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규범을 창출하거나 폐기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체포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선이 복잡하다. UN 회원국이자 주권 국가에 대한 침략 행위라는 시각도 있고, 국가 안보와 마약 근절을 위한 미 행정부의 결단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있다. 트럼프의 회견을 보면서 다른 일을 제쳐두고 이 내용을 정리하느라 오전 시간을 다 소비했다. 뉴스와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이번 사태를 보고 내린 잠정적 결론을 다음과 같다.
“주권은 폭정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강대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도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최대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여러 갈래의 시각을 살펴보고 싶었다. 침공을 단행한 미국의 입장, 베네수엘라 국민의 입장,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제 사회의 입장이 그것이다. 먼저 미 행정부는 이번 작전을 ‘절대적 결단(Absolute Resolve)’이라 명명한다. 트럼프는 ‘국가 안보와 마약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마두로 정권을 단순한 독재가 아닌 미국으로 마약을 유입시키는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것이다.
‘지역 패권의 복원’ 차원에서 보면 먼로주의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중남미 내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미국의 앞마당에서 통제권을 완전히 되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의 자원 통제권을 확보하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하려고 한다. 확실히 미국은 차베스 이전 베네수엘라를 ‘자국의 주유소’로 삼았던 추억을 버리지 못했다.
침공을 당한 베네수엘라 국민의 입장은 어떨까. 여러 자료를 취합하여 분석해 본 결과는 이들은 ‘해방감과 굴욕감 사이의 혼란’을 감당하고 있다. 경제 위기와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던 이들, 특히 2024년 대선 결과가 왜곡되었다고 믿는 시민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지긋지긋한 독재의 강제적 종료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두로에 비판적이었던 이들 중에서도 외국 군대가 자국 영토를 유린하고 정상을 납치하듯 끌고 간 행위에 대해 국가적 자존심의 상처와 굴욕감을 느낀다. 지도부 공백 상태에서 발생할지 모를 내전 가능성, 그리고 미국이 그들의 나라를 ‘직접 운영(run the country)’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일종의 ‘식민지적 불안감’이 공존한다.
한편,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 역시 복잡할 수밖에 없는데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처럼 자유의 승리라며 환호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EU 등은 민주주의 회복은 환영하나 국제법적 절차를 무시한 무력 사용이 가져올 후폭풍을 우려한다. 반미 블록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이번 침공을 주권 국가에 대한 명백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한다.
이는 향후 대만 문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미국이 내세워 온 국제 규범의 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법학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는 선제공격은 유엔 헌장 위반이라고 비판한다. 마약 범죄 척결이라는 국내법적 명분이 국제법상의 주권 면제를 압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쟁을 남기고 있다.
특별히 내가 우려하는 사항이 있다. 과거의 국제 질서가 최소한의 ‘규범’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그저 ‘힘’이 모든 명분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규범의 공동화 상황이랄까. UN 안보리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마비된 사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전격 침공이나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은 국제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결단’으로 치러졌다.
이는 규범이 힘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규범을 창출하거나 폐기하는 시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앞에 놓인 ‘갑갑한 미래’를 암시한다. 이번 베네수엘라 사태는 미국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제3국의 영향력을 물리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신호탄이다. 보편적 가치보다 ‘지정학적 배타성’이 우선시되는 시대로의 회귀라 할 수 있다.
1, 2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초국가적 질서 유지자로 키웠다면, 지금은 미국 스스로 명분을 내려놓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우려된다. 그저 끝없는 미국의 탐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측면에서 강대국 미국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보는 사람의 마음이 복잡하다.
전에 피터 자이한의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을 소개하면서 국제적 상호의존성의 붕괴와 자국 우선주의의 부상이라는 측면을 우려했었는데 미국 입장의 논지를 펼쳤던 자이한의 예측이 거의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 읽을 거리가 산더미인데 이 쓸 데 없는 앎의 유혹을 어찌할 것인가.
현대의 전쟁은 모든 세계시민의 화면 속에서 생중계 된다. 그물처럼 얽힌 국가 간의 관계성으로 인해 모두가 남의 문제인 동시에 모두가 내 문제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잘못된 신념을 갖지 않을까 두렵다.
세계화의 붕괴는 단순히 교역이 줄어드는 것을 넘어, 경제적 연결 고리가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다는 점에 비극이 있다. 과거엔 ‘가장 싼 곳’에서 물건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 내에서만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 대세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약간의 기회가 생겼다고 마냥 반길 일이 아니다.
에너지와 식량, 기술이 안보와 직결되면서 국가들은 협력보다는 비축과 통제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로섬’ 게임은 필연적으로 약소국이나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게 가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 지구촌의 관점에서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 커버 사진은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마두로의 사진이다. 눈 가리개와 수갑을 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