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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Oct 16. 2024

나는 네가 여기서 한 일을 알고 있다(4)

정 선생은 전통적인 칠판 앞에서는 참으로 노련한 역사교사였다

  가끔 교사들은 이 교실에 모였다. 학년협의회나 교원노조 분회 모임을 했고, 학생들이 하교한 후에는 몇몇 교사들이 모여 차를 나누며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수업할 때 대드는 학생들 이야기가 많아졌다. 처음에는 한두 명의 교사가 '수업이 너무 힘들어졌다'라고 이야기하더니 점점 더 늘어서 이제 대부분의 교사들이 수업을 힘겨워했다. 학부모에 관한 이야기도 꽤 나왔다. 학년부장 교사는 지난번 중간고사에서 본인 자녀가 학급에서 몇 등을 했는지 집요하게 알려달라고 한 학부모의 이야기를 전했다. 학원에선 알려주는데 학교에선 왜 알려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아니, 학생들 성적으로 석차 매기지 않은 게 언제인데 이런 말을 하실까' 하면서 학년부장 교사와 그 이야기를 들은 교사들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온 교사들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를 모두 떼어 내고 그곳에 전자칠판을 달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젊은 교사들은 환영했고, 경력 교사들은 반대했다고 했다. 특히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교사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명분은 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교사의 설명을 듣는 행위가 갖는 교육적 의미를 말했다. 젊은 교사들은 전자칠판에도 판서 기능이 있고, 저장까지 되니 다음 학급에서는 똑같은 판서를 하지 않고 저장된 것을 불러와서 반복하여 쓸 수 있다고 전자칠판의 장점에 대하여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니 전자칠판을 쓰는 것이 아이들의 학습효과를 높여줄 것이라 강조했다.

  교사들은 이 문제를 두고 오랜 시간 토론했다. 가정통신문을 발송하여 학부모들의 의견도 물었다고 했다. 회신문을 취합하여 분석한 결과 80%가 넘는 학부모들이 전자칠판 설치에 찬성했단다. 전자칠판 설치를 위한 예산은 배정이 되었고, 교장은 예산이 확정된 이상 신속하게 구입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교사들은 한 명씩 교장실에 다녀왔다. 교장은 교사들을 설득했다. 이 기자재는 그냥 사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사양을 확인해야 하고 입찰 공고를 내어 선택하고 설치하려면 이번 주 안에는 결론이 나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오래된 칠판을 떼어 내지 않고 그 가운데 전차칠판을 덧대어 설치하는 것으로 절충이 되었다. 경력 교사들은 판서할 공간이 턱없이 줄어들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칠판을 떼어 내지 않고 교실에 남겨두기로 한 결정에 대해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 입장에서도 다행이었다. 자칫 산업폐기물로 처리되거나 소각장으로 실려가 불태워질 운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전자칠판의 양 옆 공간을 활용하면 간단한 판서도 할 수 있으니, 우리 역할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위안을 삼았다. 주번 학생은 이제 칠판을 지우거나 지우개를 털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칠판 정리는 교사들의 몫이 되었다.  


  대부분의 젊은 교사들은 전자칠판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윈도 운영체제가 내장돼 있으니 온갖 프로그램을 쓸 수 있었다. 인터넷에 연결하여 바로 이 자리에서 학습자료 검색도 할 수 있어서 무척 편리했다. 더욱 편리한 것은 판서 기능에 맞추고 저장을 활성화시키면 모든 내용이 순서대로 저장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음 반에 가서는 힘들게 판서할 것 없이 교사의 아이디로 로그인만 하면 저장된 내용을 불러올 수 있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프리젠터를 이용하여 한 번씩 클릭할 때마다 판서가 진행됐다. 내 몸 가운데 반을 덮은 전자칠판은 프로그램이 작동될 때마다 이상한 기계음을 냈다. 동영상이 올라올 때는 열이 나기도 했다. 기분 나쁜 소음과 열감이었다. 손톱과 분필이 칠판에 긁히는 소리보다 더 불쾌한 느낌이었다. 

  사십 대 후반에 들어선 수학교사 신지영 선생도 전자칠판의 유용한 기능을 사용했다. 특히 그래프 만들기 기능이 유용했고, 수식을 다루는 프로그램도 좋았다. 그러나 직접 분필로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칠판을 떼어 내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여겼다. 신 선생은 초임교사 시절 이 학교에 근무했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학교 몇 군데를 돌다가 이 학교에 다시 오게 되었다. 20년이 지났지만 모든 공간이 그대로였다. 신 선생은 이 학교가 익숙했다. 모든 장소마다 추억이 서려 있었다. 그때 그 1학년 6반 교실의 뜨거웠던 여름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오래된 칠판을 떼어 내지 않기로 한 것은 신 선생에게 추억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년을 몇 해 앞둔 정 선생은 교실에 들어오면 자주 짜증을 냈다. 전자칠판 때문이었다. 역사를 가르치는 정 선생에게 구조화한 판서는 생명과도 같았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전자칠판은 사용법도 모르거니와 사용법을 익힌다 해도 쓸 마음이 없었다. 도무지 수업의 기분과 느낌이 날 것 같지 않았다.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사를 가르쳤던 정 선생의 특기는 각 역사적 사건을 시대순으로 가르치면서도 각 시대에서 추출한 주제를 부각하여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가르치면 학생들도 흥미롭게 수업에 임했고, 이렇게 수업을 이끄는 데는 정 선생이 오래 축적해 온 독특한 판서 노하우가 큰 힘이 됐다.

  정 선생은 전통적인 칠판 앞에서는 참으로 노련한 역사교사였다.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전자칠판이 들어오고 나서는 영 수업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 본인의 특기를 살릴 수 없게 방해하는 물건이 떡하니 칠판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칠판의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선을 죽 그린 다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연대에 맞게 표시하고, 컬러로 출력하여 코팅한 사건과 관련한 사진을 붙이면서 추가 설명까지 곁들이면 아이들이 수업에 빠져든다고 생각했다. 정 선생은 젊은 교사들이 전자칠판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나누어준 태블릿 PC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젊은 교사들은 전자칠판과 태블릿 피시를 연동하여 수업했다. 학생들이 발표할 때에는 특정 태블릿의 화면만 선택적으로 전자 칠판에 확대하여 보여주는 기능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화면이 크게 확대되어 전체 학급 아이들이 볼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패들릿' 같은 앱을 이용하면 학생들이 입력한 내용이 실시간으로 칠판에 보였다. 확실히 전자칠판 설치 후에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젊은 교사들은 본인들의 디지털 감각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때로 나이 먹은 선배 교사들이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 선배 교사들이 수업이나 생활지도 방법에 대해 본인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말할 땐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가끔 방과후에 이 교실에 모인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젊은 교사들은 요즘 학년이나 부서 회식을 할 때도 가기 싫으면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질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다. 특히 감염병의 유행 이후 그런 현상은 두드려졌다. 학생들이 대들지만 않는다면 선후배 교사들 사이의 권위 역전이 나쁘지 않았다. 자신들의 능력에 비해 대우가 형편없다면서 되도록 빨리 교직을 탈출하고 싶다는 젊은 교사들이 생겨났다. 젊은 교사들은 경력 교사들이 수업 능력이나 학생들과의 소통 측면에서 별반 뛰어나지 않은 데도 자신들보다 두 배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럴수록 정 선생은 자주 화를 냈다. 어느 날엔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그것은 수업의 본질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그래서 내일 당장 교장과 담판을 하여 자신은 전통적인 칠판에서 수업을 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동료교사들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정 선생을 달랬다. 다음 날 정 선생은 교장실에 들어가서 자신은 전자칠판을 쓸 수 없노라고 말했다. 기기를 다룰 줄 몰라서가 아니라 수업 효과가 반감된다고 주장했다. 교사들마다 수업 방식이 다른데 이렇게 일률적으로 전자칠판을 모든 교실에 들여오는 것은 폭력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정 선생과 나이가 비슷했던 교장은, 마침 학급이 줄어들어 남는 교실이 있으니 정 선생은 그 교실을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정 선생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 선생은 디지털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방법을 지속하고 싶을 뿐이라 말했다. 정 선생은 빈 교실을 자기 손으로 청소하고 역사교과실로 꾸몄다. 옆 벽면에는 역사 지도를 붙였고, 교실 뒤편엔 고대,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연표를 큼지막하게 그려서 붙였다. 그리고 백지도를 수시로 갈아 붙여 학생들이 그 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정 선생은 만족했다. 이렇게 수업하다가 이 학교에서 정년을 맞게 될 것을 큰 행운이라 여겼다. 

  정 선생과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은 나름대로 전자칠판에 적응돼 갔지만 자주 짜증을 냈다. 마음먹은 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화면에 수많은 센서를 가지고 있는 전자칠판은 정전기 방식으로 작동했다. 젊은 교사들은 이 속성을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다루었지만 전통적인 칠판을 오래 써온 경력 교사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가끔 저장하는 것을 잊고 잔뜩 판서를 했다가 다음 반에서 불러오지 못해 써먹을 수가 없을 땐 당황했다. 그러면 젊은 교사들은 "샘, 자동저장 기능 켜놓지 않으셨어요? 그러면 10분마다 저장해 주는데..."라며 팁을 알려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에 앞서 은근히 약이 올랐다.   

  정년을 앞둔 중년의 교사들은 “이게 무슨 수업이야, 기계가 해주는 게 수업이라 할 수 있나?”라면서 화를 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젊은 교사들이 나에게 와서 판서하는 노하우를 배워가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 보라고. 내가 젊은 교사들에게 배워야 해. 근데 그건 수업 노하우 아니라 기계작동 방법을 배우는 거라고. 수업의 본질은 이게 아냐!”하면서 역정을 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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