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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28. 2021

바로 당신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인간세상 만물 중 가장 강한 생명체임과 동시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그들은 인간 이외의 다른 종을 다스릴 수 있고, 자연 상태에 인공적 작용을 가할 수 있다. 고속열차를 타고 지나다가 매우 긴 터널이나 다리를 지날 때면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감탄하곤 한다. 높이 솟은 빌딩이나 거대한 지하도시에서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강한 생체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이다.


한편,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노화와 질병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자연재해나 감염병 같은 불확실성 은 인간을 더욱 미약한 존재로 만든다. 기계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갔고, 디지털과 네트워크는 끊임없이 인간의 고유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런 외부의 조건만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사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인간'이다. 삶에 투자한 것이 많을수록 지금 가진 것이 많을수록 타자를 경계하는 풍경이 벌어진다. 당장 가진 것이 없는 인간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자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예컨대 극심한 노동을 대가로) 자원을 획득해야 한다.   


또 다른 결에서 들여다보자.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인간의 몸은 그 자신의 마음의 작용을 확실하게 꿰뚫어 보기 힘들게 설계됐다. 가장 정교한 컴퓨터라는 뇌 조차도 자기 마음을 통제하거나 예측하지 못한다. 이렇듯 현대인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한다. 인생 전반을 통하여 축적한 부도, 가족도, 이웃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안전하게 기댈 대상을 찾는다.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통해 불안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기도 한다.


절대자(혹은 중개인)의 이야기나 전문가의 분석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줄까? 오히려 더 불안을 자극하는 경우도 많다. 절대자는 '당신이 지금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백하라고 강요한다. 이 세계가 조성하는 불안과 공포가 그것의 존재 근거이다.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면 인간은 더 이상 절대자를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십 가지의 증세와 병명이 말해주는 불안이 그들을 전문가로 만들어준다.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구하려는 인간들이 쉽게 평화를 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가 돼 버렸다.


때로 '모든 것을 알고 행하시는' 절대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다. 많은 인간들이 신앙생활을 통해 다음 세상에서 영생을 꿈꾼다. 물론 다음 세상이 현시되지 않는 이상 이는 신과의 약속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다. 영성으로 충만한 경건한 삶은 이러한 삶의 으뜸 덕목이다. 전문가의 조언과 처방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내 마음의 병을 직접 고칠 수 있나. 이들이 처방하는 조언과 각종 약, 그리고 치료 행위는 당신이 마음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보조 수단이자 조력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다른 종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은 오직 자신이 가진 내적 약량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전문가는 '당신의 말'에서 정보를 얻어 판단한다


지금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당신이 전문가 앞에서 '힘들어요, 우울해요'라고 말한 후 입을 다물고 있다면 전문가는 어떤 치료도 할 수 없다. 단지 항우울제나 수면보조제를 처방할 수 있을 뿐이다. 치료의 효과를 보려면 가능한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 바로 당신이다.

절대자는 무절제한 기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죄를 고백하는 당신은 최대한 솔직해야 한다. 구원을 원한다면 당신이 행한 그 모든 죄악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한다. '그 모든 죄악'은 당신의 내밀한 정보이며 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역시 당신이다. 다음 생의 약속은 절대자가 하지만 그 약속의 근원이 되는 '삶의 정보'를 가진 자는 바로 당신이다.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계획이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고, 어떤 생각이 당신을 회복 불가한 구렁텅이로 빠뜨릴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너무 힘들다면,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면 차분하게 당신의 삶과 생활을 냉정하게 복기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문답을 시작해야 한다.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누굴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때 내 감정은 어떠했는지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 그중에서 나 또는 타인을 불쾌하게 만든 일의 어떤 동기를 찾는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애석하지만 전문가도 찾기 힘들다.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불안은 마음의 작용이다. 정확하게는 신경을 통해서 뇌가 판단하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육체는 분리되어 있다고 믿었었다. 심신이원론이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은 붙어 있다. 마음의 불안은 몸의 긴장을 통해 나타나고 몸의 고통은 신경절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통증을 느낀다. 이는 아주 순식간에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작용이다. 따라서 현재 내 불안과 긴장의 가장 확실한 치유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다고 행복과 불행이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믿지 말라.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바깥 세계의 관계망은 내 상태를 결정하는 요소들이다.

선택의 당사자는 바로 당신


당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고 어떻게 말을 하고 글을 쓰며 행위로 옮길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자유의지(free will)에서 비롯한다. 자유의지는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판단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최근 미래 학자들은 마치도 '미래는 이런 세상이다'라고 결정돼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메타버스에서 이뤄지는 여러 작용들을 통해 미래사회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당장의 평안을 구하는 당신과 미래학자의 간극은 넓고도 깊다. 미래학자는 예언을 하고, 당신은 단지 객체화된 인간으로 '살려'지는가? 오히려 이런 생각이 당신을 더 우울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당장 당신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하라. 대부분 마음의 아픔은 인과관계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일차적으로 수행할 당사자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나는 매운 것을 먹으면 심각한 배앓이를 하는 체질이라 생각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 회식의 메뉴가 매운 음식으로 정해져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이것이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싸움인 것이다. 당신은 회식에 불참하거나 다른 메뉴를 선택하게 해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자신이 없어 몇 번을 그냥 넘겨 매운 음식을 먹고 배앓이를 반복하는 사이, 앞으로도 이런 일이 지속될 것이라는 마음이 당신을 불안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 불안함의 원인은 매운 음식 자체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구할 기회를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안함의 원인은 자유의지를 결여한 당신이다. 자유의지를 발휘해야 할 때를 알고, 이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대체로 자존감이 살아 있다. 내가 언제 어떤 말을 하고, 행위로 옮겨야 할지를 알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하거나 무엇을 거부하는 것 역시 자유의지의 영역 안에 있다. 내 삶을 타인의 평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리하겠다는 의지, 바로 그것이 자유의지이다.   





커버 그림 https://www.thegreatcoursesdaily.com/the-matrix-soul-and-free-will/  
삽입 그림1 https://www.therecoveryvillage.com/mental-health/depression/related/depression-trig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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