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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일기

기둥 아래의 밤

by 이은

어젯밤 잠들기 전 마지막 루피의 배변 산책을 나갔을 때였다. 제법 굵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 비를 피해 어린이집 난간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우산을 든 나와 우비를 입은 루피,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난간 위에 앉은 고양이 사이의 거리는 50cm 정도. 고양이를 지나치는 마음이 불편했다.


어린이집 한쪽에는 데크가 있다. 그 데크에는 'ㄷ'모양으로 난간이 둘러 있고, 그 위로는 비를 피할 곳이라곤, 그 좁은 기둥 아래뿐이었다. 하지만, 기둥의 폭은 다섯 뼘 정도이고, 난간의 폭은 손가락 하나가 채 안되는 정도일 뿐. 높이 있는 폭 좁은 기둥이 비를 제대로 막아줄 수도 없을뿐더러 저 난간 위에서 밤을 보낼 수는 없을 텐데. 어떡하지.


아파트 단지를 걸으면서도 불편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이럴 때면 내 마음은 한없이 복잡해진다. 반가움은 잠시, 뒤이어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걱정이 스며든다. 아슬아슬하게 비를 피하고 있는 저 아이를 도울 수는 없다는 것이 미안하고 불편하다. 차라리 보이지 않았더라면. 난간에 앉은 저 아이를 내가 보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만에 하나 한 바퀴를 다 돌고 와도 고양이가 난간 위에 그대로 앉아있다면 어떡해야 하지. 뭘 어떡해. 내 우산이라도 줘야지.


고양이는 설마 했던 모습 그대로 앉아있었고,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쓰고 있던 우산을 데크 위에 두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그대로 지켜보던 고양이가 우산을 내리자 놀라 자리를 피했다. 멀리 가지 않았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녀석이 잠시 자리를 피한 틈을 타 어설프게 올려둔 우산을 난간과 기둥에 기대 똑바로 세워두었다. 이미 젖은 데크는 어쩔 수가 없지만 밤사이 비라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아침이 되었고, 창가 난간에 맺혀있는 빗방울이 밤사이 내린 비를 보여주고 있다. 어제 그 녀석은 우산 아래서 밤새 비를 피했을까. 주말이 지나면 초겨울 날씨가 된다던데, 다가올 추위는 길 위의 아이들에게 어떤 밤이 될까.


KakaoTalk_20251018_094619424.jpg 지난 어르 여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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