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만들어졌지만, 정작 교육은 시작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 그런데 시행을 몇 달 앞두고 학교 구성원들이 난감해한다. 난감함의 정체는 "처벌 기준을 학교가 알아서 세우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댓글의 기사 참조). 이미 많은 학교들이 자체적인 기준을 운영하고 있는데, 법을 만들어 놓고 그 구체적 실행은 다시 학교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나는 여기에 우리 사회가 복잡한 교육 문제를 다루는 방식의 한계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사용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그 세대의 정체성이 얽힌 생활 세계 그 자체다. 이 문제를 다루려면 학생 발달 단계에 대한 이해, 교육공동체의 합의 과정, 학교별 상황에 대한 이해와 대응, 교사의 교육적 판단력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는 이 복잡한 과제를 두고 머뭇거리다가, 법으로 금지하자는 가장 쉬운 해결책을 선택했다.
법 제정엔 '무언가를 했다'는 가시성이 있다. 정치인들은 교육 문제에 대응했다 말할 수 있고, 언론은 흥미로운 기사 거리를 기대하게 되었으며, 대중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하지만 정작 그 법을 현실에서 작동시켜야 하는 학교 현장은 큰 딜레마에 빠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법이 만들어내는 책임의 이중 구조다. 법은 중앙에서 만들어지지만, 기사에 따르면 그 집행의 구체적 기준과 방법은 다시 학교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금지는 우리가 정했으니, 어떻게 금지할지는 너희가 정하라"는 식이다.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이자, 법 제정의 동기를 몰각한 처사다.
학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문제와 씨름해 왔다. 교칙으로 규정하고, 교육공동체와 논의하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고민하며 나름의 해법을 찾아왔다. 그 과정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그것은 각 학교의 맥락과 구성원들의 합의에 기반한 '살아있는' 규칙이었다.
이제 법이 생겼다. 하지만 그 법은 추상적 원칙만 제시할 뿐, 실제로 학생이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냈을 때, 긴급한 가족 연락이 필요할 때, 수업에서 디지털 자료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전히 학교의 몫이다. 다만 이제는 법이라는 무게가 더해졌을 뿐이다.
법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구체성 없는 지침, 현장과 유리된 규정은 결국 형식만 남는다. 학교는 법을 준수한다는 서류를 작성하고, 학생들은 관성적으로 스마트폰을 제출했다가 돌려받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더 나쁜 시나리오도 있다. 일부 학교는 법을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적용하고, 다른 학교는 느슨하게 운영하면서, 학교 간 불공정이 심화할 수 있다. 같은 법 아래 다른 현실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또다시 개별 학교와 교사에게 돌아간다.
정작 중요한 질문들은 법 제정 과정에서 실종되었다. 왜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의존하는가? 학교는 어떤 대안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가? 디지털 시민성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학생들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키우는 방식은 무엇인가?
지난번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세대'에 대한 서평을 쓸 때도 언급했지만 나는 '금지는 쉽지만, 교육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지만, 한 명 한 명의 학생과 관계 맺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것은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다. 법은 어려운 교육을 회피하고 쉬운 금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금지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학교가 필요로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법이 아니라, 교육적 자율성과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조건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함께 규칙을 만들고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여유다. 중앙의 일률적 기준이 아니라, 각 학교가 처한 맥락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다.
개인적으로 이 방식의 스마트폰 금지법은 현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복잡한 교육 현안 앞에서 진지한 성찰과 치열한 논의 대신, 법이라는 외피로 책임을 회피하고 문제를 덮으려는 시도, 그것이 진짜 문제다.
기사를 보면서 기시감이 밀려온다. 법은 만들어졌지만, 정작 교육은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과잉 사법화'의 공간이 된 학교에 또 하나의 법을 만들어 황폐화시키는 것, 현상의 복잡함을 '법'에라도 의지해보자는 법 만능 사고와 '내 자식 제일주의'를 대응시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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