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가 오는 날의 체육시간이 싫었다
아침이 되자 가장 일찍 온 학생이 교실의 문을 열었다. 검은색 출석부에는 열쇠가 끈에 묶여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온 학생은 어제 주번으로 정한 남학생이었다. 가방을 자리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다른 한 명의 주번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아이 씨... 늦었네...”라고 중얼거리며 주번 2는 자기 자리에 가방을 내팽개치듯 놓고 주번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뛰어나갔다.
잠시 후 주번 1, 2는 큰 주전자와 컵을 들고 와서 칠판 왼쪽 책상에 놓았다. 주번 1은 분필가루가 거의 묻어 있지 않은 지우개를 들고나가 벽에다 팡팡 소리를 내며 털었다. 주번 2는 대걸레에 물을 묻혀 교실과 복도 바닥을 닦았다. 8시 30분이 되자 아이들은 대부분 등교했고, 아침 교직원회의를 마친 신 선생도 교실로 올라왔다.
“자 출석을 부를 겁니다. 큰 소리로 대답하세요.”
신 선생은 또박또박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떤 학생은 손을 치켜들며 “네”라고 대답했고 몇몇 아이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원 출석이었다. 신 선생은 “한 달 동안 모두 학교에 잘 나오면 ‘무결석학급’으로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몸이 좀 아프더라도 일단 학교에 나오세요.” 아이들은 일제히 “예”라고 대답했다.
신 선생은 교무수첩을 보고 전달 사항을 말했다. 그리고 가정환경조사서라고 제목이 적힌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분단의 학생 수만큼 맨 앞자리에 놓으면 아이들은 자기 것을 빼고 뒤로 돌렸다. 팔랑거리며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을 부모님과 함께 작성해서 이번 주 수요일까지 가져오세요. 아, 그리고 사진 한 장은 여기 위에 붙이고 나머지 세 장은 선생님께 제출합니다. 학생증, 명렬표, 생활기록부에 붙일 겁니다.”
가정환경조사서 왼쪽 위에 사진을 붙이는 네모난 칸이 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부모의 이름과 직업, 그리고 집주소와 전화번호를 쓰는 칸이 맨 위에 있었다. 부모의 직업을 쓰는 칸에는 ‘구체적으로’라는 말이 괄호 안에 쓰여 있었다. 출신 초등학교와 가장 친한 친구를 적는 곳도 있었다. 집에 TV, 전화, 냉장고가 있는지도 동그라미로 표시하도록 했다. 장래희망과 취미를 적는 칸도 있었다. 맨 아래에는 모든 가족의 직업과 직장, 다니는 학교, 나이 등을 적도록 했다. 뒷장에는 학교에서 집까지 찾아가는 약도를 그리는 커다란 빈칸이 있었다.
맨 뒷자리 학생이 가정환경조사서를 받은 것을 확인한 신 선생은 이제 반장을 뽑는다고 말했다. “혹시 초등학교 때 반장 해본 사람?”이라고 물으니 맨 뒤에서 키가 큰 녀석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그래, 네가 반장을 해보았구나. 혹시 다른 사람은 없니?" 잠시 뜸을 들이다가 신 선생은 "그럼 네가 우리 반 반장이야. 다 같이 박수...”라고 하며 처음 손을 든 학생을 반장으로 정했다. 일 학년 신입생은 담임교사가 반장을 임명하는 것이 이 학교의 규정이라고 했다. 이어서 신 선생은 "그럼 부반장은 여학생 중에서 뽑아야겠네" 하면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신 선생은 맨 뒤에 앉은키가 큰 여학생을 지목했다. "네가 부반장을 해야겠네..." 이렇게 신 선생은 반장과 부반장을 임명했다.
신 선생은 교무주임이 배치고사 성적이 적힌 명렬표를 신 선생에게 주면서 반장, 부반장은 90점 이상 중에서 뽑으면 된다고 한 말을 상기했다. 다행히 손을 든 학생의 배치고사 성적은 92점이었고, 부반장으로 정한 여학생은 90점이었다. 2학년 때는 성적이 90점 이상 되는 학생 중에서 선거를 통해 뽑는다고 했다. 다른 반 담임들은 일 학년 때 반장이 중요하다면서 학생들의 환경조사서를 검토한다고 했다. 신 선생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만 반장 자격을 주는 학교의 규칙이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반장으로 뽑힌 학생은 성실했다. 조회와 종례시간, 그리고 매 수업시간 시작과 끝에 “차렷, 경례!”라고 우렁차게 구령을 붙여 인사를 했다. 교무실 학급함에서 전달사항을 뽑아 교탁 위에 올려놓거나, 담임교사의 심부름을 하거나, 노트를 모두 걷어 교과 선생님에게 제출하고, 다시 받아다가 나누어주는 일을 했다. 체육시간에는 미리 나가 아이들을 줄 세웠다. 아이들은 담임을 대신하여 학급운영을 돕는 반장을 인정하고 따랐다.
그날은 도덕 시간이었다. 도덕 교사는 류 선생이었다. 그는 다른 학교에서 십 년 이상 근무하다가 이곳에 온 경력교사였다. 류 선생은 첫 시간부터 학생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도덕 시간에는 도덕만 배우는 게 아니야. 지금 시간표에도 ‘반공도덕’이라고 돼있고, 여기 이 책 보면 ‘승공통일의 길’이라고 돼 있지? 선생님이 이 책을 가져오라 하면 그날은 반드시 이 책을 가져와야 한다. 알겠나?” 류 선생은 위압적이었다. 옆 반에서 들려온 소문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답변을 못하면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린다고 했다.
학생들은 도덕 시간이 되면 공포에 떨었다. 류 선생은 거의 칠판을 쓰지 않았다. 대부분 설명이나 예화로 수업을 진행했고, 때로 반공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혼자 흥분하곤 했다. 교과서에 맞게 진도를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가르칠 계획은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다. 류 선생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수업했다. 갑자기 배우지도 않은 교과서 내용을 물어보고는 답변을 제대로 못하면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등을 때렸다.
도덕 시험은 중간과 기말고사만 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알아서 교과서를 읽고 중요한 내용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암기하였다. 한 번은 류 선생이 한 학생을 지명하여 질문을 했다. “어이, 거기 정재호, 일어나 봐.” 정재호는 간질을 앓고 있었고 가끔씩 입에 거품을 물고 교실에 누워 몸을 떠는 아이였다. 정재호는 잔뜩 겁에 질렸다. 류 선생이 물었다.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곳을 뭐라고 하지?” 교과서에는 ‘인민반’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황한 정재호는 “창고”라고 답했다. 답변이 나오기가 무섭게 류 선생은 정재호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그날 이후 류 선생은 정재호를 ‘창고’라고 불렀다. 류 선생이 “야, 창고!”라고 부르면 정재호는 벌떡 일어나 긴장하며 몸을 떨었다.
신설학교라서 교사들이 모두 충원되지 않았다. 건물도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아서 올해까지는 2학년이 들어갈 교실을 짓고, 내년이나 돼야 3학년 교실을 짓는다고 했다. 2년 내내 학교는 공사판이 될 것이다. 음악교사는 내년이나 돼야 발령을 받는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옮겼다는 체육교사가 음악을 가르쳤다. 음악 시간이 되자, 옆 반 아이들이 몰려 들어왔다. 합반이라고 했다. 정식 음악교사가 올 때까지 합반을 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체육교사가 거구의 몸을 이끌고 교실에 들어왔다. 올해 이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중 건반 악기를 다루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작은 전자 오르간이 교탁 옆에 있었다.
체육교사는 다혈질에 툭하면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한 교실에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을 몰아넣고 수업을 하자니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아무 아이나 끌어내어 뺨을 때리곤 했다. 뺨을 맞아본 아이에 의하면 손바닥이 마치 솥뚜껑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칠판을 다루는 것도 거칠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여기저기에 낙서하듯이 판서를 했다. 나는 이 교사가 들어올 때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떨 땐 일부러 분필과 손톱을 내 몸에 마찰시켰다. ‘삐이익’하고 불쾌하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교실의 모든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나 역시 내 몸에서 나는 이 소리를 가장 싫어했다. 특히 분필과 손톱, 그리고 내 몸과 마찰이 일어나는 그 느낌은 소름이 끼쳤고, 잔상이 오래갔다. 음악시간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일주일에 두 번 음악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체육은 일주일에 세 시간을 했다. 대부분 운동장에서 했는데 비가 오는 날엔 실내에서 이론 수업을 하곤 했다.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는 날이면 여학생들은 체육복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서 갈아입는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은 교실에서 훌렁훌렁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체육수업 시간이 끝나면 아이들이 투덜대며 들어왔다. 뜀틀을 넘지 못해 뺨을 맞은 아이에, 텀블링을 하는데 체육교사가 도와준다며 여학생의 등을 세게 만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비가 오는 날은 교실에서 이론수업을 한다고 해놓고는 수업과 관계없는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았다. 또 옆반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한 번은 체육교사가 반장을 불러 세웠다. “체육은 왜 하는지 말해봐.” 반장은 교과서에서 읽은 대로 “체육을 하면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조화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반장의 모범답안이 나오자 체육교사는 제법이라는 듯이 비웃으며 자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주로 자기 경험에 비추어 체육의 목적을 말했다. 몸이 건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몸이 아프면 '꽝'이라면서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반장이 말한 체육의 목적이 더 합리적인 것 같았다. 어느 날인가 비가 오지도 않는데 실내체육 수업을 했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반장을 나오라고 해서 칠판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보라고 했다. 반장은 분필을 들고 망설임 없이 해안선의 들고 나는 곳까지를 포함하여 금세 지도를 완성했다.
체육교사는 역시 제법이라는 듯, 그러나 그렇게 늦게 그려선 안 된다고 하더니 자기 스스로 분필을 쥐고 “지도란 이렇게 그리는 거야” 하면서 3자 두 개를 이어 붙여 한반도 모양을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빠르게 해야 뭘 해도 성공할 수 있다면서 체육수업과는 관련도 없는 일장훈시를 하였다. 체육교사는 아무런 맥락도 없는 그냥 신변잡기식 이야기로 수업을 때웠다.
어느 날 소문에 반장의 뺨을 때렸다고 했다.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반장은 억울하다고 했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교실로 들어왔다. 복도 왼쪽에 학생들이 몰려 있어서 잠시 피해서 오른쪽으로 갔을 뿐이라 했다. 내가 보기에도 체육교사는 반장을 이유 없이 미워했다.
사회과목도 일주일에 세 시간을 공부했다. 그중 한 시간은 지리를 배웠다. 사회교사는 한마디로 판서의 달인이었다. 칠판에 쓰는 글씨는 정갈했고, 한 시간에 맞추어 칠판 한가득 작품을 그려 놓은 것처럼 내용을 구조화했다. 흰색 분필뿐만 아니라 노랑과 파랑, 붉은색을 섞고 화살표와 네모, 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예술적인 판서를 하였다. 설명도 알기 쉽고, 아이들에게도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발표도 골고루 시켰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노트 필기할 시간을 주었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칠판을 지웠다. 시간이 조금 남는다 싶으면 지우개를 탈탈 털어서 내려놓곤 했다.
나는 사회시간이 오래가길 바랐다. 이렇게 내 몸을 이용하여 멋진 판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나도 뭔가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사회교사가 아이들이 노트 필기를 끝낼 무렵, 지우개를 들면 못내 안타까웠다. 그 열정의 흔적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쓱쓱 정성스럽게 지우개로 판서 내용을 지울 때면 뭔지 모를 경외심에 숨을 죽였다. 필압도 너무 적당하여, 그 모든 판서를 받아내는 기분이 좋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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