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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Oct 14. 2024

나는 네가 여기서 한 일을 알고 있다(3)

달콤한 사탕 향기가 교실 가득히 퍼졌다

  교직원회의를 마친 신 선생이 1학년 6반 교실로 들어왔다. 출입문 앞에 선 신 선생은 칠판을 보고 놀랐다. 아침 일찍 학교에 온 아이들이 칠판 테두리에 풍선을 붙였다. 그리고 색색의 분필로 ‘선생님, 사랑해요’, ‘신지영 쌤 짱!, '스승의 날을 축합니다'와 같은 글을 썼다. 교탁 위에 작은 양초가 꽂혀 있는 케이크가 놓였다. 양초 불빛이 하늘거렸다. “, 촛불을 끄세요.” 아이들은 외쳤다. 신 선생은 후 하고 입바람을 불어 촛불을 껐다. 아이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가네...” 신 선생 콧등이 시큰해졌다. 신 선생은 케이크를 조각내어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나는 기뻤다. 마치 내가 스승의 날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내 몸에 붙어 있는 풍선 때문에도, 색색으로 그린 그림 때문에도 덩달아 신이 났다. 그날 아이들은 신 선생에게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고, 신 선생은 대학 때 좋아하던 선배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난 얘기를 했다.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들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선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거나, 선배 때문에 며칠 잠을 못 잤다는 얘기를 할 땐 아이들도 함께 안타까워했다.


  신 선생은 '어린애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나도 주책이야' 하면서도 재미있게 각색을 더 해가며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난 상황이 정리가 돼서 더는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오늘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신 선생이 뒷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신 선생은 중학교 일 학년 아이들에게 지나간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또 다른 사랑을 못할 게 뭐람?”이라고 생각했다.


  "쌤 에게선 냄새가 나요."


  앞에 앉은 아이들이 말했다. 신 선생은 놀랐다. 중고등학생 때 집안 살림의 냄새가 난다는 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중학생 때인가 친구 소라도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야 남자들이 꼬이지."라고 하면서 향수를 칙칙 뿌려주곤 했었다. 냄새가 난다는 것은 사실 대학생이 되고부턴 들어보지 못했다. 신 선생은 물었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럴까. 화장품 냄새인가? 난 거의 기초화장만 하는데... 로션 냄새인가 보다." 이렇게 말하고 냄새 대화는 끝내려고 했다. 교탁 바로 앞자리의 여학생이 말했다. "엄마 냄새요." 그러자 주변의 아이들이 모두 입을 맞췄다. "맞아, 맞아... 그 냄새. 무슨 냄새인가 했는데 엄마 냄새였어." 아이들은 교실을 나오는 신 선생을 따라 나왔다. 한 녀석이 뒤에서 끌어안으며 등에다 대고 말했다. "쌤, 사랑해요." 아마 신 선생은 교무실로 가서 혼자 웃을 것이다.   


  가을이 되자 내년에 들어올 신입생을 위한 교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층씩 더 올리는 공사라서 공부하는 중에도 소음이 들렸다. 이제 내부 공사만 남았다고 했다. 그 교실에도 공장에서 만들어온 칠판이 들어가겠지. 어떤 교사는 회초리로 칠판을 땅땅 두드릴 것이고, 어떤 교사는 정성을 다해 판서를 하겠지. 주번 학생들은 칠판을 열심히 지우고 닦고 하겠지. 겨울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떠나갔고, 더는 신 선생도 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밖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었고, 교실엔 먼지가 쌓였다. 먼지 냄새가 겨울 공기에 섞여 교실을 맴돌았다.


  다시 3월이 되자, 2학년이 된 학생들 제법 큰 몸집을 하고 들어왔다. 남학생들은 목소리가 굵어졌고, 여학생들도 박꽃처럼 핀 얼굴을 하고 와서는 웃고 또 웃었다. 이 교실에 들어오는 교사들 많이 바뀌었다. 판서의 달인 사회교사는  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담임교사도 바뀌었다. 신 선생은 일주일에 네 번 이 교실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그래도 신 선생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었다. 신 선생 판서 글씨는 조금 더 작아졌다. 아무래도 2학년이 되니 설명할 것이 많아지는 모양이었다. 방정식을 풀고, 함수의 그래프를 그렸다. 내 몸에 직접 그래프를 그릴 때 있었지만 복잡한 그래프를 그릴 때는 네모칸을 새긴 보조칠판을 썼다.

  신 선생은 모든 교구를 아꼈다. 사소한 소품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이젠 신임교사의 티도 벗어나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했고, 아이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 교실은 학년만 바뀌어 2학년 6반 교실이 되었다. 다른 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고 이 학교로 온 국어교사가 담임교사가 되었다. 국어교사는 ‘윤 선생’이라 불렸다. 그는 말수가 많지 않았다. 가끔 칠판 앞에서 시를 읊었고, 아이들은 귀를 기울였다. 교과서에 부분적으로 나오는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그 배경을 설명했고 어떨 때는 원문을 구해 복사하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했다.

  윤 선생은 본인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 대신 아이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판서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칠판에 큰 글씨로 ‘사랑’이라고 쓰거나, ‘갈등’이라고 쓴 다음에 아이들이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하게 했다. 대체로 이 반에 들어오는 교사들은 시끄럽지도, 조용하지도 않게 적당한 톤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처럼 거친 교사는 없었다. 단조롭고 무료한 일상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내 곁으로 와 낙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여자의 나체를 그리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동식물을, 어떤 아이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놓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교실에서 음악 수업을 하지 않았다. 음악실이 만들어져서 그곳에서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온다고 했다. 미술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새로 만들어진 미술실에 다녀왔다. 과학 시간에는 가끔 실험실에 다녀왔다. 기술·가정 시간에도 가끔 이동수업을 했다. 교실은 종종 비었다.           


  여름방학을 앞둔 칠월의 한낮은 몹시 더웠다. 교실 천장에서 선풍기가 돌았지만 60명이 뿜어내는 열기는 가마솥을 방불하게 했다. 수업하는 교사들도, 공부하는 학생들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학교 건물은 남서향이었다. 오후가 되면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6교시 후 종례할 때까지도 햇볕은 커튼 사이사이를 파고들었다. 어떤 교사는 아예 아이들에게 10분간 취침 시간을 허락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10분 후에 깨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어떤 아이는 그 사이에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

  교사들은 판서를 하다가 팔이 아픈지 잠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기도 했다. 여름방학 일주일 전, 교실은 고통스러웠다. 교사와 학생들은 그저 방학 날짜만 꼽고 있었다. 나도 이맘 때면 지칠 대로 지쳐서 어서 방학하고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교사들은 기말고사 성적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일 학기 분량의 진도를 끝낸 교과는 아이들과 함께 다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신 선생은 미로 찾기나 네모로직, 수도쿠 같은 프린트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빈칸을 채우게 했다. 미로 찾기를 할 때 학생들은 “, 이것도 수학공부인가요?”라고 물었다. 신 선생은 “그럼요, 미로 찾기는 여러분의 공간지각력을 높여줄 거예요. 집중력과 인내심도 키워주죠. 차분하게 색을 칠해나가면서 미로를 찾아봅시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과제를 이행하고는 교탁으로 들고 나와 검사를 맡았다.


  신 선생은 검사 도장을 찍어주며 사탕을 하나씩 주었다. 아이들은 사탕을 까먹으며 좋아라 했다. 달콤한 사탕 냄새가 교실에 퍼졌다. 아마도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달콤한 사탕 냄새와 신 선생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옆 반 담임이 되어있지만 일주일에 네 번이나 볼 수 있느니 불만은 없다. 지금 담임인 윤 선생도 비록 말수는 없지만 진지한 사람이었고, 모든 사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대로 괜찮았다.


  여름방학식을 한 날 윤 선생은 아이들에게 성적표와 함께 물놀이 안전, 식생활 안전에 대한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설명했다. 60명 전체를 묶어 비상연락망을 조직했다. 방학 중 하루는 봉사활동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윤 선생은 방학 안내를 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방학날이어서 청소는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학생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적막했다. 윤 선생은 지우개를 들어 칠판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리고는 지우개를 털어 제자리에 놓았다. 창문의 커튼을 모두 풀어 방학 동안 햇볕이 강하게 들지 않도록 했다. 대걸레와 빗자루도 청소함에 넣고 가지런히 정리했다. 책상 줄도 다시 한번 맞추고, 걸상은 책상 밑으로 넣었다.

  윤 선생의 표정과 몸짓에서 한 학기 동안의 피로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학급도 모두 정리가 끝난 모양이었다. 이제 교무실로 내려가 책상을 정돈하고 집으로 가면 한 달 반 동안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새삼 설레는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교실 뒷문이 열렸다. 옆 반의 신 선생이었다. “다 끝났어?” 윤 선생은 신 선생에게 편안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응, 우리 반 애들을 다 갔고, 나도 정리 다 끝났어.” 아니? 신 선생도 윤 선생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언사가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두 사람은 칠판 앞에서 마주 보았다. 한 학기 동안의 피로도 잊은 듯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래 바라보았다. 윤 선생이 싱긋 웃었다. 신 선생도 따라 웃었다.

  “힘들었지?” 윤 선생이 신 선생에게 말했다. 세상에 이런 다정한 말투라니... “응, 선배도 많이 힘들었지?” 신 선생이 받았다. 커튼이 드리워진 교실 칠판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응시하며 말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서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 모두에게 묘한 질투심이 일었다. 그러나 또 한편, “그래, 두 사람은 너무 어울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깝게 다가선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았다. 신 선생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달콤한 사탕 향기가 교실 가득히 퍼졌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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