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Sep 07. 2023

가을이 오고 있다

나의 작은 똥강아지 보아가 산책 중 걷고 싶지 않다는 시그널을 보내지 않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그 마지막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구나. 여름 내내 짧게 20분 미만으로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하더라도 수시로 '애미야 못 걷겠다 나를 좀 안아다오'했으니. 


9월 답지 않게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그늘은 선선하고 바람도 살랑이는 게 얼추 가을의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산책하는 내내 어느덧 걸음이 느려져 내 뒤에서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떼며 따라오듯 걷는 게 아니라, 내 앞에서 엉덩이를 살랑이며 어서 가자며 나를 이끌고 가는 보아의 가벼운 발걸음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산책을 다녀온 작은 똥강아지 보아는 에너지가 남았는지 온갖 것들을 끄집어내며 우다다 타임을 갖고 있다. 그런 보아와는 달리 조용한 루피는 방에 있는 나를 쓱- 살피고 간다. 나를 살피고 간 루피가 뭘 하는지 궁금해 CCTV를 살폈더니 우다다 하는 보아에게 시끄럽다고 한마디 하고는 밥을 먹고 있네. 비록 '배부르게'가 아니라 '배고프지 않을 정도'로만 먹는 거겠지만, 그래도 훌륭하다 루피야.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 오고 있으니 강아지인 너도 살 좀 찌자. 


오늘도 산책에서 "어머, 얘기는 정말 말랐네요"라는 소리를 들었지. "네, 덕분에 슬개골 걱정은 조금 줄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루피의 마른 몸매는 내가 보기엔 조금 안쓰러울 지경이다. 병원에서는 과체중보다는 이렇게 조금 마른 게 건강에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살면서 입맛이 없어 본 적이 없고, 더불어 표준체중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나라서 마른 몸의 루피가 더 걱정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CCTV 속에서 루피는 사라지고 보아만 밥을 먹고 있네. 나도 루피 정도만 먹으면 루피처럼 슬랜더 몸매를 가질 수 있는 걸까? 응. 그건 아니야. 텍도 없겠지.


가을이다. 

비록 한낮엔 33도까지 올라간다 하더라도, 가을이 오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 시간에 대한 구독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