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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25. 2023

아침 시간에 대한 구독권

나의 새벽 루틴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소리에 놀라 서둘러 알람을 끄고 몸을 일으켜 눈을 감은 채 기지개를 켠다. 세안제 없이 물로만 세안을 하고, 밤사이 개딸 보아가 싸놓은 배변패드를 정리한다. 그러고는 내 방으로 들어와 형광등이 아닌 책상 위 작은 조명을 켠 후 기분에 따라 초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컴퓨터를 켜고 창문을 열어 20분 정도 환기를 하고, 그사이 물 한 잔 혹은 커피 한 잔을 준비해 6시가 되면 ‘좋은 아침입니다’하고 단톡방에 인사를 시작으로 줌에 접속해 새벽 글방에 입장한다. 한 시간 동안 각자의 글을 쓰다 보면 ‘여러분, 이제 7시가 되었습니다. 각자 한 문장씩 읽고 끝내겠습니다’하는 모임 지기인 이틀님의 말과 함께 1시간의 쓰기가 마무리되고 각자의 낭독을 끝으로 그날의 새벽 글방은 문을 닫는다. 어느덧 자리 잡힌 나의 아침 루틴이다.      


매일 뭐라도 쓰는 매일 글쓰기 모임이 있다. 그 모임 안에 새벽 글쓰기 소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작년 10월 일주일 간 단발성 모임이 있다고 해 호기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새벽시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글을 각자의 속도로 쓴다는 것은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러니 단발성 모임이 있다는 얘기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참여하게 되었던 거다. 


분할된 화면에 가득한 각자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손들은 마치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소설을 쓰고, 동화를 쓰고, 필사를 하고, 일상을 기록을 하며 고요한 새벽 한 시간 동안 각자의 춤을 추고는 직장으로, 주방으로, 아이의 곁으로……, 그렇게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매일 뭐라도 쓰고 있지만, 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설렐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새벽 글방에 참여하게 되었고, 마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표현처럼 아침 시간에 대한 구독권을 얻은 듯했다. 처음 한 주간 단발성 모임에 참여할 때의 설렘은 어느덧 확신으로 바뀌었다. 미라클 모닝이나 자기계발 같은 건 나는 모르겠고 그저 온전히 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감사했다. 


나란 사람은 분명 새벽시간보다는 저녁에 더 집중이 잘 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 시간에 몰두하려 했던 건 새벽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집중이 잘 된다고 그 시간을 매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4월까지만 해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오늘 3개월간 쉬지 않고 달려온 새벽 글방이 마무리되었고 지난 3개월간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처음 1월을 제외하고는 평일 매일 아침 7시에 낭독했던 문장들을 모아두었다. 매번 4주~5주씩 진행하고 일주일 정도를 쉬어가는 패턴이었던 반면 이번엔 6, 7, 8월을 내리 달려서인지 그렇게 모인 문장이 총 9,687자가 되었고, A4용지로 무려 8장이나 되었다 (오늘 낭독한 문장까지 합해 총 9,840자가 되었다). 물 흐르듯 술술 써진 날도 있고,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고민하던 날도, 아예 참여하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책을 읽은 날도, 필사를 한 날도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잠이 깨지 않아 수많은 'ㅣㅣㅣㅣㅣ' 나 또는 'ㅏㅏㅏㅏㅏ'가 찍힌 날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지난 문장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의 일기가 되기도, 어느 날의 원고가 되기도 했던 그 문장들을 쓰던 시간이 함께 다가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달라졌구나. 저녁이 아닌 새벽시간에 집중이 더 잘되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리고 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하고 말이다.


새롭게 시작하기 전 1주일, 혹은 2주일 간 쉬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핸드폰의 알람은 그대로이고, 그 시간에도 나는 아마 나만의 새벽 루틴을 이어가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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