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신림동에 있는 어느 공장이다. 태어났다기보다는 조립됐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동차 회사가 차량의 모든 부품을 다 만들지 않고 하청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아 조립하는 것과 같았다. 어디에선가 나를 이루는 소재와 부품이 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사각의 틀을 이루는 나무가 초벌 가공을 거쳐 들어왔다. 사각의 틀은 긴 쪽 두 개, 짧은 쪽 두 개씩 짝을 이뤄 이곳에서 조립됐다.
사각틀의 아래쪽에는 둥근 홈을 냈다. 아래 틀 밑에는 서랍을 하나 달았다. 몸체를 이루는 넓은 판은 베니어판 상태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후가공을 거쳐, 짙은 초록색의 물감을 칠했다. 작업하는 사람들은 물감을 칠할 때 매우 신중했다. 스프레이 주둥이에서 초록색 물감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몸체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정확히 평행이 되도록 열 줄에서 열두 줄을 매겼다. 때로 깍두기나 원고지가 매겨진 작은놈들도 이곳에서 조립이 됐다. 나무를 자르는 기계톱과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전기 대패의 소음으로 공장 안은 종일 시끄러웠다. 직원 중 몇은 소음 방지 헤드폰을 쓰고 작업했다. 그러면 옆 동료의 말도 못 알아들어 수신호를 자주 보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에 공장에서 나오는 톱밥과 먼지가 떠올랐다.
여기서 조립을 마친 나와 내 친구들은 새로 지어진 학교로 들어가기로 돼 있었다. 나는 서울 동작구의 어느 신설 중학교로 다른 열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배달이 되었다. 그중 출세한 녀석은 교무실로 들어간 놈이었다. 이미 흰 페인트로 학급 현황과 출결 현황란의 선을 그었고, 주번교사 이름과 주훈 등이 들어갈 칸도 할당이 돼 있었다. 학급 현황 아래는 담임교사와 부담임교사의 이름을 적는 칸도 있었다. 그 학교에서 글씨를 가장 잘 쓰는 필경 담당 직원이 신중하게 교사들의 이름을 적어 넣을 것이다.
나는 2층에 있는 계단 옆 교실로 옮겨졌다. 인부들은 교실의 앞쪽에 우리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일층 교실부터 벽에 고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내 차례가 왔다. 출입문에 매달린 학급 표찰을 보니 여기는 1학년 6반이었다. 인부 두 명이 나를 거칠게 다루었다. 벽돌을 쌓아 올린 교실 앞 벽에는 칠판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파여 있었다. 인부들은 그곳에 전기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복도를 타고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인부들이 나를 들어 올리더니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서 벽에 단단히 고정시킨 후 내 몸을 덮고 있던 비닐을 우악스럽게 벗겨냈다. 아직은 겨울이었다. 아이들이 이 교실에 들어오려면 두 달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교실벽에 칠한 페인트 냄새가 지독했다. 천장에 마감재로 쓴 석고보드에서도, ‘도끼다시’라고 부르는 바닥의 콘크리트에서도 새것의 냄새가 났다. 며칠 후 교탁이 내 앞에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이 쓸 책상과 걸상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얇은 비닐 옷을 입고 있었다. 얼추 세어보아도 책상과 걸상은 각각 60개가 넘었다.
인부들은 페인트 냄새를 빼야 한다며 종일 창문을 열어 놓았다. 맵고 찬 공기가 교실을 맴돌았다. 어떤 날은 저녁에 창문을 닫고 가는 것을 잊어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다. 2월도 끝나갈 무렵, 계단 쪽에서 낯선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왔다. 신설학교로 전입해 온 교사들이 각기 자기에게 배정된 학급으로 올라왔다. 나는 선을 보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잠시 후 교실로 들어온 이는 젊은 교사였다.
교탁으로 다가온 교사는 교실 중앙을 응시하면서 교탁의 양옆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흠흠’하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뭐라고 중얼거렸다. 교사는 몸을 틀어 나를 보았다.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슬며시 내 몸에 손을 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그녀는 내 허리춤에 있는 서랍에서 흰 분필을 꺼내어 내 몸에 ‘신지영’이라고 썼다. 그리고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몸을 지나가는 분필의 감촉은 거칠었다. 값싼 분필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이름 석자를 쓰고는 손을 탁탁 털더니 만족한 듯 바라보던 신 선생은 입꼬리를 올리며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지우개를 들어 쓱쓱 지웠다. 내 몸도 새것이요, 지우개도 새것이라 '신지영'이라는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신 선생은 창가로 가서 운동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뒤쪽 텅 빈 게시판을 살피기도 했다. 또 청소함을 열어 청소도구를 확인했다. 빗자루 하나를 꺼내더니 바닥을 쓸었다. 그렇게 교실 곳곳을 살펴보던 신 선생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회초리로 칠판을 땅땅 두드리는 거친 선생도 있다고 했다. 또 분필을 사용할 때 너무 힘을 주어서 몸을 아프게 하는 선생도 있다는 것이다. 신 선생의 필압은 적당했다. 건성으로 흉내만 내는 것 같지 않았고 무리하게 힘을 주지도 않았다. 앞으로 일 년을 신 선생과 함께 지낸다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다른 과목의 교사들도 조용하고 순한 사람들이기를 바랐다.
운동장 쪽이 시끄러웠다. 입학식이 진행되는 듯했다. 새로 이 학교에 발령받은 체육교사가 아이들의 줄 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앞으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라고 외치면서 아이들을 정렬시켰다. 몇 번이나 “여러분들은 이제 초등학생이 아니야!”라고 소리를 쳤다. 소리는 내 몸 바로 위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이어 교무부장이 “지금부터 입학식을 거행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 교사 소개에 이어 교장의 훈화가 시작됐다. 교장의 훈화는 길고 지루했다.
교장의 훈화가 끝나자 신입생 대표가 나와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선서를 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오른손을 들어 선서했다. 선서가 끝나자 신입생 대표가 선서가 적힌 종이를 교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오늘 처음으로 배운 이 학교의 교가를 불렀다. 관악산의 정기를 받아 힘써 배워서 나라의 기둥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교가 제창이 끝나자 체육교사가 다시 나섰다.
“1반부터 5반까지는 동편 현관으로, 6반부터 10반까지는 서편 현관으로 줄 맞추어 입실!”
구령이 떨어지자 스피커에선 ‘콰이강의 다리’라는 행진곡이 흘러나왔다. 신입생들은 새 담임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복도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렸다. 신 선생은 육십여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1학년 6반으로 왔다.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까만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남학생들의 교복은 빳빳한 깃에 유난히 빛나는 황금색 단추가 달렸다. 여학생들은 희고 넓은 깃이 달린 윗옷과 세로로 주름이 들어간 치마를 입었다. 아이들은 교실 벽 쪽에 서서 긴장하고 있었다. 신 선생이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음...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까 아무 자리에나 앉으세요. 자리 배정은 곧 할 겁니다.”
아이들은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교실 뒤편에는 학부모들이 몇 명 들어와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신 선생은 며칠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이 분필을 들어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입학식 할 때 들었으나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담임의 목소리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아이들은 나지막하게 읊었다. 신지영. 김지영도 민지영도 아닌 신지영. 신 선생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내 이름은 신지영이라고 하구요. 앞으로 일 년간 여러분과 함께 1학년 6반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이들 사이에서 간헐적인 박수가 나왔다. 교실 뒤쪽의 학부모들은 어떤 교사인가 탐색하는 표정이었다. 수군대는 목소리가 교실 중간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갓 발령받은 신임 선생님인가 봐요.”
“옆 반엔 경력 있는 남자 선생님이시던데...”
“아유, 아무려면 어때요, 잘만 가르쳐주면 됐지.”
“근데 아까 무슨 과목이라고 했죠?”
“수학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요? 수학 선생님은 좀 무서워야 하는데... 저분은 여리여리해 보이네요..”
“그나저나 우리 앤 키가 작아서... 앞에 앉아야 하는데 어떻게 앉힐지 모르겠네요...”
신 선생은 안내를 이어갔다. 중학교에선 매시간 다른 과목 선생님이 들어와서 가르친다는 것, 가정통신문은 반드시 부모님께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 큰 시험이 일 년에 네 번 있으니 잘 준비해야 하고, 그 사이에 주요 과목은 월례고사라는 시험을 또 본다는 것을 말할 땐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누군가 “그럼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는 거잖아.”라고 중얼거렸다. 신 선생은 교탁 옆에 놓인 새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교과서에선 새 종이 냄새가 났다.
“자, 그럼 이제 자리를 정할 건데요. 키 순서대로 앉을 겁니다. 모두 복도로 나가서 남녀 따로 줄을 서세요. 작은 사람은 앞으로 큰 사람은 뒤로...”
학생들은 서로 머리꼭지를 보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신 선생은 키 순으로 줄을 선 것을 보고 몇 명은 앞뒤를 바꾸어 주었다. 아이들은 순순히 따랐다. 모두 처음 보는 사이라 누가 어떻게 짝이 된들 운에 맡겨야 할 처지였다. 운동장 쪽으로는 여학생들이 복도 쪽으로는 남학생들이 앉았다. 가로는 여덟 자리, 세로도 여덟 자리였다. 좌우 두 자리씩 붙여 앉으니 좌석 사이에 세 개의 좁은 통로가 생겼다. 일곱 자리로 끝나는 줄도 두 줄이 있었다. 복도 쪽 맨 끝자리였다. 줄이 짧으니 뒷문을 여닫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1학년 6반은 모두 62명이었다.
“맨 앞에 두 명은 이번 주 주번입니다.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주번 조회가 있으니까 구령대 앞으로 모이세요. 주번은 아침에 교실 문을 열어야 합니다. 열쇠는 출석부에 묶여 있고 교무실에서 가져오면 됩니다. 아침 조회가 끝나면 아침 청소,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칠판을 지우고 지우개를 털어놓으세요. 점심 먹고 중간 청소, 그리고 청소 당번이 청소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단속을 하고 귀가하면 됩니다.”
신 선생은 아침 교직원회의 때 교무주임, 연구주임, 학생주임이 한 말을 교무수첩에 꼼꼼히 적었고, 한 가지씩 체크해 가며 꼼꼼하게 진행했다.
“오늘은 첫날이니 청소는 선생님이 할게요. 자, 집으로 돌아가도 좋아요.”
신 선생의 말에 아이들은 웅성대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신 선생은 교탁 앞에 섰다. 긴장을 했는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칠판에 적은 자신의 이름을 보았다. 그때 신 선생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았다. 미인은 아니었지만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