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Oct 09. 2024

시발 롤모델(5, 최종)

녀석은 수학 문제를 들고 교무실을 찾아와 풀어달라고 했다

  "샘. 저기..."

  "무슨 일이니. 말하거라."

  "내가 수학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요."

  "그래? 그럼 열심히 해라."

  "아 정말 그게 아니라... 책을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다구요."

  "그럼 자꾸 봐라."

  "아 씨, 정말 무슨 대답이 그래요. 아 시발... 존나 쿨한 척해. 그럼 공부하지 말아요? 내가 공부 안 하면 어쩔 건데요?"

  "뭘 어째? 하기 싫은 공부는 안 하는 것이 좋아. 억지로 공부하지 말아라."

  "아니 무슨 교사가 학생에게 이렇게 불친절해... 맘먹고 공부 좀 해 보겠다는 데 도와주질 않네. 아 진짜. 학교가 왜 이래..."


  녀석은 투덜거리며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흘렀다. 녀석은 가끔 수학 문제를 들고 민 선생을 찾아와 풀어달라고 했다. 문제를 다 풀어주는 일은 없었다. 그냥 실마리를 알려주고 또 확인하고, 다음 과제를 제시했다. 그때마다 녀석은,


  "아 정말. 샘 혹시 이 문제 풀줄 모르는 것 아니에요? 감질나게 그런 식으로 힌트만 주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좀 풀어줘요. 시간도 좀 길게..."

  "내가 미쳤니? 가르치는 아이들이 많은데 왜 너에게만 신경을 써? 난 그렇게 하긴 싫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녀석은 또 문제 하나를 들고 민 선생을 찾아왔다. 간단히 단서를 알려주려 하는 민 선생의 말을 녀석은 듣지 않았다. 그냥 교사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샘은 왜 중학교 애들 가르쳐요? 애들이 말도 존나 안 듣고... 속 썩이고... 샘은 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책도 여러 권 썼는데... 근데 왜 이런 후진 중학교에 있어요?"

  "글쎄다.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아 정말 또 그래. 무슨 대답이 그래요. 뭐 이래서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게 좋다. 뭐 그런 거. 학생이 궁금해서 질문하는데 좀 성실하게 답변해 주면 안 돼요?"

  "이제 그만 가라. 난 내 인생 열심히 살고 넌 너대로 열심히 살아. 그게 인생이야 시키야."

  "저기... 샘, 할 말이 있는데요."

  "아, 정말 나 지금 일거리 밀린 것 안 보여? 용건 끝났으면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아 샘은 이럴 때 은근 매력 있어요. 속으론 아이들 좋아하면서 존나 쿨한 척하는 거. 으흐흐..."

  "할 말만 딱 하고 꺼져. 기분 나쁘게 웃지 말고 시키야..."

  "샘 그거 몰랐죠? 샘은요. 내 롤모델이에요... 아, 시발 말하고 보니 쪽팔리네... "

  "뭐 이 시키가... 부담스럽게 왜 이래? 롤모델 바꿔..."


  졸업식이 다가왔다. 아이의 엄마로부터 민 선생에게 전언이 왔다. 선생님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으나 아이는 극구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3학년 때부터 아이가 많이 달라졌고, 집에서 하는 이야기 중 수학 선생님 관련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수학 샘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녀석은 졸업을 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느 대학에 갔는지, 아니면 고졸 취업에 성공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민 선생이 자주 다짐하는 '평온한 인내'는 아이가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관심을 끊게 했다. 대신 녀석의 후배들에게 잘해 주는 것이 피차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도 민 선생은 녀석과 비슷한 아이들을 몇 번 만났다.


시발 롤모델, 끝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작가의 말

교사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례가 있다. 사실 감동적인 사례와 실제 변화 사이에는 많은 거리가 있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도 내일도 교사는 늘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런 헌신과 희생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습관적 자기 최면에 빠진다. 당신이 교사라면 그냥 당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라. 당신의 인간적 욕구에 충실하라. 남는 시간은 그냥 삶의 여백으로 두라. 교육은 기다림으로 희망을 만드는 길고도 긴 여정이다.



새로운 에피소드 '나는 네가 여기서 한 일을 알고 있다'

https://brunch.co.kr/@webtutor/848


이전 09화 시발 롤모델(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