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담당 브랜드가 바뀌고 나서 첫 번째로 맡은 업무는 브랜드 리뉴얼이었다. 출시한 지 10년쯤 된 제품을 컨셉부터 디자인까지 새로 수립하는 프로젝트였는데, 나의 레벨보다 높은 일의 난이도에 자주 좌절하고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도 하나하나 부딪쳐가며 결론을 지으니 어느새 프로젝트 말미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 챙겨야 할 건 제품을 알리는 일이었다. 광고 예산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유튜버 광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통 광고 영상을 한 편 만드는 데 적어도 5천만 원 정도는 든다. 거기에 모델료, 광고 집행비가 필요하니 예산이 충분치 않았다. 유튜버 광고는 영상 제작비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구독자라는 팬층에게 전달되는 광고라서 거부감도 적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고독한 애주가, 빵송국, 이택조, 캠핑 유튜버들 채널에 광고를 진행했다. 개중에 어떤 건 잘 됐고 어떤 건 미약한 자취를 남겼는데, 이 경험을 통해 느낀 바를 적어보려고 한다.
1) 성장하는 계정의 초기 광고가 좋다
곧 떡상할 계정의 첫 번째 광고를 선점하라는 말이 있다. 마치 주식을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팔아라 같은 공허한 말이다. 어떤 계정이 언제 떡상하는지, 주식이 언제 저점이고 언제 고점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도 분명한 건 구독자보다 조회수가 많은 상태인, 성장하는 계정에 광고를 하면 좋다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그 계정에 광고 컨텐츠가 많아지기 전에 하면 좋다는 것이다.
<고독한 애주가> 채널에 광고를 진행했던 시기는 주춤하던 구독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하던 때였고 마침 나는 애주가 계정의 두 번째 광고 의뢰인이었다. 술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첫 번째 광고 건이었고. 두 번째 광고인만큼 계정을 운영하는 팀에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줬다. 기획안부터 촬영, 편집까지 영상에 정성을 들인 티가 듬뿍 났다. 유튜버 광고의 성패는 결국 크리에이터가 얼마만큼 영상에 공을 들이느냐에서 판가름 나는 법이기에 성의 있는 태도가 진정 고마웠고 결과도 좋았다. 반대로 유료 광고 컨텐츠도 많이 찍고 핫했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은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영상 속 유튜버의 얼굴에서는 자꾸만 억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묻어났고 나조차도 보기가 편치 않았다.
2) PPL보다는 브랜디드 컨텐츠
술과 캠핑이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해서 캠핑 유튜버 몇 분께도 PPL 광고를 의뢰했다. 모두 열심히 영상을 찍어주셨고 공들여 작업을 해주셨지만, 30분 정도 되는 캠핑 브이로그 영상에서 PPL로 노출되는 제품의 주목도는 낮았다. 아무래도 전체 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브이로그 영상 특성상 도드라지게 노출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를 진행한다면 광고 제품이 영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먹방 유튜버와 컨텐츠를 만들었을 때도 음식이 주인공이다 보니 술이 뒷전이 되는 걸 경험했는데, 앞으로도 이 점을 유튜버를 고르는 주요 기준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 영상에 새로움을 가미하는 것
다른 회사의 사례지만, 이호창 본부장과 매일유업 바리스타 룰스가 진행한 브랜디드 컨텐츠를 무척 좋아한다. 이호창 본부장이 매일유업의 공장을 방문해 바리스타 룰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프레젠테이션 중간중간 어느 회사 임원처럼 썰렁한 농담을 날리는 내용이다. 이 컨텐츠의 조회수가 100만을 넘을 수 있었던 건 이호창 본부장이 인기를 끌던 타이밍에 딱 광고를 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공장 시찰’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가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리는 공간이면서 그간 유튜브 컨텐츠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영상이 펼쳐지니 새로우면서 재미가 있었다. 익숙함에 변화가 가미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4)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계정에 광고를 하자
솔직히 그간 구독해 온 유튜브 계정 대부분은 노래, 공연 영상이다. 이번엔 광고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요즘 뜬다는 계정, 술과 어울릴 것 같은 채널을 열심히 찾아본 것뿐이다.
조사를 하는 동안 몇몇 계정에 애정이 생겼다. 그중 하나가 <빵송국> ‘무조건 나오는 장면’이란 컨텐츠였는데,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클리셰를 두 명의 크리에이터가 어찌나 맛깔나게 포착하고 따라 하는지 한두 편만 본다는 게 시리즈 전체를 정주행해버렸다. 그들에게 광고를 의뢰했을 때, 처음 받은 기획안은 무척 허술했다. 다행히 이 계정을 여러 번 반복해서 시청하면서 어떤 점이 이 컨텐츠의 매력인지, 구독자가 바라는 것이 어떤 요소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정 방향과 요청사항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어떤 계정이 유명하다니까, 또 요즘 조회수가 잘 나오는 채널이라니까, 그 계정에 광고를 하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즐겨 보는 컨텐츠와 협업을 진행한다면 프로젝트가 엉뚱하게 흘러가지 않게끔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