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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육비평

K-에듀 모델과 함께 수출되는
학력 지상주의

교육자라면 이 문제 안에 들어 있는 윤리적 질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by 교실밖

저출산의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낀 한국의 사교육 업계가 새로운 시장을 찾아 동남아시아, 특히 높은 교육열을 가진 베트남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K-에듀’의 수출길이 열린다고 반겨야 할지, 이제 사교육도 수출한다고 개탄해야 할지 복잡한 마음이 든다. 물론 기업의 생존과 확장이라는 논리적 귀결일 수 있으나, 교육자라면 이 문제 안에 들어 있는 윤리적 질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사교육 업체들의 해외 진출 동기는 명확하다. 국내 시장의 포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사업 확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려는 경제적 욕구가 그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의 폭발적 경제 성장과 더불어 자녀 교육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에 새로운 '소비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기사에서 말하는 'K-에듀 모델'의 실체가 무엇일까. 사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선행학습 유발, 과도한 경쟁 조장, 아동 발달 단계를 무시한 지식 주입, 그리고 학생들을 줄 세우는 도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있다. 공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공교육을 압도하며 교육의 본질을 왜곡해 온 측면이 강했다.


사교육은 선행학습, 심화학습 등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을 부추겨 경쟁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조이고, 공교육은 법에 따라 선행학습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물론 공교육에서 선행학습을 허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교육만으로도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다.


사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교교육이 끝나면 놀이와 쉼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발달의 과정이다. 사교육을 통해 ‘학습과잉’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원인을 돌리는 행위는 무책임하다. 매해 교육부가 발표하는 사교육비 대책에도 '공교육 질 제고'라는 말이 빠짐없이 들어간다. 사교육비 과다 지출의 책임을 공교육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실 관계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없는 대책이다.


아마도 해외에 진출하는 사교육 업체들은 “공교육을 보완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운다”는 광고 카피를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육 상품'이 단지 교재와 강사, 시스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교육이 뿌리내리는 곳에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패키지 상품’이 함께 따라간다.


공교육의 진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과잉 선행학습과 학벌이 곧 성공이라는 학력 지상주의의 심화는 해당 국가의 공교육 목표와 가치를 잠식해 들어갈 것이다. 학부모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교육 소비를 부추기고, 결국 아이의 행복과 성장을 위한 교육이 아닌, ‘이기기 위한 투자’로 변질시킬 것이 뻔하다.


아직 사교육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은 동남아 국가에 이러한 경쟁 중심의 한국형 사교육 시스템을 수출하는 것은, 그들의 교육 생태계에 단기적인 성과라는 미끼를 던지고 장기적인 교육적 가치 훼손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한국은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의 난제 중 난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성장의 그림자까지 ‘K-에듀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수출하는 것이 과연 교육 선진국으로서 윤리적으로 합당한가.


해외 시장 진출은 기업의 자유이지만, 교육이라는 공적 가치를 다루는 사업이라면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선 '사회적 책임감(Social Responsibility)'을 지녀야 한다. 한국 사교육 업체들이 진정으로 베트남의 교육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경쟁을 부추기기보다 현지 공교육 시스템과의 협력 방안, 교육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모델 등 상생과 지속 가능한 교육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K-컬처가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때, K-에듀가 경쟁과 불안을 심는 모델이 아닌, 성장과 배움의 즐거움을 확산하는 모델로 기억될 순 없을까. 그러기에는 우리 교육이 돌이키기 힘들 만큼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도 교육자들은 깊은 우울에 빠진다.



커버 이미지 https://businessday.ng/columnist/article/why-we-must-rethink-education-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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