으면서 봤는데 그 즈음에는 정말 이야기 막바지였거든요.


영화를 볼 때면 두려움이 드는 두 가지 상황이 있는에요.

첫째는 '모든 일이 해결됐는데 이렇게 오래 남았다고?'이고 둘째는 '일이 하나도 안 풀렸는데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입니다.

모아나2는 정말이지 두 놀라움이 고루 섞여 있었습니다.


마우이가 모든 일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첫째, 모아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둘째였지요.

그가 예상치 못한 희생을 하는 건 그렇다고 쳐도, 또 아무 고생 없이 마우이와 조상님들만의 도움으로 생명을 되찾게 되는 연출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장면에서는 정말 마우이가 없어도 됐거든요.

마우이가 필요조건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모아나가 꿈속에서 짧은 환상을 보고, 그 안에서 올바른 선택을 한 보상으로 조상님들에게 힘(생명이든 반신으로서의 능력이든)을 받았다는 게 더 알맞았어요.

왜냐하면 모아나는 마우이가 없어도 앞길을 헤쳐나가는, '모투누이의 모아나'인걸요!


모아나.jpg 운명을 이끄는 길잡이, 모아나. 사실상 길잡이 역할을 외주 준 것 같은 연출이었습니다. 인물이 너무 많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주된 적대자인 악신이 왜 사람들을 고립시켜 인간의 힘을 약화하려 하는지를 전혀 모르겠다는 게 혼란스러웠습니다.


소위 악역의 신비로움은 분명 지켜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존재가 미지의 무언가이기 때문에 대비할 수 없다는 그 위기감이 정말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모아나2의 악역은 그러한 신비주의보다는 세계정복을 외치는 막연한 악당으로 보였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고조시키지도, 어떤 호승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이야기에서 주인공만큼 중요한 존재가 대적자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이 악신은 본편이 아닌 쿠키영상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낼 뿐(제게는 마블의 타노스를 흉내내는 걸로 보이더군요. 심지어 색감도 보라색이었어요!) 그 어떤 음모도, 구체적인 욕망이나 계획도 내비치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관객이 다음 편을 기대할 만큼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의뭉스러운 엑스트라1 정도 인상이었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인상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가 자기를 배신한 걸로 보이는 박쥐 신을 가두거나 얼려버리지 않고(피와 죽음이 안 나오려면 어쩔 수 없죠.) 단지 수갑만 채운다는 건 퍽 온순하구나, 하는 인상만 주었지요.


결과적으로 모아나는

(1) 명확한 목표도 없이 위험한 일에 섬 주민들을 데려가고
(2) 마우이와 동료들에게 모든 일을 의탁한 다음 가끔씩 좋은 생각을 내면서
(3) 그닥 위험해 보이지 않는 '신적인' 대적자에게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합당한 노력 없이 과한 보상을 얻는 얌체가 된 것이지요.


모아나2를 보면서, 깨달음을 여럿 얻었습니다.

이야기를 짓는 작가 입장에서요. 어떻게 보면 주의사항이지요.



첫째, 영웅에겐 목표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막연히 세계 평화를 위한다든가 고향을 지킨다든가 해서는 안 된다.

즉, 영웅에겐 '원하는 상황'이나 '절대 원하지 않는 상황'이 (신체적, 심리적, 직업적) 죽음으리 감수할 만큼 분명해야 한다.


둘째, 영웅은 보상에 걸맞거나 그 이상의 (내적이나 외적인) 시련을 겪어야 한다.

그 시련은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규모와 난이도가 예측되어야 한다.

관객(혹은 독자 등 감상자)이 주인공이 하는 일이 매우 어렵고 고된 선택이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


셋째, 인물은 적을수록 좋다.

인물의 등장은 작품 내에서는 우연일지언정 작가로는 의도가 분명한 필요조건이어야 한다.

인물을 여럿 등장하게 하려면 그들이 '반드시 분명한 역할을 갖고 따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어야 한다.


넷째, 주인공의 대적, 적대 세력도 위 세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이 점들은 아무래도 제가 지향하는 이야기 구조가 '무언가를 끼워넣을 틈도, 덜어낼 수도 없는, 촘촘한 필연으로만 된 구성'이라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아나2는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엔딩크레딧에 스토리 작가가 스무 명 정도 나오는데, '스무 명이나 썼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기대 이하였어요.


미운 게 왜 미운지 알면 더 잘 미워할 수 있다지요?

좋은 게 왜 좋은지 알면 더 잘 좋아할 수 있고요.


부디 모아나3에서는 이런 이상한 점들이 한껏 보완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라나는 소녀들이 참고할 만한, 모아나다운 모아나로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치 불 뿜기를 마치니 속이 시원하네요!

브런치를 거의 대나무숲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독자님들께서도 불을 뿜을 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댓글로 찾아와 주세요.


저는 정말 가 보겠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좋은 밤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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