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합니다, 이 공간을

소리 소문 없이 떠나간 관계들의 가치

by 웬즈

잠깐 옆 동네를 다녀올 일이 생겼다. 그곳은 입대하기 전에도 자주 갔던 동네로, 대로변 옆에 있으면서도 한적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면으로 번화가의 향을 풍기는 곳이다. 예전부터 나는 그 동네가 가진 애매모호함 때문에 그 동네가 좋았다. 그곳의 특징을 말하자면 아는 지인 한 명 없고, 단골 식당도 없으며, 그렇다고 놀 거리가 많은 곳도 아니다. 하지만 그 동네에 가는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곳을 주로 찾게 된다. 환승하지 않고도 집으로부터 버스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어서 거리에 대한 부담까지 없다. 그 동네에 가려면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는 다리를 지나야 해서 종종 부모님과 같이 산책을 가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며, 나는 그 동네에 가면 항상 그랬듯이 그 서점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신발에 달려 있던 발걸음이 급격하게 가벼워졌다. 그 서점은 중고등학교 때 가끔씩 서성거리면서 책을 둘러보던 곳이다. 그곳에서 신간들을 구경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도 몰랐고, 서점을 나올 때마다 나는 한 권 이상을 꼭 손에 쥐고 나왔다.




어렸을 적 나는 서점에 많이 갔다. 우리 동네의 서점도 가고, 옆 동네의 서점도 가고, 유명하다는 서점을 수소문해서 찾아간 적도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즐겨 찾았던 서점은 옆 동네의 서점이었다. 경제적인 고민이 뒤룩뒤룩 살쪄버린 지금에 와서야 도서관을 애용하지만, 고작 10대였던 당시만 해도 나는 대여보다는 직접 사서 기한 없이 편하게 읽는 것을 선호했다. 문제집, 소설책, 전문 서적을 가리지 않고 나는 주로 그 동네의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다. 책을 사러 갈 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자가용으로 데려다주시고 서점에서 자유시간을 주셨다. 그 서점의 2층엔 책을 앉아서 볼 수 있는 코너가 있었는데, 나는 그 코너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내가 고른 책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훑어보곤 했다.


서점을 나오면 그 옆엔 카페가 있다. 나와 음료 주문으로만 말을 섞어본 적 밖에 없는 직원들은 당연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곳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주 들렀다. 다른 프랜차이즈 가맹점들보다 좋았던 가성비 덕에 그곳을 특별히 좋아했다. 그 카페 메뉴에는 종종 새로운 음료가 출시되었으나, 애 입맛이었던 나는 카페모카 하고 카라멜 마끼아또 사이에서만 주문을 머뭇댔다. 책을 둘러볼 때는 단 내음이 서점까지 풍기는 듯했고, 나는 빨리 카페에 가고 싶어 책 구매를 서두르곤 했다. 그렇게 서점에서 카페로 이어지는 그 동네의 코스는 학창 시절의 나에게 가끔씩 찾아왔던 힐링의 시간이었다.


입시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 시절의 나로서는 그 동네의 서점과 카페에서 몇 시간 씩 보내며 문제집을 골랐다. 시간이 가는지도 멈춘지도 모른 채 머물러서 하염없이 책을 봤다. 카페에서 때로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때로는 멍하니 창 밖을 구경하면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좋았던 일들, 나빴던 일들과 같이 서점과 카페는 머릿속 양푼 안에서 범벅되어갔고, 그 시절 내가 공들여 골랐던 새 책 냄새와 커피 향기는 내 10대의 나날들에 배어들어갔다.




그러다 몇 걸음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카페와 서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공간에는 인부들과 관계자들이 작업을 위해 몰두해 있었고, 나는 그 앞 벤치에 앉아 그 공간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퍼내 먹은 아이스크림 통처럼 그 공간은 속이 도려진 것 같이 남겨져 있었다. 공간은 흡사 풀려 있는 동공과도 같아 보였다. 지금까지 얼마나 그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에 들어갔다 나왔을지, 왜 자리를 떠난 걸지, 나는 왜 공간이 떠나는 사실을 몰랐으며 나 말고도 공간에 애착을 가졌던 사람이 또 있을지를 한참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지나쳐 온 사람 관계 역시 저 공간을 얼핏 닮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들었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려보니 떠난 자리만 공허하게 남곤 했다. 또한 대개는 떠나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것은 곧 나도 누군가에게 말도 없이 사라져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떠나보내는 입장과 떠나는 입장을 반복하며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와 이별한 나 역시도 그에겐 저 공간처럼 그저 떠나간 존재로 인식되어 있을 것이다. 아쉬움은 뒤로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 갔던 과정과 그들로부터 사라져 왔던 나의 과정이 변변찮은 것만은 아니었길 바란다.


작별의 준비도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 왔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오늘도 휑뎅그렁하게 세상의 어느 지점에 서 있다. 저 공간처럼 얼마나 많은 손님들을 떠나보냈을지, 얼마나 많은 손님의 얼굴과 이름을 알았다가 잊어버렸을지, 혹시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떠나간 손님들도 있진 않을지 생각하며, 새우잡이 배 새우 건져 올리듯 그동안의 작별들을 떠올렸다. 저 빈 공간에는 임대, 두 글자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져 있고, 그것은 마치 내가 얼마나 작별들을 잘 건져 올리는가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서점과 카페가 있던 그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 그곳은 물리적으로 증발했고, 남은 자리엔 패인 육면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 그 공간은 그 공간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저 공간은 나 말고 누군가에게 다시금 의미를 가진 장소로 거듭날 것이다. 이왕 내어진 저 공간의 가치가 모쪼록 비싸게 팔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