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트렌드라는 이름의 착시현상

아직 작년이라는 표현이 낯설고 자연스럽지 않은 1월입니다. 작년 코로나 19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팬데믹 현상으로 예정되어 있던 세미나/콘퍼런스 등이 다수 취소가 되었습니다. 이를 대신해 몇몇 온라인 강의로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와 생각들을 지속적으로 전하기도 했습니다. 보통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통한 경험과 전략 등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한해를 마감하거나 새해를 맞이하는 이때는 이 UX업계를 주도할 트렌드에 대해 주제를 삼아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사실 이 트렌드라는 주제로 강의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퍽이나 난감하기도 하며 어렵기도 합니다. 많은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전문가분들이 언급하기도 하고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글들이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를 주제로 이 글을 적는 것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후 그간 진행했던 강의의 공통된 맥락을 정리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디자이너는 자신의 성향에 맞게 기업을 선택합니다. 그 기업의 성향을 이분법적 논리로 명확히 나눌 수는 없지만 대게는 '인하우스/에이전시' 형태로 나뉩니다. 여기에 스타트업 정도를 덧붙일 수는 있겠죠. 지향하는 방향성과 요구되는 디자이너의 능력도 이 형태에 따라 구분되곤 합니다. 전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일을 했습니다. 에이전시는 기업의 특성상 1년 365일을 다양한 고객사와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다양함을 경험한다는 것에는 크나큰 장점이지만 비틀어 말하면 하나의 프로젝트에 온전히 집중하여 특정과제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비교적 짧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숨 가쁘게 몇 개의 프로젝트를 종료하면 1년이란 시간은 금세 그동안의 거칠었던 호흡에 흩뿌려지는 것 같아요. 짧은 호흡에 맞춰 분석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디자인을 그려나가려니 더욱 최신 트렌드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 디자인은 현재 트렌드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 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작년 한 해 동안 언급된 UX트렌드 키워드들입니다. '투명성 강조', '유동적인 소비자', '데이터 시각화', '일러스트 삽화', '미니멀리즘', '사용자 정의 3D 그래픽' 등등 이곳에 모든 키워드들을 정리할 수는 없지만 지난 몇 년간의 키워드들 역시 살펴보면 표현방식이 다를 뿐 비슷하게 반복되었던 키워드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감히 제 개인의 생각을 가득 담아 말씀드리자면 내년 역시 비슷한 유형의 트렌드들이 큰 자리를 차지할 거예요. 앞으로도 당분간 변하지 않을 이야기들이란 것이죠. 우리는 이 디자인 트렌드를 표면적인 형상만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마치 트렌드라는 이름의 착시현상에 빠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착시현상으로 인해 시각적 꾸밈에만 의존하는 순간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게 됩니다. 본질적인 의미와 논리 그리고 전략이 사라지는 것이죠. 산업분야에 상관없이 트렌드는 보는 것이 아닌 그 흐름을 읽는 것입니다. 거대한 바다의 조류와 같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맥락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닌 '누구를 위해 왜 디자인하는가'의 생각이 먼저입니다. 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본질적 사고, 즉 인문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디자인 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디자이너의 역할이었습니다. UX 분야의 경계 파괴와 확장이라는 주제로 학회가 열리고 각종 콘퍼런스와 모임의 장소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들이 일상이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줄 툴의 기술 발달도 큰 역할을 했었죠. 지금까지 언급되었던 디자인 트렌드 키워드들을 살펴보자면 이 흐름의 맥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디자인은 처음부터 설계였고 인문이었습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기법들과 방법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술적인 언어들을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우리가 흔히 수 없이 말하는 본질이라는 것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본질이라는 의미는 어디에 중심을 두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 있는 많은 해석이 뒤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많은 변화에 변하지 않는 것, 사람에 대한 공감과 소통을 위한 노력과 그들이 당면하는 낯선 환경변화 속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맥락을 이어주는 것에 그 중심이 있습니다. 

흔히 UX를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경험을 제공한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반박할 여지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공공연하게 "이런 건 어때요" 라며 조심스레 제 강의를 듣는 청중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경험을 놓아둔다'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요? 



작가의 이전글 2020의 온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