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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정훈 Nov 21. 2021

팀장 리뷰


  팀장님이 퇴사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내가 받게 되었다. 작년 말, ABM에서 BM이 되었을 때 인생의 고난도 2배 깊어졌는데 팀장이 되면 얼마나 더 고단할까?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떤 팀장이 될 것인가, 어떻게 팀을 이끌 것인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난 팀장님들에 관한 생각으로 옮아간다. 이분은 이런 점이 좋았지, 이분이랑은 정말 안 맞았어. 이런 점은 내가 좀 본받으면 좋겠다. 지난 10년 동안 만났던 다섯 팀장님과의 시간을 짧게 돌아보려고 한다.     




  L 실장님 :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첫 번째 만난 팀장님이었다. 1년 후에 임원이 되셔서 실장님이란 호칭이 더 자연스럽다. 작은 키, 사시, 꾸밈과는 거리가 먼 차림새를 가진 분이었지만 유능한 리더였다. 성과를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에 집중해야 하는지 잘 아는 전략가였고 팀원들과의 밀당에도 재주도 있었다. 이분이 특히 좋았던 건 정보를 공유해주는 리더였기 때문이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7시에 임원 회의를 하고 나면 8시에 팀 회의를 했는데(당시 근무시간이 8시부터 17시였음), 그때마다 임원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주셨다. 신입사원에게 그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운 것들이었고 지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보를 쥐고 그걸 무기처럼 쓰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L 실장님처럼 재는 거 없이 소통하는 사람도 있다. 이왕이면 후자가 되고 싶다.      


  K 팀장님 : 아무래도 신입사원이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은 팀에서 비중이 무척 작은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고 기획안 몇 편을 써서 보고했는데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는지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다행히 이분과는 오래 일하지 않았다.      


  C 팀장님 : L 실장님처럼 방향을 잘 잡는 전략가였고 지금은 임원이 된 거로 알고 있다. 이분과 일할 때 퇴사를 했는데, 갈등이 있어 그런 건 아니다. 사직 의사를 밝혔을 때, 어느 삼겹살집에서 술을 건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던 따뜻한 자리가 가끔 기억난다.       


  H 팀장님 : 회사를 옮기고 마케팅 업무를 시작할 적에 만난 첫 팀장님이다. 다양한 프로모션을 추진하고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 브랜드의 철학, 사상, 가치에 관해 고민하는 사색형 마케터였다. 업무 지시가 광범위했고 일의 진행이 느린 편이라 그와 일하는 걸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와는 잘 맞았다. 나 역시 사색형 인간이고 행동에 앞서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어야 하는 사람이므로. 그와 함께 일한 1년 동안 진행했던 업무는 회사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었다. 이제 막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사람이 하기에 썩 적합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함께 다른 회사의 브랜드를 조사하고 그들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어떤 생각으로 운영하는지 알아보면서 브랜드와 마케팅에 관한 관점을 세울 수 있었다. 실무를 하다 보면 브랜드 철학이고 자시고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게 된다. 또, 영업, 생산 등 여러 부문과 협업을 하다 보면 가치고 소비자고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케터로서의 첫 1년 동안 브랜드에 관해 깊게 고민하고 그런 분야에 조예가 깊은 리더와 일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P 팀장님 : H 팀장님 다음에 만난 팀장님이다. 워커 홀릭이자 논리적인 분이었고 무언가를 가르치길 좋아하는 분이었다. 큰 갈등을 겪은 첫 번째 팀장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마케터로서 머리가 좀 굵어지고 주체성을 추구하는 나와 통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일했기에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당시 나는 영업본부 직원 한 명과 꽤 괜찮은 프로모션을 조그맣게 진행하고 있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더 큰 규모의 상시 행사로 가져가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그래서 확대 계획을 보고 드렸더니 프로모션에 기간이 없을 순 없다면 반려를 놓았다. 프로모션에 중요한 건 기간의 유무가 아닌 프로모션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팀장을 건너뛰고 본부장님에게 보고했고 통과가 됐다. 그다음부터 원래도 좋지 않던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자율성을 주는 것, 해보겠다는 걸 밀어주는 것, 이런 게 리더에겐 필요하단 걸 배운 시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잡히는 것 같다. 방향을 잘 잡는 리더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겠구나, 무어라도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구나, 정보를 공유하는 일에도 시간을 들이고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밀어줘야겠구나. 적어놓고 보니 하나 같이 쉽지 않은 일이고 여전히 내 깜냥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그래도 어떤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브랜드 매니저로 승진을 하고 고단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름 괜찮은 결과를 얻었듯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애쓰다 보면 그래도 아주 최악인 팀장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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