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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Sep 17. 2021

다시 만난 봄

글이 보이니 허리가 펴진다

못 배운 글자 때문에
못 배운 사람이 되어

70평생 허리 펴기 어려웠는데


글이 보이니 허리가 펴진다


글이 보이니 간판이 보인다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니

하나 하나 읽어보느라


걷는 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집으로 가는 길이 오래 걸린다


허리 펴고 눈도 뜨고(다시 만난 봄, 70쪽, 진귀녀)


전국 문해교실의 글을 모아 '글자'에 담은 희망의 여정 <다시 만난 봄>은 그 어떤 시보다 생생하다. 처음으로 글을 읽고 쓰게 된 후 후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 순간의 기록이다. '글이 보이니 허리가 펴진다'라고 했다. 허리를 펴는 행위에는 자부심이 깃든다. 더는 허리를 굽힐 필요가 없는 세상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게 된 후 걷는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집으로 가는 길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읽을 것이 많아지니 시간이 걸리는 신기한 체험이자 더 넓은 세계와 만나는 기쁨이다

.



손순례의 시도 멋들어졌다. 내 이름 석자 여기도 저기도 쓸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은 있었으되 글자로 표현하지 못한 긴 세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나 시인은 열 번 백 번 자신 있다는 말로 대신했다. 글을 쓰든 시를 쓰든 가꾸고 치장하는데 골몰했던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지만 글을 잘 쓰기 위한 단 하나의 도구는 '한글'이다. 한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아울러 글은 가꾸고 치장하는 것이 모두가 아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글로 옮기는 행위,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하기, 이것을 잘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준비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전국 문해교실 100의 글을 모은 <다시 만난 봄>이다.
  

은행에 가면 예금주 이름 쓰세요

병원에 가면 보호자 서명하세요
전화번호가 무엇인가요

죄지은 사람처럼 덜덜 떨렸다
받침 글자 나오면 가슴이 콩닥콩닥
글자들이 모두 도망가 버리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내 이름 석자
여기도 쓰고 저기도 쓰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얼마든지 자신 있다

열 번 백 번(80쪽, 손순례)



책 정보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707978?OzSrank=1


지난 글 다시 읽기
https://brunch.co.kr/@webtutor/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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