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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Sep 20. 2024

저 길 끝에는

재미없고 시시껄렁한 일상을 반복하기

집에서 강가로 나가려면 거치는 육교가 있다. 프랑스 어느 도시와 결연한 기념으로 만든 육교라는데 '이씨의 다리'라고 한다. 육교를 건너다 남쪽을 보니 자동차 행렬이 바쁘다. 저 길을 죽 따라 4시간만 달리면 목포가 나온다. 내려가는 길 오른 쪽으로 서해바다가 보이겠지. 5월 이래 집을 가장 멀리 떠난 곳이 고작 소독약 냄새 가득한 병원이었다. 몇 개월 째 계속되는, 언제까지일지 가늠도 안되는 납작한 삶이다.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께서 쓰신 '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이란 문고판 책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그 책을 끼고 다녔다. 한 문장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제임스딘이 말했다던 "우린 시속 100마일로 달려야 하고 또한 시속 100마일로 죽어야 한다"란 문장이다. 겉멋에 치기로 무장했던 나는 군복무할 때 백지에 그 문장을 써서 철모 안에 넣고 다녔다. 보직이 정보작전병이라 대대 상황실에 근무했는데, 하루는 정보장교가 그걸 보고 졸라 웃더니 나를 관심사병 취급을 했다.


열대야가 끝나지 않은 구월의 저녁에 '이씨의 다리'를 건너며, 서해바다를 옆에 끼고 목포까지 시원하게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현실을 직시하고 뭉근한 통증이 남아 있는 복부를 쓰다듬으며, 되도록 찬찬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재미없고 시시껄렁한 날을 반복하는 건 확실히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시속 100 킬로미터로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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