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시작일 뿐, 목표는 문제해결

공감은 대화의 문을 여는 도구일 뿐이다

by 교실밖

내담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가장 먼저 원하는 것은 공감이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라고 묻는 말 속에는 사실 "제가 잘못한 게 아니죠?"라는 확인 욕구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고 지쳐 있을 때 누군가 내 편이 되어준다는 느낌은 큰 위로가 된다. 상담에서도 먼저 내담자의 마음에 공감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공감은 출발점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문을 열기 위해 열쇠가 필요하듯, 공감은 대화의 문을 여는 도구일 뿐이다. 힘든 마음을 충분히 받아주지 않은 채 곧바로 "그런데 선생님도 돌아볼 부분이 있습니다"로 들어가면 상대는 마음을 닫는다. 아울러 공감 없는 조언은 많은 경우 '판단'으로 들린다. 그래서 공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문을 열었으면 들어가야 한다. 문 앞에 서서 "정말 힘드셨겠어요"만 반복하는 것은 당장의 위로는 되겠지만, 결국 교사를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 일이다.


편을 드는 것과 문제 해결을 돕는 것은 다르다. 내담자의 편을 드는 것은 그를 기분 좋게 한다. 그러나 진짜 돕는 것은 때로 듣기 불편한 말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경우) 학부모의 민원이 전적으로 부당하더라도, 그 안에 교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절차나 소통의 빈틈이 있었다면 그것을 짚어주는 것이 '진짜 조력'이다. 상대가 원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동료이고 상담자다.


물론 이것은 조언을 구하는 교사에게도 해당한다. 조언을 구하면서 사실은 위로만 원하는 경우, 아무리 좋은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열어두어야 한다. 억울한 감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을 보다 넓게 보기 위한 준비다.


지지와 위로만을 구한다면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활동 보호 관련 상담의 목적은 교사가 옳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데 있지 않다. 지금 벌어진 문제를 풀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돕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 이후의 냉정함이 필요하다. 교사의 편에 서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냉정함이, 실은 교사를 가장 깊이 존중하는 방식이다.


따뜻하게 시작하되, 거기서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상담자가 가져야 할 태도다.



커버 이미지 https://www.apa.org/monitor/2021/11/feature-cultivating-empat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