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

by 송정훈


작은 주류회사의 마케터로 일한다는 건 여기저기 부탁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보물 하나를 만들래도 디자인팀의 손을 빌려야 하고, 제품 하나를 개발하려고 해도 연구소부터 구매, 생산 등 여러 부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잔을 끼워 판매하는 기획팩 같은 작은 일을 영업팀과 추진하려면 생산 쪽에 포장을 부탁하고 일정을 협의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당시 나는 코스트코에서 판매할 기획팩을 준비하던 차였다. 유통팀, 거래처와 어느 정도 협의가 마무리되어 특유의 저자세로 생산 본부에 포장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이런 목적으로 이런 활동을 하게 되었으니 바쁘시겠지만 아래 적힌 일정과 수량에 맞춰 생산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 몇 년간 함께 일하며 실낱같은 신뢰를 쌓아 온 생산팀장님에게 전화해 사전 설명은 해뒀다. 메일을 보내고 몇 분 후, ‘생산부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기획팩 뭐할라꼬 이런 걸 하노? 공장에 사람 없어서 이런 거 몬 한다. 정 하고 싶으면 니가 와서 포장하던가.”


얼마 전 생산부장으로 승진한 이의 전화였다. 이전에는 설비기술팀을 담당했지만, 승진을 하면서 설비기술팀뿐만 아니라 생산팀 전체를 총괄하게 된 분이었다. 이전에 생산 프로세스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 네댓 번쯤 연락을 한 분이지만, 통화를 할 때마다 경상도 특유의 거센 억양과 짧은 말투, 불친절한 설명 때문에 왠지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생산팀 전체를 총괄하는 자리로 승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부문에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어서 한 소리 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짜고짜 말했다. 안 된다고, 정 하고 싶으면 니가 와서 포장하라고. 특유의 앞뒤 설명 없는 일방적 이야기에 화가 났다.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긴 했지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요청한 건가? 솔직히 이거 대표님이 시켜서 하는 건데....?’하는 생각에 분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난 어릴 적부터 다혈질이었다. 승부욕이 센 편이라 학창 시절 다른 반과 축구 시합에서 진 날이면 애꿎은 공을 벽을 향해 세게 차며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한 때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이 아닌 강강약약(강한 자에게는 강하게, 약한 자에게는 약하게)의 자세로 사람을 대하겠노라 다짐했던 적도 있으니 뻣뻣하고 미숙한 사람이긴 하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데, 니가 와서 포장하라는 말을 들으니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기획팩 포장을 요청하는 거냐고. 내가 하는 일이 이런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일이고 마침 이번 건은 검토해보라는 지시가 있었으니 추진하는 거 아니냐며 한바탕 쏘아붙이고는 전화를 홱 끊어 버렸다. 기분이 더러웠다. 생산으로부터 갑질을 당한 기분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 이성이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예의를 갖추지 않은 것에 죄송함을 전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속으로 ‘이런 사람한테는 이렇게 해도 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전화기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날은 집에 가서도 기분이 계속 언짢았다. 처음에는 무례한 사람의 무례한 말이 주는 분노였지만, 갈수록 그 분노는 무례함을 무례함으로 맞받아친 나의 미성숙함에 대한 자책과 분노로 바뀌었다. 그날은 집에 와서 좋아하던 취미 생활을 하고 TV를 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나쁜 기분은 쉽게 물러날 줄 몰랐다. 잠들기 직전까지 마음속 불쾌함이 오래 남았다.




감정을 관리하고 표현하는 일에 미숙하단 걸 다시금 깨닫고 무슨 조치라도 해봐야겠다며 책 한 권을 주문했다. 팟캐스트에서 추천받은 책이기도 했고, 표지에는 ‘성숙하게 나를 표현하는 감정 능력 만들기’라는 부제가 적혀 있어 나의 상황과 처지에 딱 맞아 보이는 책이었다. 마음속에 어떤 물음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에 적합한 책을 읽으며 사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좋은 답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있는 물음과 책에 담긴 내용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 내는 나만의 결론인 것이다.


책을 펴기 전에 내 감정 표현이 과하고 잘못됐던 상황이 언제였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차분히 되짚어보았다. 그러면서 감정 표현은 어느 선에서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자문해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 가는 구절 옆에 메모지를 붙이면서 다양한 측면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깨달음 같은 게 떠올랐다.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구나. 감정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게 진짜 문제였구나!’ 무례한 말투에 무례한 말투로 맞받아치는 건 서로의 언어 온도를 높이는 일이고, 결국 그 온도에 모두가 데이게 된다. 말의 온도가 너무 뜨겁지 이성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었다.


며칠 뒤 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이번 건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환경부에서는 비닐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이런저런 지침을 제조사와 유통사에 내리는데, 거기에는 비닐팩 사용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었다. 가끔 마트에 갔을 때, 위에 손잡이가 달린 비닐팩이 술이 두세 병 담겨 있는 걸 본 적이 있을 텐데 그런 형태의 비닐팩을 더는 쓰지 말고, 콜라 두 병이 플라스틱 고리로 연결한 것처럼 바꾸거나 우유 두 팩이 얇은 비닐 띠지로 묶여 있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 올해 환경부에서 내려온 과제 중에 하나였다.


플라스틱 고리와 비닐 띠지 중에서 마트 바이어가 원하는 게 띠지 형태였기 때문에 구매팀과 함께 업체로부터 샘플을 제안 받았고,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산 쪽에 공유를 해줬다. 그리고 며칠 뒤, 문제의 생산부장에게 전화가 왔다.


“띠지 형태로 가기로 했으면 마케팅팀에서 생산은 어떻게 할지? 설비를 도입할지 말지 검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생산부장이면서 설비기술팀장을 겸임하는 사람의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분노의 쓰나미가 마음속에 일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를 해도 한두 달은 군대에서의 부지런한 습관이 유지되듯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그 감정을 감정적으로 받아치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부장님, 띠지 형태로 간다는 건 공유를 드렸고, 구매팀에서 업체 몇 곳을 서치해서 제안 받은 샘플을 얼마 전에 전달해 드렸습니다. 그럼 이 띠지를 가지고 수작업으로 포장할지, 아니면 설비를 도입해서 작업할지는 생산본부에서, 특히 설비기술팀에서 검토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생각이 틀린 걸까요?”


평소와 다른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에 흠칫 당황한 건지, 부장님은 한발 물러서는 느낌으로 “그... 그래. 알았다.” 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간 몇 번의 대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음을 높여가는 록 발라드처럼 짜증과 분노를 주고받으며 불쾌한 감정을 높여가는 대화였다면, 이번 건 서로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진 차분한 연주곡 같은 대화였다.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조금 성숙해진 것 같은 내가 대견스러웠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휴대폰에 그 부장님의 이름이 뜨면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시비를 걸려는 것일까? 또 무언가 문제가 생겼구먼..’하는 마음과 생각이 앞선다. 그래도 예전처럼 상대를 쏘아붙이고 상처를 주는 대화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차분함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최대한 이성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려고 애쓴다. 부장님 역시 마찬가지고.


여전히 관계에 능숙하지 못하고 감정 관리에 미숙하지만, 감정을 감정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전한다면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냄으로써 생기는 후회나 상처 같은 더 큰 부정적인 감정은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큰 시련이었던 부장님 덕분에 인생의 좋은 깨달음 하나를 배웠다. 이 자리를 빌려 부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동시에 부장님께 일로 엮일 일이 최대한 발생하지 않기를 물 떠 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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