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지적하는 방향은 잘못됐다
한글날이다. 어김없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지적하는 방향은 잘못됐다. 우선 문해력과 어휘력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특정 어휘가 문장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 지를 나타내는 개념이 어휘력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문해력 저하에 대한 지적은 실은 어휘력 부족에 관한 것이다. 예로 드는 것 모두 문해력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 '특정 어휘의 뜻'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해력은 어휘력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문해력은 문장 단위로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장을 넘어 글의 앞뒤 맥락과 연결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왜 매년 이맘때면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개탄의 소리가 나올까.
말과 글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책을 읽는 것도 사실은 저자와 의사소통하는 일이다. 의사소통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말과 글이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 지를 알면 의사소통의 밀도가 훨씬 높아진다. 당연히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은 특정 대상과 특정 상황에서 더 좋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오히려 어휘 중심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단어의 뜻에 치중하게 하여 다양한 맥락에서 의사소통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어휘가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어휘가 쓰이는 앞뒤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게 어휘력과 문해력의 차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학생들의 소통 방식도 달라진다. 그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지금은 어른들의 독서 부족, 이에 따른 문해력 부족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할 시간이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것이 있는데, 문해력 저하의 예로 드는 어휘들의 작위성이다. 마치 웃자고 지어낸 듯한 느낌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어른들 입장에서 '족보'의 뜻이 '족발보쌈세트'인 줄 알았다고 해서 웃으며 문해력 저하를 개탄한다. 족발보쌈세트의 준말로 족보가 그렇게 이상한가. 벌목을 벌의 목이라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교원단체가 조사를 통해 밝히길, 교사가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했더니 학생이 선생님이 욕하냐고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물론 시발점(始發點)은 첫 출발하는 지점을 뜻하는 단어다. 이 에피소드는 우습긴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사람은 시발점이라는 말이 '시작'이라는 말을 대체할 정도로 익숙하게 쓰는 어휘인가부터 따진다. 시발점이라 하지 말고 '시작'으로 쓰라. 그게 알아듣기 쉽다. 나는 이 상황을 '어른들이 웃자고 작위적으로 만들어냈다'라고 의심한다. 문해력이 있는 사람은 기사에서 예로 드는 것들 하나하나가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 생략한 채, 그저 지적을 위한 지적에 머무르고 있음을 안다.
한마디 더 하자면, 기사에서 예를 들고 있는 것 모두 한자에서 나온 말이다. 한자의 뜻을 알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 분들이 말하는 해결책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바로 초등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자는 것이다. 문해력 저하라는 가공의 설정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 문제를 더 혼잡하게 만든다.
다시 반복하지만 최소한의 문해력이 있는 사람은 어휘력을 문해력으로 오해하지 않다. 어떤 어휘를 사용할 때 그 맥락을 충분히 알고 이해하는 것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책임이다. 내가 말한 대로 상대가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제대로 말하기 위해 노력하라.
오늘은 한글날이자 우리 부부의 혼인기념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