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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18. 2019

요즘 아이들

무선 호출기를 즐겨 쓰던 20년 전 아이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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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선지 15년이 되었다. 1985년 동작구에 있는 J중학교로 첫 발령이 났을 때, 나는 참 열성적이었던 것 같다. 학습부진 학생들을 모아서 별도로 수업을 했고, 아이들과 등산도 자주 다녔으며, 일일 야영에다 연극반 지도교사까지 했었는데, 별로 힘들었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젊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대 청춘시절과 40대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을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면 무리겠지만...


하여튼, 15년 전에는 한 반 아이들이 거의 70명에 육박했는데 일주일에 스물네 시간, 3학년 담임을 하면서도 신명이 났었다. 지금 내가 수업 들어가는 학급의 학생수는 대략 30명 선이다. 그리고 지금 담임은 맡고 있지 않고 주 20시간 수업을 한다. 그런데 더 힘들어졌다. 흔히 하는 말로 요즘 애들은 그때 애들의 두 몫을 한다고 한다.


개성이 강하고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교사의 권위를 종종 무시하는, 체벌이란 상상할 수도 없고 혹 가벼운 체벌을 당하더라도 그대로 감수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심지어 어떤 때는 개인적인 학습지도를 '끼어든다'라고 불평하는 학생도 있다. 담당 과목이 수학인 탓에 자주 문제 풀기를 시키는 편인데 지도에 응하지 않는 학생들도 꽤 있다. '왜 문제를 풀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답이 간단하다. '모르는데 어떻게 풀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렇다. 요즘은 애정을 갖고 지도하려면 정말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최소한 교사로서의 자존심, 어른으로서의 작은 권위마저도 버리고, 소위 '21세기 선진적 교사'로 거듭나야 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따뜻한 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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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혹은 '신세대'라 지칭되는 그들에게 적어도 '예전 아이들'과 다른 정체성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렇지 않고 그저 '예전 아이들'에 비하여 좀 더 개방적이라거나 좀 더 개성 있다는 정도일까?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예전 아이들에 비하여 많이 다르다. 이들의 행동양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선, 그들은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정보화 시대의 혜택을 듬뿍 받고 성장하는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출기와 휴대폰, 그리고 피시방 등은 그들이 구가하는 문화의 대표적 도구들이다. 이것들은 속도감에 있어 으뜸이며 단순 명쾌한 사고를 요구한다. TV와 잡지는 점점 더 '눈즐김'의 요소를 강화시켜 간다.

그들은 권력과 권위가 무엇인지 모른다. 87년 6월 항쟁 이후에는 사실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이 없었다. 자연스레 그들에게서는 건강한 '저항의 논리'같은 것을 엿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존 가치와 질서의 붕괴를 통하여 획득되는 무한자유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부모세대로부터 가난을 대물림받지는 않을 것 같다.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은 곧,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허상 속의 풍요일지라도) 일부 청소년은 이미 어른보다 용돈을 많이 쓴다. 교육의 힘과 권위는 청소년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학교가 가진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들, 예컨대 집단생활, 민주적 질서와 절차, 규칙, 공동체와 같은 것에 대하여 요즘 아이들은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어제 운동장 조회를 하면서 분노하는 그들은 보았다. "이런 것은 왜 하느냐, 교장선생님은 늘 훈화가 길다..." 뭐 이런 종류의 불만인데, 운영자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러한 불만을 분명 가졌지만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다르게 전해져 온다. 곧, '거부'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다. 사회 전체 분위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땅에 떨어지고, 모든 것이 수혜자 중심(등록금 부담하는 사람) 교육으로 변해가면서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는 과도적 현상인지, 교육의 목적 혹은 근본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다.



* 이 글은 20년 전 쓴 필자의 글이다. 교컴 칼럼으로 썼던 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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