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들은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유에서 비롯했다
송만호 등 네 명의 저자가 함께 쓴 <세상을 보는 눈: 융합지성사>는 제목 그대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가로지르며 서구 문명의 형성과 발전을 추적하는 기획이다. 2022년 출간된 <사피엔스의 깊은 역사>가 우주 탄생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를 다뤘다면, 이 책은 그 이후 현생 인류의 지성사를 융합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이 책은 철학, 종교, 경제, 과학사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연속된 흐름 속에서 기술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중세 기독교 신학과 어떻게 만나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근대 과학혁명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19세기 산업혁명과 마르크스주의가 현대 사회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7장 '신에서 이성으로'에서는 데카르트, 로크, 칸트, 니체, 다윈의 사상을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철학자들의 주장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뇌신경과학과 양자물리학 등 현대 과학의 성과로 그들의 명제를 검증하려는 작업은 철학과 과학이 별개가 아니라 함께 진화해온 지성의 두 축임을 보여준다.
이 책이 제시하는 '융합적 사유'의 틀은 현재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인문과 자연, 이론과 실천을 나누고, 학생들에게 분절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듯,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들은 모두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유에서 비롯했다.
'재발견'이라는 키워드로 르네상스(인간의 재발견), 지리상의 발견(땅의 재발견), 종교개혁(하늘의 재발견)을 엮어내는 방식의 서술은 역사를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개념적 틀로 재구성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역사를 공부할 때 통사 중심이냐, 주제사 중심이냐를 놓고 선택을 하곤 하는데 융합적 사고에 기반한 개념 이해를 프레임으로 하여 접근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 오천 년 지성사를 다루려는 시도에는 필연적으로 선택과 생략이 있다. 또한 서구 중심의 서술이라는 한계는 저자들도 인정하는 바다. "문명은 순환하는 것이며 '지금'의 문명이 서구 중심임은 피할 수 없다"는 전제는 수긍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명사적 전환기에 비서구 문명권의 사유 전통이 제공할 수 있는 대안적 관점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 책이 제공하는 거시적 조망은 분명 가치가 있다. 특히 책의 말미에서 현대 물리학과 뇌신경과학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을 다루는 방식은, 지성사를 '완결된 과거'가 아니라 '진행 중인 현재'로 위치시키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 중 한 분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책을 건네주며 "시간이 없다면 다 읽지 않아도 좋으니 278쪽에서 301쪽에 이르는 부분은 꼭 읽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길래 펼쳐 보았더니 마르크스를 다룬 내용이었다. 맑시즘의 태동에서 몰락에 이르기까지 '높은 생산력에 기반한 인류의 이상향'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에 대한 담담한 기술이었다.
AI 시대라고 하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지성사적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기계에 투사하여 통제 불가능한 진화를 계속되는 지금, 후대의 기록자들은 오늘의 역사를 뭐라 기록할지 궁금하다. 이 책이 추적한 인류 지성의 궤적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성찰하게 한다. 융합적 사유, 비판적 성찰, 그리고 끊임없는 질문,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세상을 보는 눈'의 핵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