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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Feb 01. 2023

교육과정 대강화의 이유

2023년 1월 31일 국회토론회 발제 내용 정리

먼저 2022 교육과정 개정 국면에서 나의 독특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나2019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에서 '교육과정 생태계의 미래지향적 복원'이란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했다. 발표의 핵심 내용은 교육과정 대강화 교육과정 개념의 확장, 단위학교 중심의 교육과정 거버넌스, 교과서 자유발행제 등이었다.

이후 2020년 9월 교육부의 교육과정 담당 국장으로 발령을 받아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2022년 8월, 연말에 있을 고시를 앞두고 교육부를 나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과정에 대한 각계의 요구를 받았던 입장에서 요구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교육과정 개발 과정에 몸 담았기에 책임을 공유하는 입장이다. 요즘 교육과정 관련 발표나 강의를 앞두고 유감을 표명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2021년 9월, 교육부는 2022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을 발표하였다. '2022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은 이듬해 교육과정 공청회 시안이 나왔을 때 비교 기준이 되기도 했다. 2022 교육과정 총론, 각론은 행정예고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과정을 거치면서 총론 주요 사항에 비하여 자유민주주의 기술 추가, 민주시민교육, 생태전환교육, 성평등 교육, 일과 노동의 가치 등에 대한 반영이 미흡하거나 축소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교위 심의과정에서는 제주 4.3에 대한 반영 요구가 있었고, 고시 후에는 5.18 민주화운동이 누락됐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교과서 편찬기준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보통 '교육과정 대강화'라는 말은 교육과정 연구자와 현장 교원들이 주로 쓰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각각 주장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결이 달랐다. 국가교육과정이 너무 촘촘하므로 이를 여유 있게 구성해야 현장의 자율성이 생긴다는 의견에서부터 정치사회적 요구를 최소화해야 교육과정의 자주성과, 전문성이 살아난다는 논의까지 '대강화'의 개념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교육과정의 개념 역시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다. 문서로 고시하는 규범적 성격의 교육과정에서부터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에서 쌓이는 총체적 삶의 경험이라는 정의까지 교육과정의 정의는 다양하다. 오늘은 교육과정 대강화와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2020년 9월부터 2022년 8월까지 교육부 교육과정 담당 국장으로 근무할 때 내가 생각했던 교육과정 대강화를 취지와 방향, 방법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교육과정의 대강화를 하는 취지와 방향은 먼저 '학습량 적정화'를 들 수 있다. 학습량 적정화란 기존 교육과정의 학습량이 과도하여 학업 포기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과정 운영의 여백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이를 통해 교사의 교육과정 운영 자율성을 높이고 학습방법에서 '깊이 있는 학습(이해)', '탐구 중심 학습(활동)', 학습 과정의 가치(태도)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으로도 지역교육과정, 학교교육과정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여백이 필요했다. 실제로 현행 국가교육과정의 내용 요소를 그대로 두고 학교 자율시수를 도입한다든지, 교과(군) 및 창체 시수 20% 증감과 같은 학교 자율성을 높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교육과정 대강화의 방향을 학습량 적정화와 실행 단위의 자율성 확보라고 할 때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학습요소의 삭제'와 '성취기준의 포괄적 기술'이었다. 2015 교육과정에 있었던 학습요소를 삭제한 이유는 가르치고 배워야 할 학습요소를 나열할 경우에는 이를 모두 교과서에 담아야 하고, 수업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의 교육과정 자율성은 물론이고 수업과 평가의 혁신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학습량이 많아지면 학교는 진도 빼기 시험대비 위주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으니 깊이 있는 학습이나 탐구활동을 할 수 없다.

성취기준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교 자율시수를 확보하려면 성취기준의 개수를 줄여야 하는데, 줄어든 성취기준에 기존의 학습량을 다 넣게 되면 너무 촘촘해져서 교육과정 대강화의 취지를 상실한다. 이런 까닭에 교육과정 대강화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학습요소의 삭제와 성취기준의 포괄적 기술이다.

교육과정 대강화와 관련하여 '지식의 선정' 문제가 있다. 교육과정을 통해 다루는 지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선정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은 '당대의 사회적 합의'이다. 사회적 합의의 정도는 사회 구성원의 지적 교양과 시민적 소양에 비례할 것이다. 현재는 이를 교과 공동체에서 연구를 통해 공급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경우 교과 논리 및 분과주의가 대단히 강하다. 실제로 각 분과학문에 종사하는 분들이 교육과정 대강화에 저항을 하는 구조이다. 특히 광역교과를 지향하는 경우 서로 자기 영역의 내용이 덜 다루어질까 봐 매우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 교육과정은 대강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역 교육과정과 학교 교육과정의 근거를 만들어 냈다. 이는 학교 자율시수 도입으로 구체화됐다. 단순하게 말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지역과 학교에서 과목을 개발하여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육과정의 복잡성(https://blog.robotel.com/standards-curriculum)


그런데 2022년 들어 정부가 교체됐다. 그리고 필자는 교육부를 나와 시도교육감협의회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진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했다. 사실, 교육과정 대강화의 숨은 목적 중의 하나는 구체적 학습요소를 명시하지 않고 성취기준의 포괄성을 키움으로써 정부가 바뀌더라도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국가교육위원회도 설치를 한 것이다.

8월 말부터 이어진 교육과정 공청회는 한마디로 의견수렴의 장이라기보다 각 영역의 욕구 분출의 장으로 기능했다. 교육부는 의견수렴과 욕구 분출을 구분하여 공청회를 정상화해야 했음에도 부문의 욕구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른다. 이 선택적 수용이 나중에 4.3/5.18 반영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합리적인 해명을 못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교육과정 대강화의 취지라는 해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모든 요구와 내용에 대하여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응이었으나 불신을 자초한 꼴이 됐다.

이번 교육과정의 사회적 담론화 과정에서 교육과정의 대강화와 그에 따른 학습량 적정화의 배경 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과정이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2022 교육과정의 균형 잡힌 노력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한 점 역시 안타깝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교육부의 후속조치(교육과정 연수, 해설서 개발, 교과서 개발)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역할이다. 교육부는 지금부터 이어질 교육과정 연수를 반드시 '참여형 워크숍'으로 진행하길 바란다. 총론에 대한 이해 역시 참여자들의 숙의과정을 통해 이뤄지도록 하고 각론 및 지역/학교 교육과정도 스스로 참여하여 설계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면 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수시개정을 포함하는 국가교육과정의 내용과 기준 마련이라는 과제와 전문/특별위원회 및 교육과정 모니터링단 운영 등의 과제 이행이 막중하다. 현재의 과 수준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찬 규모이다. 교육과정과의 역할과 규모를 확대해야 하며 가능하면 시도에서 활동하는 교육과정 전문가 교사들의 파견 근무를 통해 현장성을 강화해야 한다. 시도교육감협의회 역시 3단계 교육과정 현장 네트워크 활동을 더욱 내실 있게 진행하고, 교육청과 결합을 도모하며, 지역 및 학교 교육과정 설계 작업을 지원할 것이다.
  
끝으로 교육과정을 말할 때 지나친 분과주의, 특정 영역에 대한 교육과정 포함 요구 등은 지양됐으면 좋겠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교육과정 대강화도, 깊이 있는 학습도, 역량 함양도, 학습자의 행위 주도성도, 나아가 학습자의 사회적 개인적 행복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 내용은 2023년 1월 31일 국회 교육위원회 강민정의원실 주관의 <2022 교육과정 무엇이 바뀌었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구두로 발표한 내용을 문서로 정리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2022 교육과정 개정과 내용에 대한 평가가 있었으며 안정적 국가교육과정 제/개정을 위한 향후 과제를 모색하였다.  


몸글에서 언급한 2019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미래지향적 교육과정 생태계 상상

https://brunch.co.kr/@webtutor/252



커버 이미지 https://taleem-edu.com/portfolio/curriculum-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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