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질시스터즈 Aug 08. 2021

5kg 빠지는 프랑스 한 달 살이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라고요?
누구 마음대로.



프랑스로 함께 떠난 친구는 한 달 새에 5kg가 빠졌다.

프랑스 어학원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친구가 앙상해진 얼굴로 내게 고추참치캔이 있냐고 물어본다. 그 말에 나는 슬쩍 캐리어에 남아있는 고추참치캔 개수를 계산하다가, 넌시시 한인 마트 가서 사라고 제안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저녁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친구는 한국에서 간편식을 더 많이 챙겨오지 않은 것을 자책했고, 나도 조용히 그것에 동감했다.


20년 넘게 살면서, 못 먹는 음식은 분명 없었다. 향신료 가득한 동남아 음식, 느끼한 양식, 혀가 아릴만큼 달달한 디저트는 물론이고 산낙지부터 곱창, 닭발까지. 너무 잘 먹어서 문제였지 못 먹어서 고생해본 기억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프랑스 한 달 살이를 걱정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 게다가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가 아닌가. 내가 캐리어에 볶음 김치니, 조미김이니, 고추참치캔과 햇반 따위를 잔뜩 챙겨간 것은 어디까지나 식비를 아끼기 위함이었다. 프랑스 현지 음식이 내게 안 맞을 것이라는 걱정은 아마 꿈속의 잠꼬대로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바리바리 싸간 간편식 하나하나가 내게 그리도 간절한 음식이 될 줄은 추호도 몰랐다.



감자튀김 제발 그만...



처음 프랑스 시내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메뉴판에 아는 단어가 별로 없으니, 대충 무난하게 햄버거를 시켰다. 처음 프랑스에서 주문한 음식은 특별히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았다. 햄버거와 같이 나온 넓적한 감자튀김이 맥도날드에서 먹던 길고 얇은 감자튀김보다 바삭해서 계속 손이 갔다. 그런데 그 감자튀김은 다음, 또 다음 레스토랑을 갈 때마다 지겨울 만큼 계속, 잔뜩 나왔다. "프렌치프라이"라고 하더니 이 나라는 진짜 주식이 감자튀김인 건가? 나중에는 감자튀김만 봐도 속이 니글거릴 정도였다.


프랑스 음식점의 요리들은 먹을 때마다 느끼한 것은 둘째 치고, 감칠맛이 없었다. 음식의 맛 자체가 혓바닥을 다채롭게 자극하질 못했다. 대체로 모든 음식이 그냥 너무 짜거나, 너무 느끼했다. 3번 정도 외식을 하자, 한식이 매우 절실해졌다.

그 무렵부터는 저녁이 되면 다들 기숙사 부엌에 모여서 컵라면이나 먹기 시작했다. 괜히 나가서 먹어봤자 돈이나 쓰고 속만 더부룩했기 때문이다. 똑같이 나트륨이랑 밀가루로 만든 음식인데 라면은 속이 그냥 시원했다. 국물을 들이키는데 혓바닥이며 위장이 그제야 만족해하는 기분이었다.



푸아그라, 에스까르고



일주일이 지날 즈음, 한국에서 찾아오신 전공 교수님이 10명 정도의 학생들을 불러 모아 저녁을 사주셨다. 각자 이런저런 메뉴를 시키는데, 교수님이 맛만 보라며 푸아그라와 에스까르고를 하나씩 시켜주셨다. 오, 그 유명한 프랑스 3대 요리? TV에서나 보던 고급 요리를 먹게 되다니. 기대감을 안고 푸아그라를 한 입 먹은 나는 그대로 놀란 마음을 삼켰다. 이 비린 버터는 대체 뭐지. 침착하게 푸아그라를 바게트에 발라, 다시 한입 먹었다. 여전히 맛이 이상했다. 일단 푸아그라는 포기하고, 에스까르고에 도전했다. 에스까르고는 비린 흙맛이었다. 이 가격이면 골뱅이를 먹는 게 합리적이고 행복한 선택일 것 같았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지, 여자 10명이서 푸아그라 한 접시와 에스까르고 한 접시를 비우질 못했다.



국가 불문 소고기가 답이다



정말이지 외식할 때마다 골치가 아팠다. 뭘 시켜야 제일 덜 실망할지 고민하느라 선뜻 메뉴를 고르기가 힘들었다. 결국 친구들이 시키는 메뉴를 조용히 지켜보다가 따라 시키기 시작했다. 나만 망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맨 위의 메뉴는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일 테니 비교적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했다. 그 후로 메뉴판을 알아보기 힘들다 싶으면 그냥 시그니처 메뉴부터 시켜버렸다. 이러나 저러나 맛없기는 똑같았다.


무난하게 한 끼 먹고 싶다면 스테이크 집을 가는 게 정답이다. 소금 간만 한 소고기가 맛없기는 힘들테니 말이다. 프랑스식 육회인 타르타르도 먹을만 했다. 한국 육회와 달리 머스타드 맛이 나는데, 프랑스 음식 중에서 처음으로 입에 맞는 음식이었다. 30일 동안 먹었던 음식 중에 유일하게 먹을 만해서 기억에 남는다. 그 외에는 맛없어서 기억나는 음식밖에 없다. 진심이다.


SNS를 뒤져보니, 당시에 이런 글을 썼다.


미식의 도시 리옹에 다녀왔는데 미식의 도시인지 모르겠다
3주 정도 프랑스 살아보니까 미식이고 뭐고 쟁여온 고추참치랑 햇반이 제일 맛있음
음식 때문에 정신이 피폐해지는거 같다 빨리 한국가서 집 밥 먹고 싶다
근데 타르타르는 맛있움


맛있는 음식점이 가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서칭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결국 우리들은 프랑스에 지내는 동안, 최대한 프랑스 대형 마트에서 파는 음식들과 한인 마트에서 파는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뜻하지 않게 식비를 아끼게 되어서 예상보다 돈도 많이 남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 한 친구는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5kg가 빠졌고, 나는 식사 대신 과자를 하도 많이 먹어서 도리어 살이 쪄있었다. 그 이후에 여러 나라를 여행했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음식은 유일하게 내가 고생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만 그랬던 건지, 우리가 갔던 음식점이 문제였던 건지, 우리가 시킨 메뉴가 문제였던 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글. 강졔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엄마의 생일 밥상을 차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