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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Dec 05. 2018

당신들은 독자가 아니다

거기 개 짖는 소리좀 안나게 해라

원로 만화가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1960년대는 다들 가난해서 책 사볼 돈이 없으니 만화책을 오히려 비싸게 찍었다고. 무슨 말인고 하니, 책이 비싸니 당연히 대본소에만 책이 있었고, 그 책으로 대본소는 돈을 벌되 책값의 일부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이자를 붙여 대본소가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매주 '자전거꾼'들이 자루 한가득 동전이며 지폐를 걷어왔고, 그게 곧장 작가들의 원고료가 됐다고 했다. 원로 만화가 분들은 공통적으로 '인기 작가들은 돈 많이 벌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30년간, 만화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아날로그 시대의 불법은 해적판이었다. 베른 협약에 가입하기 전이었던 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 해적판이 넘쳐났다. 일본 작품을 베껴다가 쓰는 작가들도 분명히 있었다. 80년대 중반에는 김용 작가의 무협소설들을 묶어 출간한 출판사가 아예 대규모 광고를 하기도 했다. 이후 디지털 시대에는 인터넷에는 소위 ‘스캔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발달의 과정에서 먼저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의 ‘텍스트본(소위 텍본)’이 만화로 옮겨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위 ‘어둠의 경로’ 역시 다양해졌다. 웹하드 서비스와 P2P, 그리고 토렌트 등으로 공유되는 ‘불법 공유물’들 중 만화는 특히 더 기승을 부렸다. 형태 또한 다양했다. 앞서 이야기한 방식들과 마찬가지로 대규모로 ‘살포’되는 경우도 있었고, 앞서 언급한 소설의 텍스트본과 함께 블로그 등을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런 상황에서 시작된 웹툰은 만화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불법만화의 다음 타겟은 웹툰이었다.


수년간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던 불법 사이트들은 2016년을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수십억대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서야 최대 불법웹툰 사이트 '밤토끼'의 운영자가 검거되었다. 절반정도 줄었던 불법 웹툰 사이트들의 트래픽은 다시 서서히 고작 반년전 수준을 회복중이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서 살아남은 스캔본 불법공유 사이트 '마루마루'도 있었다. 이 사이에 끼어 불법 웹소설을 소규모로 공유하는 이전 만화 불법공유의 사례를 그대로 베껴온 범죄자들도 있다.


불법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검거까지 지난하고 복잡한 수순을 이야기하는건 정책의 이야기다. 대형화되지 않은, 개인이 퍼다 나르는 것 역시 음지화되어 있어 잡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정책과 행정의 문제다. 그건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 저작권법 개정이나 처벌수위 강화 등의 방법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핵심은, 독자들이 보지 않는 것이다.

아아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일부" 독자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마루마루 운영자의 검거소식이 들린 후, 마루마루 폐쇄를 하지 말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정부의 주관으로 일본 만화번역 사이트를 만들라는 웃기는 청원부터 원색적인 욕설, 이게 사라지면 '소수자'인 자신들 독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읍소까지 형태는 다양했다.


그들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면)'은 이런 것이다.


1) 돈이 없으면 만화를 보지 말라는 말이냐 → 그럼 돈을 버세요...

2) 내 추억을 왜 없애려고 하냐 → 니 추억이 왜 남의 희생으로 만들어져야 되는지?

3) 만화는 일종의 공공재로 봐야 한다 → 응 아니야

4) 문화발전을 위해 이정도는 불가피하다 → 저작권법이 문화 발전을 위해 존재하거늘...


물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독자로 볼 수 없다. 지속가능성을 해치는 사람을 독자로 인정해선 안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논의의 장에 동등한 목소리를 가지고 들어와선 안된다. 이 사람들을 제외한 다수의 이용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냥 당신이 보지 않으면 된다.


불법 사이트가 사라지면 '대체 사이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 그 대체 사이트라는게 지금 만화를 팔고 있는 곳들이다. 내가 보던 작품은 책도 발간이 안된다고? 외국어를 공부해보는건 어떨까? 정식 발간이 되는 책도 원서로 사모으는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덕질'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마니아'는 아무나 될 수 없다.


왜 창작자에게 쏟는 애정과 시간, 자본을 아까워 하고 그것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면서 자신이 숟가락을 얹고 확성기를 가진 독자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소한 입을 다물 양심조차 없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수 없다. 그냥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벌거벗은 채 대로에서 "여기에 차가 다니다니 내가 다닐수 없다!"고 억지를 쓰는 사람들과 같다. 불법 웹툰이 없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사람들이 안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독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당신들은 독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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