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디어의 사용과 문해력 저하 현상에 대하여
잊을만하면 출간한 책들에 대한 인세가 계좌로 들어온다. 소액이지만 2008년에 쓴 책의 인세도 아직 들어오는 것을 보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운이 좋은 편이다. 종이책 생태계가 점점 쇠락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출판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기성 작가들의 책도 1쇄를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한다. 가장 큰 요인은 디지털 미디어의 확장이다.
분명하게 디지털 미디어가 주는 편익이 있다. 온라인 세상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지식과 정보를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나. 그런데 디지털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면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종이책을 더 멀리하게 되고, 미디어 중독상황으로 빠져들며,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넓고 얕게 훑는 습관이 생긴다. 그런데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네트워크는 사용자의 온라인 로그를 추적하여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한다.
사용자는 넓은 지식을 구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알고리즘은 부지불식간에 모든 사용자를 좁게 가둔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페이스북과 유튜브이다. 이미 페이스북은 내가 머무는 시간, 내가 남긴 좋아요와 댓글, 검색하는 내용, 구입하는 상품을 모두 데이터화하여 맞춤 광고로 노출한다. 물론 요즘은 무작위로 광고의 양을 늘리는 것 같기도 하다.
원하는 내용을 찾기 위해선 사용자의 수고로움이 필요하지만, 어차피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동기가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는 '유동하는 근대', '액체 현대' 개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우리가 SNS에 머무는 것, 일종의 온라인 '소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는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필요에 따라 즉시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용자의 착각일 뿐, 이러한 선택적 소비라고 착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공급자의 유동성이 작동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인간 고유의 정체성과 안정성을 잃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광고 보기, 내가 아닌 페이스북에서 만들어주는 화면 따라가기를 통해 의미 없는 시간 보내기로 전락한다.
요즘 구글보다 더 많이 사용한다는 유튜브는 훨씬 정교하고 노골적이다. 사용자의 관심에 따른 다양한 영상을 볼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하지만 공급자는 어느새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좁게 가둔다. 사용자가 공급자의 알고리즘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의도적으로 일관성 없는 검색어를 반복하여 입력한다면 또 모를까. 그러기엔 내 관심사는 유한하고 유튜브가 담고 있는 영상은 무한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유튜브가 가진 '액체성'으로 인해 내가 원하는 정보만 선별하여 보여준다고 착각하는 사이, 이미 나는 좁게 갇힌다. 종이책이 덜 읽힌다 하여 온라인 미디어를 온라인 매체를 사용하여 비판하고 '책을 많이 읽읍시다'라는 권고가 현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최근 어린이, 청소년, 성인 할 것 없이 문해력이 저하하고 있다는 개탄 또한 현실이다.
특정 단어를 아는가의 여부, 퀴즈식 흥밋거리로 문해력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것 역시 문해력의 개념을 좁게 가둘 뿐이다. 계좌번호를 괴자번호로, 일취월장을 일치얼짱으로 적는다 하여 문해력이 저하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이 같은 현상을 우스개로 희화화하려는 가벼운 의도일 뿐이다. 몇 경우는 실제 그랬는지도 모를 작위적 사례도 많은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하는 문해력은 특정 단어의 뜻을 아는 것 그 이상이다. 문해력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기본으로 앞뒤 맥락의 연결과 실제 생활에서 적용하는 능력, 나아가 이를 자기의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까지 두루 포괄하는 현대인의 필수 능력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은 3대 기초소양으로 문해력, 수리력, 디지털 소양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디지털 소양은 단말기나 소프트웨어 사용 자체의 능력이 아니다. 내 학습에 디지털 기기를 도구로 활용하는 능력과 그로 인한 부작용, 나아가 디지털 사용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까지 포괄하는 말하자면 '리터러시'를 포함하는 역량이다.
당신이 온라인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생각보다 크다. 시간의 통제권을 공급자에게 빼앗기는 것은 기본이고, 공급자의 알고리즘을 따라 의미 없는 클릭질로 자존감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타인이 올리는 사생활은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것'을 올리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과 갈증을 느껴봐야 허무감만 있을 것이다. 고작 해봐야 하등 쓸모없는 대리만족이 최대치다.
"이것은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이야"를 생각하고 현실과 구분할 새도 없이 디지털 세상은 그 특유의 유동성으로 인해 당신을 생각 없는 소비자로 전락시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종이책 많이 읽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글이 산으로 갔다. 이 글을 원고지에 연필로 썼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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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iinfotech.com/2018/01/22/this-is-a-digital-world-embrac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