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고객도 모르는 불안을 없애는 다정한 스토리텔링

인턴일기 10월 회고

by 기미상궁 라하

○○시와 계약한 넉 달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난생 처음 겪는 사회생활이 낯설고 어색해 흠칫흠칫 놀라던 7월, 손에 일이 조금씩 붙어 우쭐한 마음이 들던 8월, 새로운 인턴 분을 환영하며 들뜨면서도 좋은 선배가 되려 힘쓰던 9월을 지나, 얼떨결에 맞이한 10월마저 어느덧 마지막 주다.


처음 입사한 7월 1일이 아주 머나먼 과거처럼 느껴지면서도 때때로는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다른 분들은 전체인사 메일에서 ‘○○○ 드림’이라고 썼는데 나 혼자 ‘○○○ 올림’이라서 쓴 걸 발견했을 때의 아찔함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어서 그런가 생생하면서도 머나먼 과거다. 변명하자면, 그간 쓴 메일은 내가 ‘갑’으로 체결한 프리랜서 계약 메일 아니면 학교 교수님들께 쓴 메일이 다라서라고 하겠다. 교수님들은 높으니까 ‘올림’으로 쓰고, 프리랜서 계약은 동등하니까 ‘그림’을 쓰는데 7월 1일의 내게 직장 선배는 ‘올림’ 쪽에 가깝게 보였다. 사실 지금도 그닥 다르지 않다.


넉 달 동안 ○○○○라는 닉네임을 쓰면서 많은 일을 했다. 사실 내가 많은 걸 한 줄은 몰랐는데, ○○시에 제출할 보고서를 쓰느라 업무일지를 정주행하자니 내가 아는 것보다 많은 일을 했다. 정기간행물(사실 아주 정기적으로는 못 했지만!)을 발행하고 고객사에 보여드릴 소개 자료를 깔끔하게 리뉴얼하고(내 기준 마감 초과였지만!) 부트캠프 관련 일정과 홍보를 총괄하고(○○ 매니저님이 아니었음 못 했겠지만!) 스레드를 개설해서 B2C도 시도하고(악플 먹었지만!) ○○컨설팅, ○○코어 등 특화 서비스를 준비하고(비록 10,800픽셀짜리 상세페이지는 못 썼지만!) 소속 120명 ○○○○ 중 몇 분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 중에 가장 품이 많이 들었던 건 이러쿵저러쿵 생각해도 역시 ○○ STORY. 즉 ○○○○ 인터뷰 정기발행 콘텐츠다. 동시에, 가장 오래도록 긍정적인 기억이 될 콘텐츠도 이거다. 먼저, ○○○○ 인터뷰 콘텐츠를 기획한 배경부터 써 두고 싶다.


○○은 명확히 B2B 서비스 기업이다. ○○○이므로 당연하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느끼는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해소해서 구매 퍼널에서 망설임을 제거하는 게 마케팅의 본질이자 기초라고 본다. 햇병아리일수록 기초에 충길해야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고객사의 ○○담당자라면, 많고 많은 ○○○ 중 하나를 고를 때, 엇비슷한 ○○○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를 때 어떤 곳을 고를까?’


아까 말하길, 내게 마케팅은 고객의 불안을 해소하는 스토리텔링이라고 했다. 불안은 감정이다. 단언컨대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이성적이지 않다. 단지 본인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확신에 찬 상태를 즐길 뿐이다. 즐거움 역시 감정이다. 사람은 감정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나는 감정 예찬론자다.


똑같은 제품이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 쪽을 고른다. 심지어 좀 덜떨어지는 제품이라도 기분만 좋게 해준다면 그걸 고르기도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이소 700원짜리 볼펜과 문구 브랜드 볼펜은 가격이 8배 차이인데 기능이 8배 더 좋거나 하진 않다. 나는 단지 그 브랜드와 디자인이 주는 만족감 때문에 8배를 지불한다. 이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다.


○○의 모든 마케팅 작업을 진행할 때, B2B도 마찬가지로 감정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가설을 세웠다. 기업은 ‘법인’이고, 법인의 ‘인’은 ‘사람 인’이다. 고객사와 ○○은 계약하지 않는다. 기업에 속한 ○○담당자와 ○○에 속한 ○○○○가 신의와 성실을 약속할 뿐이다. ○○담당자는 헤딩을 믿지 않는다. ○○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믿을 뿐이다.


마케팅의 기본 원칙 중 하나가 ‘사람들은 구체적일수록 친숙하게 여기고 친숙할수록 기꺼이 대가를 치른다’는 명제라고 알고 있다. 사실 당연하다. 우리는 ‘무엇’이 아니라 ‘누군가’와 계약한다.


그런데 대다수 ○○○은 ‘누군가’보다는 ‘무엇’을 강조하며 서비스를 알리고 있었다. 그런 포스팅들의 주어는 대체로 ○○○ 이름이 들어간다. ○○담당자도 사람이라면 이런 불안감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기업을 담당하는 ○○○○가 ○○○명 중 대체 누군데? 아무리 맞춤 배정해준다고 한들, 얼굴도 성격도 인성도 실력도 경력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어?”


누구도 위험을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경계심, 불안감, 불신은 신중한 사람이라면 당연하다. 링크드인만 해도 그렇다. 링크드인에서 가명을 쓰고 프로필 사진을 사랑하는 고양이 사진으로 해 두는 사람은 없다. 믿음을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형마트에서 파는 청과류에도 농부의 이름이 들어간다. 그게 소비자의 신뢰와 감정을 자극하니까. 사회화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정확히 누구인지 아는 이상 다정해진다.

상냥함이 세상을 지탱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게 있어 마케팅은 다정한 스토리텔링이다.


○○이라는 이름만 쓰는 건, 사실은 ○○이라는 공용 가면을 쓰고 익명성 뒤에 숨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내가 인사담당자라면 그렇게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을 조각조각 오렸다. ○○이라는 소속은 남겨놓고, 개인화했다. ○○○○를 인간 대 인간으로 조명하는 인터뷰를 기획한 이유다. ○○의 실력은 뒤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빼어나다. 그러나 빼어난 ○○○이 한둘은 아니다. 여기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끗 디테일은 친숙하다는 감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담당자가 채용 건을 감당할 ○○의 PM을 ‘알고 있다’고 ‘느끼기’를 바랐다.


단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인터뷰에는 종종 이런 질문도 있었다.

“○○○님께 이 산업군은 어떤 의미인가요?”
“○○○○로서의 자기 자신을 한 마디로 설명해 주시겠어요?”


대답은 제각각이었으나 하나같이 굳센 긍지와 반짝이는 열정이 담긴 답변이 쏟아져나왔다. 공통점은 딱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와 고객사 ○○담당자를 향한 ‘다정함’이었다. ○○○가 더 멋진 커리어를 쌓길 바라는 마음, 고객사가 더 좋은 인재를 채용하길 바라는 마음. 내 역할은 그 다정한 마음씨가 고객사에 전달될 수 있도록 정돈된 문체로 서술하는 것뿐이었다.


다정함이 좋다. 아무도 안 시키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다정하게 구는 사람들이 좋다. ○○ ○○○○분들은 하나같이 ‘하필이면 그렇게까지’ 다정한 사람들이다. 다정한 사람들한테 얘길 듣는 건 내 하루를 고양이 배 털처럼 포근포근하게 한다.


○○○○ 분들께 인터뷰를 요청할 땐 늘 30분이라고 말씀드렸다. 말씀하시고 싶은 바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대다수 ○○○○분들이 그 시간을 훌쩍 넘긴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씩 시간을 할애해 주셨다. 그 분들한테 난 어쩌다 뚝 떨어진 햇병아리 인터뷰어였을 텐데도 그랬다. 여쭙지 않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자세하게 알려주시기도 하고 그분만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에는 늘 이번 인터뷰를 10점 만점에 몇 점인지 평가를 요청드리는데, 반타작 이상의 점수와 함께 주시면서 격려와 조언도 듬뿍듬뿍 아끼지 않고 주셨다. 뭐라도 콘텐츠를 주겠다는 그 다정함을 떠올릴 때면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인터뷰는 품이 많이 든다. 인터뷰이 ○○○○를 사전조사하는데, 다른 인터뷰 경험이 있다면 겹치지 않는 질문을 하려고 애써야 했다. 나라도 같은 질문 또 받으면 귀찮을 것 같으니까. 소위 뒷조사 하듯 구글, 링크드인, 사내 타 ○○○○ 분들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그분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해야 했다. 아이스브레이킹도 짜 둬야 했다. 초면인 햇병아리 마케터에게, 상식적으로 누가 진심을 말하고 싶겠는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약 90분을 녹취하고, 그걸 텍스트로 변환한 다음 매끄러운 구어체로 다듬으면서 워드 90여 쪽 분량을 18쪽 내외로 간추려야 했다. 그 내용 중에서도 블로그에 올라갈 수 있는 건 아주 일부였다. 눈물을 머금고 쳐내야 한다. 안 그러면 인터뷰 하나에 1만 자가 나왔으니까. 여기에 맞춰서 카드뉴스를 만들어야 하고 사진을 편집하고 SEO에 맞게 블로그 글을 구성하고 알맞은 태그도 달아야 했다. 똑바른 인터뷰를 발행하려면 일주일도 모자라다는 얘기다.


만약 누가 나한테 이렇게 묻는다고 치자.


“하루에 8시간 앉아서 일할래, 10시간씩 인터뷰 할래?”


위에 쓴 모든 사실을 제치고, 나는 거리낌없이 후자를 고를 것이다. 긴 시간 경험이라는 나이테를 둘러 온 이들의 이야길 들으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감각, 그 이상으로 어떤 다정한 호의를 받아들인다는 감각은 세상에서 가장 중독적인 감각이라고밖에 할 수 없으니까.


사람은 감정으로 움직인다는 가설이 들어맞다는 사실을 조회수로 증명했다. 인터뷰 콘텐츠는 넉 달간 올린 모든 링크드인 콘텐츠 중 압도적으로 1~5위에 올랐다. 얼마 전에는 고객사 임원 분이 ○○을 잘 알고 계신다는 얘기도 전해들었다. 타 ○○○에서 근무하시는, 모 매니저님 지인 분이 내가 올리는 링크드인 콘텐츠를 잘 보고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다정한 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겼다는 얘길(사실 그냥 볕이 아니라 땡볕이긴 했지만!!) 기억한다. 마케터 이전에 세상에 살아있는 누군가로서, 인간 대 인간의 다정함이 마음을 움직인다고 믿는다.
햇병아리 콘텐츠 마케터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하룻강아지라서 할 수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는 얼핏 상업적인 데서 멈추는 듯하지만 사실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나는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살아남아 왔다. 양육자, 교사, 친구, 연인, 교수, 동료, 선배 등등. 이건 남들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흔하디 흔하다고 중요하지 않다면 사랑 같은 다정함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무것도 아닌 감정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는 건 상식인이라면 모두가 안다.


지난 넉 달간의 인터뷰로, 그러한 다정함을 가장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여태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해 주신 모든 인터뷰이 ○○○○ 분들께 감사드리며, 10월의 첫 번째 회고를 마친다.


아니 근데 이게 뭐라고 5천 자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내가 말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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