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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an 15. 2024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첫 번째 밤. 상주가 쉴 수 있는 방이 있긴 하지만 엄마가 힘드실 테니 모시고 집으로 가 편히 좀 주무시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오빠는 말했다. 잠깐이나마 그게 나을 거고, 이른 아침엔 손님도 없을 테니 천천히 좀 쉬게 하시라고.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이겠지. 하지만 더 깊게는 아버지와 단둘이, 아무도 없이 혼자서 있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오빠가 걱정되는 엄마는 올케언니를 기어코 오빠 곁에 머물게 했고, 우리는 조카들과 함께 빈소를 떠났다.


두 번째 밤. 손님이 다 가고 없는 조용한 빈소에 앉아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진으로 마주하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 돌아가셔서 찾아뵙지 못하는 포천의 외삼촌 빈소 이야기, 그리고 찾아와 준 손님들 이야기 등을 나누다 문득 지난밤이 떠올라 내가 말을 꺼냈다.


“어젠 혼자 술 마셨어?”

“그렇지. 술 마셨지. 내가 어제 아부지랑 술 한잔하면서 얘기 좀 하려고 했지.”

“그래서 무슨 말을 했어?”

“그동안 못한 얘기들 좀 하려고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해. 답답하게 한마디를 안 해. 아니다. 딱 한 마디 했다.”

“뭐라고?”

“당신처럼 살지 말래. 그래서 알았다고 했어. 새벽 4시가 넘었고 소주를 두 병 마셨는데 술이 안 취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 마시고 잤어.”


말하는 오빠도 듣는 나도 웃었다. 그러나 그 너머로 우리는 분명 울고 있었다.


속내를 말할 줄 모르는 사람.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

나를 위해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는 사람.

답답한 속을 달래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몰라서, 그러니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그저 술만 마시고 담배만 피우는 것 뿐이라 그렇게 기력이 없어 누워있으면서도 술 담배를 놓지 못한 사람.

불쌍한 사람.

가여운 사람.

고마운 사람.


세 번째 날. 삼베옷을 입고 누운 아버지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웠다고, 감사했다고.


남아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시간과 방식은 정해져있지 않다. 오빠는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와 장례식장에서 남은 음식으로 3일간 가족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고, 나는 이렇게 뭐라도 쓰면서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원망하면서, 고마워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게 될까.


때때로 슬퍼하고 이따금 눈물 흘리겠지만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당장 어제도 오전엔 아버지를 만나고 친정으로 가 아버지 방을 정리했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엔 작은 케이크를 사 남편의 생일을 조용히 축하했으니까. 오늘은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하고 루피의 병원을 갈 것이다. 삶과 죽음. 그렇게 양 극단에 한 발씩 걸쳐두고 오늘도 살아가겠지.


나의 아버지. 아빠.

안녕.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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