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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17. 2021

아비투스(HABITUS)*와 자기 계발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아비투스(habitus)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당신의 무엇을 믿어도 되는지, 그리고 당신이 거기에서 어떤 기회를 얻는지... (아비투스, 5쪽, 한국어판 서문)


아비투스는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개념으로 경제적 부와 연결되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취향 또한 성향을 말한다. 말하자면 어떤 집단 속에서 삶을 유지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체화된 습속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 안에 사회구조가 내면화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의 개념을 '계급 불평등'과 연결하였다. 이에 따르면 교육은 계급적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사회적 위계질서를 재생산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사회화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영구한 성향을 내재화시킨다. 즉 교육은 상속되고 유전되는 그 무엇이며 이 과정에서 지배계급의 취향이 정당화된다.

사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사회적 불평등을 말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부르디외 이전에는 학습자의 성취를 결정하는 것으로 '학습에 투입한 시간'을 으뜸으로 놓았다. 엉덩이의 힘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말과 같다. 학습자의 조건을 동일하다고 전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 공부를 하더라도 학생의 집안 환경, 부모의 조력,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성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쉽게 말하여 학생의 집안, 부모, 거주지 등은 이 학생이 누릴 수 있는 아비투스이다. 학교교육을 통해 불평등이 고착된다고 보았던 부르디외는 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아비투스의 본질을 폭로하여 피지배계급에게도 비판적 안목을 길러주고자 했다.


아비투스(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다산초당)


도리스 메르틴의 책 아비투스는 어떨까. 단적으로 말하여 이 책은 '아비투스 활용법'을 다룬다. 부르디외를 통하여 저항적 사회참여를 상상했던 독자들은 당황할 수 있다. 부르디외가 교육을 통해 '문화적 재생산'이 이뤄진다고 했지만 메르틴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노력을 통해 '문화적 재생산' 과정을 거쳐 최상위 계층에 이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아비투스와 자기 계발'이라 쓴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어 출판본은 한술 더 떠 이 책에 "당신은 최상층에 오를 준비가 되었습니까"라는 띠지를 둘렀다. 메르틴 역시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문화적 재생산의 기제이면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취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간략하게 저자가 말하는 아비투스를 결정하는 일곱 가지의 '자본'을 살펴보자.  


-심리자본: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는가(낙관주의, 열정, 상상력, 끈기, 심리적 안정감)
-문화자본: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는가(존중받는 코드와 취향, 몸에 밴 고급문화와 탁월한 사교술)
- 지식자본: 무엇을 할 수 있는가(졸업장, 학위, 전문 지식, 경력,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
- 경제자본: 얼마나 가졌는가(소득, 현금 자산, 부동산, 주식, 연금, 보험, 예산되는 상속 재산)
- 신체자본: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는가((스스로 얼마나 매력적이고 건강하다고 생각하는지)
- 언어자본: 어떻게 말하는가(유창한 언변, 설명력, 주제에 부합하게 말하는 능력)
- 사회자본: 누구와 어울리는가(누구를 아는가, 인맥, 결정권자와의 친분, 영향력, 권력)


어쩌면 이 말이 우리 안에 있는 위선을 드러내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속물근성을 숨기지 말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TV에 나와 사교육의 팽창을 비판하던 교육전문가가 정작 자신의 자녀는 고액 과외를 시키는 경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누구나 그 안에 '재화와 지위 추구'에 대한 욕망이 있다. 물론 인간이 가진 지성은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기도 한다.

저자는 '개인 안에 구조화된 사회구조'에 접근하는 방식을 노골적으로 권한다. 불평등을 일으키는 기제이기 때문에 비판해야 할 대상이 아닌 추구해야 할 가치로 변모시킨다. 당신은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은가. 당신을 위선 속에 가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아비투스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도발적이며 솔직하고 대담하다. 인간 속에 숨어 있는 계층 상승 욕구를 정면에서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방법까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은 모든 면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균형 잡힌 외모와 맵시 있는 복장, 구사하는 언어, 취향, 어울리는 사람들이 다르다.   


아비투스는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다. 아비투스는 우리의 사회적 서열을 저절로 드러낸다... 지위와 구별 짓기 게임에서는 상류층 아비투스가 모든 것의 기준이다. 그런 아비투스가 더 많은 명성을 얻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 상류층 자녀들은 책임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훈련하고, 어려서부터 구별 짓기와 탁월함을 몸에 익힌다... 중산층 전체의 전형적인 아비투스는 성과 및 지위 추구다... 생존 기술과 관련한 아비투스는 상류층보다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자 계층에서 더 강하게 형성된다...(21~27쪽)


저자가 신체자본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린 조금 우울해질 수도 있다. 신체에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고 현재 어떻게 지내는지 다 적혀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부르디외 역시 아비투스를 "뇌뿐 아니라 주름, 몸짓, 말투, 억양, 발음, 버릇 등 우리를 나타내는 모든 것에 기록된 몸의 역사"라고 말한다.(207쪽) 확실히 균형 잡힌 신체와 얼굴은 타인에게 호감을 준다. 그런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인생은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게 유리한 게임'이라는 저자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사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다. 정확한 발음과 신뢰성 있는 어휘의 사용은 대체로 배운 사람의 몫이다. 학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토론하며 자기 논리를 키운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구사하는 어휘의 수가 많지 않고, 거칠게 말하며, 토론에 익숙하지 않고, 더 많이 우긴다. 이게 메르틴이 말하는 언어자본의 힘이다.  


나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착잡하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불평등을 말한다. 대체로 큰 담론 중심이다. 이 사회는 지배, 피지배의 구조로 이뤄져 있고, 개천에서 용 나오는 세상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부는 상위 1%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만약 80년대라면 이는 피지배계층, 주로 노동자들이 자각하고 투쟁하여 부의 분배를 요구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21세기인 지금 메르틴은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는 개인의 노력을 주문한다. 이런 신체를 가꾸고 이런 언어를 구사하며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고 한다. 그렇게 노력한 사람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사례를 든다.

종종 이상과 현실은 구체적으로 불화한다. 가치의 추구와 생존을 도모하는 일은 어떨까. 당장의 생존이 중요하기에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후순위가 된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가치를 말하지만 실천은 속물적이다. 비난할 수 있는가. 사회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평균적 모습은 어떤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옷과 음식을 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나.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신체를 가꾸는 것은 어떤가. 가치와 현실은 선택적인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부르디외와 도리스 메르틴의 거리만큼이나 애매한 문제이다. 시중에 범람하는 그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증표다.  




* 아비투스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 인간 개인의 몸과 영혼에 배어있는 습관을 지칭하던 'hexis'라는 용어를 라틴어 아비투스로 번역하여 자신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부르디외는 습속과 행위 양식이라는 원래의 뜻을 가져오면서도 아비투스의 주체를 개인에게서 특정 구성원 집단으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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