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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10. 2023

무언가 쓰고 싶어질 때

보고 싶었어

카카오톡 팝업창을 확인하고 한참 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거기엔 파란비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 예정이라며 함께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다. 나는 무슨 핑계를 대고 빠질까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왜지.


언젠가부터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뒷걸음질 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오래된 인연 아닌가. 그런데 왜일까. 어째서일까. 아마도 지난 시간의 나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 때문이었나 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에 대해, 감정을 어디까지 덜어내야 할 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나를 마주한 표정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아픈데 없이 잘 지내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지 어디에서 뭘 하고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진 않았다. 왜 지레 겁먹고 걱정부터 한 걸까. 어쩐지 이번 만남을 거부하면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진 않았다.


며칠간 지난 흔적을 찾아보았다.


언젠가 네가 다시 내려간다는 얘길 듣고 '사람들 사이에 정말 극단적인 일이 아닌 이상 마침표는 없고 쉼표만 있다. 따라서 이곳에 남는 우리와 떠나는 너와는 마침표가 아닌 쉼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 그게 일 년쯤 전이라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에 오늘 새삼 놀라고 말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넌 다시 박차고 이곳으로 돌아왔고, 쉽지 않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한 네 녀석이 난 참 보기 좋다. 그런데 얼굴은 대체 왜 그 모양이니. 누구는 혼자 살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신을 아끼던데, 넌 어찌 된 게 그 반대인 것 같다.


온갖 계획은 다 잡아놓고 정작 계획의 실현을 위해선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당대 최고의 귀차니즘을 달리고 있는 난. 늘 너의 그런 추진력이 부러웠어. 때로는 무모하다 싶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내가 갖지 못한 그 추진력이 난 정말 부럽다. 언제나 일탈을 꿈꾸고 있지만, 꿈꾸는 그만큼 변화를 두려워하는 난…


다시 시작한 이곳의 생활이 비릿한 바다내음이 가득한 네 고향처럼 또 하나의 그런 곳으로 남길 바란다 친구야!


2003.08.03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지난 흔적을 살펴보았고 20년 전 파란비에게 쓴 편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20년 전 그때엔 1년 만에 만난 것도 오랜만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우리가 만난 게 거의 10년 만이라니.


그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저쪽 끝에 앉아 손을 흔드는 파란비에게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 마치 1년씩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누구는 양쪽 다리 골절로 1년을 누워있었고, 누구는 부정맥으로 응급 수술을 받았고, 누구는 암에 걸리고, 누구는 이혼을 하고, 누구는 또…….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내는 동안의 시간들이 말로 하지 않고서는 실감 나지 않았다. 10년이 아니라 1년 만에, 아니 바로 지난달에 만났던 것처럼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거든. 분명 얼굴의 주름이 늘었는데도 우리가 한참 만나던 20대의 모습같이 느껴지는 건 나뿐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엔 40대 중반의 모습을 한 우리가 앉아 있었지만 어쩐지 우리가 한참 자주 만나던 20대 그 시절이 그대로 있었다.


며칠 전의 내가 참 바보 같다. 만나면 이렇게 애틋하고 좋은 것을 난 왜 지레 겁부터 먹었던 건지.


가만 보니 요즘 들어 오래전 인연이지만 꽤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던 이들과 다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내 삶에서 제쳐놓을 수 없는 C와 멋진 동화작가 언니가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파란비와 같이 뭐라도 쓰고 싶던 시절 무언가 쓰고 싶게 만들던 친구들까지. 앞으로 또 어떤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사는 건 점점 더 재미없어진다지만 나는 재작년 보다 작년이 더 재미있었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 재미있다. 앞으로의 내 길에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또 잊은지도 모른 채 잊혀진 어떤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새로운 만남이라도 좋다. 이제 더는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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