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교원교육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Aug 26. 2019

매뉴얼 유감

교사는 사유를 통하여 전문성에 다가갈 수 있는 존재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고 대화하며, 때로 상처 받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의 변화를 겪는 교사들이 전국에 지천으로 널렸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마치도 이 모든 일들이 교사가 아이들과 소통하는 기술을 좀 더 익히면 많이 완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온갖 매뉴얼들에 관한 것이다. 학생지도 매뉴얼, 상담 매뉴얼, 대화 매뉴얼, 심지어 치유 매뉴얼까지 있다. 


자연재해가 났을 때 적용하는 대응 매뉴얼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누구라도 절차적인 설명에 따라 행동 요령을 익히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새로 장만한 전자제품을 어떻게 작동하고 사용하는지를 적은 사용자 안내서 역시 대표적인 매뉴얼이다. 사용자는 이 문서를 보고 제품을 작동시키거나 고장이 났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럴 때 쓰는 것이 매뉴얼이다. 말하자면 매뉴얼은 활동 기준이나 업무 범위 혹은 사용자 안내 사항을 문서로 적어 놓은 것이다. 즉, 활동의 경로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에 대하여 절차를 순서를 적어 놓은 것이 바로 매뉴얼이다. 


그런데 대화 매뉴얼이란 무엇인가? 그 매뉴얼에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저렇게 말할 것이고, 그에 대해 나는 또 어떻게 말하면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러한 사고는 대화를 기계적 절차로 보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교사가 상담기법, 수업기법, 대화기법을 익히고 연습하면 어느 정도는 아이들과의 소통에 이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어느 정도’에서 머물고 말 것이다. 


학교에는 감정 컨트롤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교사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과 부조화를 경험하고 큰 상처를 받으며 생활한다. 이런 모든 부조화를 단박에 꿰뚫어 자질이 풍부한 교사로 거듭난다는 것이 과연 매뉴얼로 가능한 일인가? 자질이 풍부한 교사란 어떤 교사인지 정의는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매뉴얼에 답이 있을 리 만무하며, 결국 남는 것은 힘든 교사를 위하여 충분히 지원했다는 증빙일 뿐이다. 


교사들에게 좋은 책을 읽을 시간을 충분히 주라. 또 좋은 사람 만나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하라. 교사는 기본적으로 사유를 통하여 그의 전문성에 다가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 사유가 시간적, 공간적, 문화적으로 막혀 있는 상태에서 기술적 합리성으로 무장된 매뉴얼을 들이민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은 교사가 어떻게 사물을 폭넓게 바라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며, 그의 사유가 안목을 풍부하게 하여 결국은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그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이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교사들에게 무슨 기법을 익히고 실천하라고 달달 볶는 것에서 벗어나,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로움을 주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그 어떤 매뉴얼도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명약이 될 수 없을 것이며, 문제를 왜곡 혹은 심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이라 생각한다. 

* 교육사유(함영기, 2014)에서 일부 발췌 


* 커버 이미지 출처 https://golos.io/@sxiii/wordpress-openshift


매거진의 이전글 교육과정의 생명력을 확보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