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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Jul 11. 2018

내 몸 누일 곳은 어디인가

<풀 뜯어먹는 소리>, 글피, 다음, 연재중

    인간 존재의 문제는 공간의 문제다. 인류는 이제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쉬는 공기마저 비용으로 환산되고,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시스템 안에 복속된다. 어쩌면 귀농과 귀촌은 그 삭막한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조금 더 느슨했던 시절로의 회귀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보다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진 어떤 향수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가 꽤나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귀촌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귀농 귀촌이 유행한지 몇년 지나지 않아 역귀농, 역귀촌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만큼, 평생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녹록치 않다. 먼저 귀농 귀촌 실패의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수익모델의 실패다. 귀농을 한 사람들 중에 특히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려던 사람들이 농사에 실패하거나, 농수산물 가격 폭락/폭등 등의 이슈를 만나 좌절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환경 변화, 개인 위주의 생활공간에서 공동체 위주의 생활로 변화하는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 농촌 생활과 <리틀 포레스트>의 생활에는 대략 <미생>과 실제 회사 생활만큼의 차이가 있다. 때문에 팀 글피의 <풀 뜯어먹는 소리>는 주목할만한 귀농/귀촌 만화다.

시골집을 수시로 보수하며 끝없는 잡초와의 싸움을 펼치는 부부

        천도복과 치마요 부부는 고등학교 때 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연애한지는 4년, 결혼한지는 2년 된 신혼부부다. 웹툰작가로 전업을 한 다음 연재를 쉬는 6개월간 모아놓은 돈이 다 떨어졌고,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방법을 고민하던 중 치마요는 "그동안 실물투자를 좀 해놨다"고 말한다. 그리고 금과 은(!)을 꺼내온다. 이 돈과 지금 살고있는 집을 정리하고 귀촌을 해서 생활비를 아껴보자는 제안을 한다. 어차피 온라인 상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으니 가끔 서울에 왔다갔다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데서 나온 제안이었다. 그리고 두달 뒤, 이들은 정말로 시골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게 되어있는 우리네 삶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이 통나무집에서 두 부부가 살아나가는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통나무집에서 한달 정도 살며 적응하게 되나 싶었던 찰나, 부부는 반가우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치마요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귀촌을 했더니 생활비가 뭉터기로 나갈 일이 생기고 만 것이다. 그리고 "왜 하필 이제"라고 생각하던 부부는, 이런 상황이니까 찾아온 아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매일 밤샘 작업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던 생활에서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 그리고 집밥을 먹게 되면서 아이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웹툰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인간 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는지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임상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일주일 7일중에 7일을 일하고, 마감을 하다가 병을 얻어 휴재를 하면 그것으로 욕을 먹는게 일상인 웹툰작가의 삶에 아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지만, 부부가 일자리-집을 옮기고 나서 어느정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또 연재를 쉬는 동안 아이가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목가적인 통나무집 라이프와 동시에 부부의 생존기를 그릴 예정이던 이 작품은,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된다. 시즌 1에서는 임신과 통나무집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시즌2에서는 본격적인 출산, 시즌 3은 육아와 둘째(!)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볍게 다룬다. 그런 이야기들은 도시의 삶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생 미욱의 취업 고민, 치마요의 출산후 우울감과 같은 이야기들은 배경처럼 흘러간다. 충분히 비판 가능한 지점이지만, 동시에 이 웹툰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합치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웹툰은 도시의 삶과 다른 시골의 삶을 말해주지만, 도시의 삶을 치유하는 시골의 삶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외부와 단절된 시골의 삶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 있지만, 그것이 도시의 삶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 부부가 이런 형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로서 장소와 관계없이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이들은 시골이라 하더라도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생계 유지가 가능했고, 때문에 시골로 이주해 살아갈 수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여러분도 이렇게 살아보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삶을 전시하고 포장하기보다, 자신들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또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귀촌의 불편한 점들에 대해 겪으며 본인들이 '레벨업' 해 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생_가장_비싼_굿즈.budongsan

    그리고 도시인과 농촌인의 삶 어딘가를 부유하던 이 작품이 특별해지는 지점은 바로 시즌 4에서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다. 어느날 미욱이 길을 잘못 들어 도착한 마을은 어머니 포도알이 꿈꾸던 그런 땅이었다. 학교와 가깝고, 적당히 개발되어 있지만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있어 향후 난개발 가능성이 적은 그런 꿈의 땅(!)을 발견하고 이사를 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돌고 도는 치마요의 고민

    그리고 천도복과 치마요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통나무집은 살기에 좋지만 학교, 병원 등의 인프라와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다. 때문에 새싹과 새순 두 딸을 키우면서 마음 졸였던 시간도 있었고, 어머니 포도알이 다쳤을때도 꽤나 고생을 해야 했다. 때문에 치마요의 고민은 돌고 돌아 "다시 도시로 들어가야 하나?"로 돌아왔다. 처음 귀촌을 준비할때 까지만 해도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이 우선순위로 들어오게 되면서 시작된 고민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눈여겨 볼 지점이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삶을, 주변을 대하는 관점이 달라지는지, 그로 인해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한 좋은 힌트가 된다. 처음에는 자신, 그 다음에는 부부의 삶이 중심이었다가 부모가 된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우선이 되고, 그 다음에는 자신들 뿐 아니라 아이들을 기르는데 큰 도움을 준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치마요 부부의 가족은 지탱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족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만약 이 작품이 꾸며진 이야기고, 가상의 가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거리낌없이 가족주의를 비판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도복과 치마요, 포도알과 새싹, 새순이라는 캐릭터 너머에는 실존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야기로는 다 풀 수 없는 유대와 연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즌4에 등장하는 부동산 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가장 큰 두 축인 가족-혈통주의와 부동산이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지금은 해체된 대가족을 이루면서 동시에 각자의 공간을 보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다.


    예를 들어, 통나무집에서 미욱은 2층에 산다. 그리고 2층에서 미욱이 어떻게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구직활동중(이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미욱을 보고 누구도 닥달하지 않는다. 미욱에게 보장된 공간의 결정권은 미욱에게 있고, 겨울에 추워서 아래에 내려와 있더라도 "그러게 난방 하라니까"라며 잔소리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여주는 장면으로는 놀랍다.


    <풀 뜯어먹는 소리>는, 개인이 몸 누일 곳을 구할 수 없는 21세기 도시사회에서 벗어나 각자의 공간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가족을 꾸려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전통적 가족-혈통주의적 가치관은 배제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가족이니까 그정도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동시에 미욱의 공간을 인정하고 그의 삶을 존중하는 것 만으로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건 아니다. 천도복과 치마요를 처음 소개할 때, 천도복은 웹툰작가지만 치마요는 ‘천도복의’ 스토리 작가이자 아내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천도복은 반말을 쓰고 치마요는 존대를 쓴다. 이런 지점들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점은 이 웹툰을 마음 편하게 즐기는데 꽤 큰 방해가 된다.


    오늘 몸 누일곳에 대한 불안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배아픈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는건 어쩌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것이 비용인 세상에서, 그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살아내는 모습이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면 그들의 삶이 도시에서의 삶과 비슷한 발버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 누일 곳을 찾기 위한, 그리고 내 자식이 잠들 곳을 찾기 위한 부부의 생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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