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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Oct 07. 2024

시발 롤모델(4)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더 좋은 때였다

  둘은 서로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민 선생과 함께 공부하게 된 것을 최악의 상황이라 했던 녀석은 왜 걷기 동아리반을 지원했을까. 이런 궁금증은 오래 품고 있을 것이 아니다. 민 선생은 바로 물어보았다. 감정이 없는 건조한 질문이었다. 


  "너는 왜 이 반을 지원했니? 혹시 가위바위보에서 밀렸니?"


  동아리를 정할 때 인기 있는 반은 종종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도 한다. 녀석이 시니컬하게 답했다.


  "아 그냥 왔어요. 자르실 거예요? 뭐. 싫으면 자르시든가..."


  "난 일단 여기 들어온 놈은 자르지 않는다. 기왕 들어왔으니 지금 여기 있는 아이들과 걷기반 신청자 명단을 대조해 보고 오른쪽 빈칸에 체크 표시를 해라"

  "예? 그걸 왜 내가 해요?"

  "싫음 말고."

  "아뇨, 할게요. 하면 되지. 아이 씨 첫날부터 학생한테 일 시키네..."


  녀석은 어찌어찌 동아리 신청자 명단과 현재 모인 아이들을 대조한 명부를 가지고 왔다.


  "신청한 애들은 다 왔어요. 이런 거 시키지 마요. 샘이 할 일을 왜 학생에게 시켜요."

  "하기 싫으냐, 언제든 네가 원하면 다른 곳으로 보내주마."

  "아이 씨, 누가 다른 곳으로 간대요? 아 시발, 사람이 존나 냉정해."

  "말할 때 욕은 빼고 해라. 시키야."

  "어? 샘도 욕을 해요? 샘 정말 안 되겠네... 아이 씨... 교사에게 욕먹었네..."


  녀석은 그렇게 3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건강걷기반'의 멤버가 됐다. 첫날은 동아리 구성과 다음 활동 안내만 하고 돌려보냈다. 녀석은 중얼거리며 자기 반으로 돌아갔다. 잘 들리지 않았으나 한 문장의 절반 정도를 욕을 섞어 "학생에게 일 시키는 교사, 자질이 의심되는 교사, 존나 냉정한 교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녀석은 다른 동아리로 가지 않았다.


  한 달 후, 본격적인 동아리 활동이 시작됐다. 건강걷기반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동기는 비슷하다. 한 회마다 오천 원 정도 활동비를 낼 수 없는 사정이거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두 시간만 걸어도 네 시간의 활동 시간이 인정된다는 것, 살 빼기에도 효과적이라는 것, 지도교사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라고 민 선생은 혼자 생각했다. 그 녀석이 어떤 생각으로 들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활동 첫날 교사는 녀석에게 명렬표를 건네주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명단 정리를 했으니 오늘은 아이들 출석 체크를 해라."


  녀석은 반발했다. 아니, 반발하는 척했다.


  "또 시켜요? 샘 정말 이상하시네... 그거 하면 뭐 해줄 건데요."

  "재밌게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아, 웃겨. 걷는 게 뭐 재밌다고..."

  "싫으면 다른 아이에게 시킬 거다."

  "아 씨. 누가 안 한다고 했어요? 사람이 의리가 없어. 의리가..."


  장기간 아빠의 부재 상황 탓에 녀석은 어른 남자와의 대화를 낯설어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한 문장에 워낙 많은 욕을 섞어 듣기에 불편했지만 적대감이 없음을 보이려 노력했다. 행여 자기를 향한 교사의 관심이 사라질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오늘 걷기 잘 한 사람들은 끝나고 샘이 아이스크림을 쏜다."


  환호성이 터졌다. 아이들은 호들갑스럽게 강변을 걷기 시작했고 녀석도 몇 아이들과 어울려 대열의 맨 뒤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강변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녀석은 걷기가 끝날 때 늘 지독한 담배 냄새를 몰고 왔다.


두 번째, 세 번째 걷기 동아리 활동에서도 녀석은 출석 체크를 했고, 중간에 사라졌고 담배 냄새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는 민 선생에게서 카드를 받아 슈퍼에서 하드를 사다가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고, 어쩌다 하나가 남으면 그냥 두면 녹으니 그냥 자기가 먹겠다고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아, 시발, 녹을까 봐 할 수 없이 먹었네... "


  라는 말을 잊지 않고 남겼다.


  수학 시간에 녀석은 여전히 장난을 쳤고 어떤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았다. 민 선생도 녀석이 큰 사고만 치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즈음 거의 모든 교사들이 품었던 비슷한 소망이기도 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더 좋은 때였다. 시험을 앞둔 어느 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녀석이 교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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