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를 넘나드는 뒤집기 서사

양귀자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by 기미상궁 라하

뒤집어엎겠다는 각오

내가 반드시 똑같이 되갚아 주리라. 뒤집어엎어 내 괴로움을 알게 할 테다.

부조리에 처한 약자라면, 적어도 본인이 그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대개 이 경우에는 명확한 보복 대상이 있다. 나를 이렇게밖에 대하지 못하는 그 사람을 응징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이 특정인이 아닌, 거대한 사회를 굴리는 제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해자는 더 이상 가해‘자(者)’로 쓰이지 못하고, 어딜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마왕으로 다가온다. 본래 마왕을 쓰러뜨리려면 그것의 적수는 초 인간적인 용사급은 되어야 한다.

주인공 강민주가 경제적, 지적, 이성적(理性的), 육체적 강함을 갖춘 여성 인물로 창조된 데는 그러한 맥락이 있다. 그는 모친에게 물려받은 재산과 본인이 쌓아 올린 대범한 이성, 백승하쯤은 제압할 수 있는 무력을 지녔다. ‘절대 충동적이지 않’으며 본인이 ‘초월자라는 것을, 응징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아는 그는, 사회의 남성주의가 교묘하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지켜보며 깨달았다. 그래서 강민주는 이러한 부조리에 인기 절정의 남배우 백승하가 부역하고 있음을 근거로, 그를 적대하고 납치해 감금한다. 그러나 강민주는 백승하의 부드러움으로 전사의 태도를 잃는다. 그로써 강민주는 백승하가 마왕이 아닌, 인간임을 받아들이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한 수하인 황남기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이야기를 맺는다.

한 인물이 세계와의 대립을 통해 세계의 총체성을 인식하고 자아를 획득하는 것이 소설의 본질이라면, 강민주는 그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승하 납치 준비를 하면서부터 죽음을 맞기까지, 그는 본인의 앞선 행동과 모순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도 그간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시야를 확장한다. 이제, 강민주의 변화가 빚어내는 메시지를 짚어내는 여정의 출발선에 선다.




수직적 판단을 배반하기

작중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총 네 명이다. 강민주, 백승하, 황남기, 김인수가 그들이다. 강민주 27세 대학원생 여성으로 인기 절정의 남배우 백승하를 납치하며, 황남기는 강민주의 충실한 수하로서 그를 돕는다. 김인수는 강민주의 구애자 겸 스토커다. 백승하를 제한 그들은 이야기 진행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보이는데, 강민주가 백승화에게 감화되며 충직하던 황남기가 반항을 보이고 김인수는 ‘보통의 삶과 보통의 도덕성’을 지닌 듯 보였으나 강민주에게 비상식적일 만큼 집착하게 된다.

작품 초반에 네 사람은 각각 극도로 이성적인 주인공, 가면을 쓰고 있는 가식적인 남배우, 충실한 심복, 평범한 사내로 묘사된다. 이러한 서술 겸 판단은 서술자이자 초점자인 강민주의 것인데, 위 네 인물은 그의 판단을 완전히 배반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이 배반은 ‘초월자’로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강민주의 판단을 뒤집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강민주는 그들을 관찰하지만, 동시에 관찰당한다. 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러한 구조는 언제든 뒤집힌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도드라지는 인물은 단연 강민주와 백승하, 두 사람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인물의 일관적/비일관적 변화가 아닌, ‘강민주의 판단’을 얼마나 배신하느냐에 따라 두 인물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사회 통념에 따라 거칠고 수직적이며 이성을 중시하고 가차 없는 성질을 남성성, 부드럽고 수평적이며 감성을 중시하고 융통성 있는 성질을 여성성으로 분류한다면, 초반부의 강민주는 이렇게 정해진 범주에서 명확히 남성성에 가까운 인물이다. 반면 백승하는 여성성의 범주에 있다.

강민주는 틀림없이 자아도취적인 인물이다. 그는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이며 본인이 ‘텍스트 다음’, 즉 그 너머에 있다고 진술한다. 또,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 지경’이라고도 한다. 그는 작품 내내 ‘이 강민주는’이라는 주어를 반복해 사용하면서 자기가 여타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세뇌한다. 그는 타인과 자기를 분리해 자기를 다른 인간과 완전히 분리한다. 즉, 강민주는 여태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 믿음과 함께 살아갈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의식은 모친의 찬사를 의심 없이 수용한 결과다.

널 낳은 사람은 내가 분명하지만 내 마음대로 널 키울 수가 없어. 왜냐면 난 다만 너를 잠시 맡아 보호하고 있을 뿐, 정말 너를 돌보는 것은 내가 아니고 신이니까. 너는 하늘의 어떤 신이 내게 잠시 보낸 자식이야. 너는 신이 키우는 자식이다.

신 같은 초월자의 속성 중 하나는 불변이다. 전지, 전능, 전선(全善)한 그는 변할 필요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강민주는 신 같은 초월자와 자기를 동일시하지만 이내 백승하의 ‘부드러움’으로 인해 변화를 택하면서 그러한 지위를 내려놓고 인간의 범주로 내려와 다른 이들과 연결된다. 즉 자기 자신에 관한 판단을 정면으로 배신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그의 변화를 이끄는 인물인 백승하는 앞서 언급한 남성적 특징이 거세되었다고 해도 좋을 인물이다. 그는 연결되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그는 텔레비전과 잡지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연예인이며 가정의 충실하고 다정한 가장이자 뭇 여성들을 ‘부드러움’으로 사로잡았다. 이는 강민주의 압도적인 힘과 재력, 권력과는 다른 방식이다. 강민주는 그를 적대하며 납치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여자들을 교란한 죄,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한 죄, 자신이 택한 남자가 나빴던 것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기며 여자들을 운명주의에 빠뜨린 죄. 그것만으로도 나는 백승하를 용서할 수가 없다.
여배우들한테 씌워지는 추문이 남자 배우한테도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보여줄 것이다. 인기 여배우가 백지수표를 받고 몸을 팔 수 있다면 인기 남자 배우도 여자한테 팔려 갈 수 있는 것이다, 왜 안 되겠는가. (…) 이 사회의 고정 관념을 나는 역으로 깨부술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는 북어와 같은 급수를 굳이 여자라는 성(性)에 한정 짓고 있습니다만, 사흘에 한 번은 두들겨 패야 다소곳하다는 점에서는 남자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저는 이번 기회에 확인하였답니다.

백승하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 랭킹 1위를 놓치는 법이 없는, 소위 국민 남편이다. 그는 독보적으로 잘생기거나 특별히 남성적이긴커녕 다정하고 온화하다. 강민주는 그의 존재 때문에, 여성들이 성차별적 불이익을 자기의 선택을 탓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그의 매력적인 웃음 뒤에 숨겨진 추악한 본성’을 공개해 환상을 깰 작정이다.

그러나 작중 가장 변화가 적은 백승하는 일관적으로 ‘부드럽고’ 배려 깊다. 그 다정함은 확장된 부성애라고 할 법하다. 백승하는 그를 사육하고 지배하려는 강민주마저 걱정하는 인물이다. 대범하게 그의 아들에게 생일선물을 보내는 납치범에게 ‘이런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당신이 위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염려한다. 그에겐 가면도, 가식도 없다. 소위 성모 같은 자애로 강민주를 품은 것이다. 그로써 백승하는 강민주가 훗날 높이 평가하는 ‘강민주마저 부드럽게 풀어내는 위대한 모성(母城)’이자 그의 가장 큰 오판이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고 관계의 주도권을 넘겼다 받았다가 하면서 수직적 관계의 경계를 가로지르게 된다.

강민주는 27년의 삶을 살아가면서 수직적 관계를 다수 경험했다. 부친이 폭력, 모친에게 물려받은 재력에 말미암은 압도적인 지성과 여유는 늘 위에서 아래로 행해졌다. 일방적 관찰 구조를 내면화한 그는 황남기도, 김인수도 그렇게 판단한다. 그러나 백승하만은 다르다. 강민주는 백승하의 부드러움을 접하며 최초의 수평적 관계를 경험한다. 그는 황남기와 어머니처럼 강민주를 숭배하지도, 아버지나 김인수처럼 깔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여성과 남성, 납치범과 피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분법을 해체한다. 그러한 교차성은 강민주의 ‘내려다본’ 판단에의 배신이자 뒤집기이다. 그럼에도 둘은 단순히 위아래가 바뀐 것을 넘어, 엎치락뒤치락 반복해 종래엔 눈높이를 맞춘다. 더불어, 작품 끝까지 그가 ‘초월자’를 자칭하고 백승하가 ‘부드러움’의 상징인 상황에서 비단 개인 간의 문제뿐 아니라 세계로까지 확장된다. 단순 뒤집기가 아닌, 얽히고설킨 관계로 뭉쳐 수평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로써 백승하는 응징해야 할 제도의 부역자가 아닌 일개 개인으로 전락하는 동시에, 강민주의 세계에 남은 모든 상냥함을 포괄한 어떠한 상징으로 변모한다.

위태로운 수직관계, 고조되는 모순

겉으로 따지고 보자면 이 이야기는 강민주가 백승하를 납치했다가 그와 인간적 유대를 쌓으며 성장하고, 스토킹과 믿었던 수하의 배신으로 파멸 같은 죽음을 맞는 구조다. 그러나 겉껍질과 달리 알맹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작품은 대체로 순행적인 플롯으로 구성되어 각 장의 첫머리에 주인공인 강민주의 노트에서 발췌한 글을 삽입했다. 극단적인 상황 설정과 앞으로 닥칠 경찰의 추격, 강민주의 변화 등으로 긴장감은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 8개월 동안의 일을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자연적 시간을 생략하면서 진행되는데, 작중 쓰인 장으로 나누자면 세 부분이 된다. 납치 준비 과정인 ‘절망의 텍스트’와 ‘침몰하는 여행의 시작’, 납치 전반부인 ‘외줄타기, 혹은 대결’과 ‘금지된 것들과의 대화’, 납치 후반부인 ‘황홀한 비극’과 ‘여자와 남자’ 및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다. 각각을 1부, 2부, 3부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싶다. 각 부를 나눈 기준은 강민주와 백승하의 상하관계 하강 정도를 따랐다. 1부에서 강민주는 스크랩북과 잡지, 신문 기사, TV 등으로 백승하를 간접적으로 접하며 그를 통째로 알고 있다고 믿는다. 강민주는 자기 자신을 초월자로 칭하고 마치 인간이 개미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 2부에서 역시, ’백승하는 벌써 이 강민주에게 사육당하기 시작‘했다며 그를 잔인하게 폭행했다가 친절히 대하는, ’당근과 채찍‘ 기법을 쓴다. 그는 백승하를 동등한 인간이 아닌 어떤 짐승의 부류로 보고 있다. 그러나 3부에 이르러, 강민주는 변한다. 백승하가 ‘지구가 자기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속에 갇혀 사는’ ‘아직 많은 부분 수성(獸性)이 남아 있는 야만인’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강민주가 형성해 온 상하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백승하는 짐승이 아닌 강민주라는 세계의 유일한 인간이 되고, 강민주는 인간의 몸에 갇힌 초월자이므로 그들은 신체적으로 수평적 위치에 놓인다. 따라서 강민주는 그를 감히 해하지 못한다. 그를 해치는 것은 곧 자기의 존재의의를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티타임을 연장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에요. 난 그만 나가고 싶어요.”
그래서 백승하에게 이 기사를 읽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백승하가 상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나는 다 자란 이 어린 남자를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연습에 임하는 동안은 그가 나의 지휘자다. 나는 기꺼이 그의 통제하에 있다.

그래서 강민주는 그냥 나가면 될 방에서 굳이 허락을 구하고, 백승하의 상심을 염려하면서 주도권을 자유롭게 주고받게 된다. 백승하 역시 시종일관 강민주를 걱정한다. 강민주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있는 이 남자는, 사회자의 말로’ 그가 상처를 입을까 봐 걱정한다. 그들은 걱정이라는 형태로 존중과 다정함을 주고받는다. 타인이라는 한계와 상황의 급박성, 변화라는 모순을 초월한 유대는 강민주가 장의 첫머리 메모로 주장하는, ‘모성의 위대함’과도 닿는다. 어머니는 자녀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믿는 동시에 그들에게 통제당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존재를 마치 가족처럼 염려하고 아낀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향으로 흐르는 개울이 아닌, 한곳에 뭉쳐 찰랑이는 못으로 재구성된다. ‘결코 하나의 단어로 묶을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려는 화합의 각오와 상황의 긴장감은 이오네스코의 연극, 『수업』을 연습, 공연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오네스코는 반연극을 주창하며 조리의 끝판왕인 언어의 해체를 통해 사상의 해체, 조리 세계의 부조리함을 말해왔다. 재기발랄한 여학생과 소극적인 교수의 수업은 말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관계가 역전된다. 여학생은 생기를 잃고 교수는 광기에 젖어 학생을 살해하는 데 이른다. 관계의 주도성을 쥐고 있던 학생은 교수의 손아귀에 희생양으로 전락한다. 강민주와 백승하의 연극 연습은 얼핏 그들의 실제 관계를 역전시킨 듯하다. 그러나 작중의 『수업』과 독자의 세계에 있는 『수업』은 꽤 다르다. 실제 『수업』의 막바지 부분에서, 학생을 살해한 교수는 그의 시신을 옮겨 숨기고 다시 새로운 학생을 맞는다. 여학생의 죽음과 교수의 광기는 돌고 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선 이러한 반복이 생략되어 있다. 더불어, 강민주와 백승하는 교수와 학생 구조에 정확히 들어맞지 못한다. 강민주는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백승하는 강민주에게 살해당하지 않는다.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 상황이 원작처럼 반복될 가능성은 ‘불가피한 연정의 광기’로 인해 황남기가 강민주를 살해하면서 끊겼다. 이제 더는 학생 역을 할 강민주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은 제정신이 아니게 된 교수의 손에 죽지만 강민주는 연극 세계 밖에 놓인 광기에 살해당한다. 그 결말을 두고, 작가는 ‘강민주의 테러가 잔인한 보복으로 끝나지 않고 가슴 더운 인간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얘기했다. 강민주와 백승하, 두 사람은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 강민주의 죽음은 누구의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황남기와 김인수는 몰래 반란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대결하지 않았고, 백승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로써 두 사람이 다진 가족애의 시간은 그 자체로 영영 닫힌 밀폐용기에 담은 듯 보존되었다. 썩지 않는 기억은 분명히 납치 사건의 끝(ending)을 의미하지만, 남겨진 백승하와 작품 밖 독자에겐 단지 종결(closure)일 뿐이다. 그 이후의 삶은 이야기로 남아 영영 이어지기 때문이다. 삶은 연극과 같아서 ‘마지막 대사를 발음할 때까지 중단할 수 없’는 탓이다.




죽음을 거슬러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의지

여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페미니즘은 물론 리얼리즘 학파에서도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아 왔다. 얼핏 보면 냉철한 여성 주인공이 남성 주인공의 팜므파탈적 유혹에 빠져 일을 망치고 죽음을 자초하는 얘기로 보이는 탓이다. 그렇게 본다면, 강민주의 작전과 죽음은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로의 변화나 다름없다. 아이 등으로 대표되는 애정 등에 저당잡혀 제 발로 죽음에 걸어들어가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 강민주의 행동이 직접 투쟁해서 얻은 게 아닌, 단지 모친으로부터 물려받기만 한 힘으로 하는 상징적 복수에 그친다는 점에서도 그에게 초월자의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곤 했다. 더욱이 그는 인내의 삶을 사는 여성들을 깔보기도 했으므로 이는 일부 합당하다. 여성들이 주변인이자 이방인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에게 없는,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향한 욕망을 단지 모방하게 된다. 그로써 스스로 가진 사랑, 공생력, 창조성 등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여성으로 산다는 건 가부장적 의식을 내면화해 인내와 희생의 삶을 사느냐, 아니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투쟁의 삶을 사느냐라고도 한다. 이런 점에서 강민주의 힘을 향한 갈망은 어린 시절 폭력적인 부친의 그것을 빼닮고자 하는 맥락에서 나온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는 약자의 편에 서있을 뿐, 본인의 약자성을 철저히 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중 인물들이 정말 이러한 여성과 남성이라는 전형성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인가?

강민주는 황남기를 당연하게 부리고 백승하를 통제하는 지배자 어른다운 인물이면서 ‘어머니의 베개’가 없으면 세상과 단절되는, 성장하지 못한 자녀다. 백승하는 여타 남성들과 달리 상냥함의 미덕을 아는, 소위 여성스러운 존재다. 황남기는 강인한 육체와 우직한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감정에 치우쳐 제멋대로 강민주의 의중을 재단한다. ‘선생님이 원했던 최후는 틀림없이 그런 것이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인수는 어떠한가. 그 역시 이성적인 판단을 배반하고 집착적으로 군다. 여기서 이러한 의문이 든다.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이 세상을 파악하는 데 정말 유용한가에 관한 의심이다. 강민주가 남성적이라고 해서 남성이 되진 않는다. 백승하가 여성적이라고 해서 여성이 되지도 않는다. 강민주는 남성적인 여성이라기보다는 강민주다운 존재이다. 백승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성적인 남성이 아닌, 백승하다운 존재다. 이로써 독자는 젠더가 사람이 아닌, 단지 그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강민주는 ‘부드럽게 풀어진’ 뒤로도 본인이 초월자라는 믿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뭐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남성적인 위계관계라는 틀을 고집하던 그가 상냥함을 장착한 통제자의 존재를 긍정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따지고 본다면 강민주와 백승하는 남성적이지도 여성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둘은 오직 그들일 뿐이며, 이 사실은 이야기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의 밀봉으로 마무리되면서 완성되었다.

이야기에서 강민주의 죽음은 단지 유혹당한 주인공의, 보복으로 인한 파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해석하려면 백승하가 강민주를 증오해 주도적으로 죽였어야 했다. 그러나 ‘결혼을 전제로 몇 번’ 만났다고 왜곡하는 김인수나 강민주의 최후를 멋대로 결정한 황남기와 달리 백승하는 강민주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주인공의 죽음은 그가 말한, 황홀한 비극에 가깝다. 인간애라는, ‘인간이 움켜쥘 수 있는 유일한‘ 절정을 거머쥔 이의 영원한 박제이므로 그렇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제목은 저항시인, 뽈 엘뤼아르의 시 『커브』의 전문(全文)이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변화라는 뜻이, 시인이 꺾이고 돌아가는 bend나 turn 등이 아닌 curve를 사용한 까닭이 아닐까. 방향을 틀기 위해 멈출 필요가 없는, 그러나 원심력을 견뎌야 하는 그것은 그 자체로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금지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세상의 온갖 불합리와 유형무형의 폭력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함께 읽히기를 감히 소망‘했다. 그는 단순히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중립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이야기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상하관계를 해체하려면 죽음을 거스르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호소를, 삶보다 매혹적인 일관적 부드러움과 그에 맞서는 목숨 같은 권위의 대결로써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생명 같은, 혹은 그것을 지키는 무구(武具)인 이성과 권위를 놓칠 만큼 치명적인 ’수직 해체의 아름다움‘을 맛보라는 은근한 속삭임일 것이라고 믿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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