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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ly hoonyeon Feb 25. 2023

상상력을 채우는 사적 놀이 공간.. 취향의 정원 #3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자동차 지옥 비행기의 천국
신월新月


서울의 중심 중구에 이사오기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살던 곳은 하루 수십 수백 번의 비행기의 두둑한 뱃살을 볼 수 있는 비행기들의 천국 신월동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이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종이에 그려보라고 하면 매일같이 굉음과 함께 올려다보던 비행기의 배면을 그린다고 한다.


게다가 신월에서 8년 동안 매일같이 회사가 있던 중구 신당동까지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경험했던 나로선 이곳은 정말 몸서리칠 만큼 지긋지긋하게 교통체증이 심했던 자동차들의 지옥 같은 곳이었다.


유독 밀도의 스트레스에 예민한 나는 그런 이유로 퇴근 후 딱히 급한 업무가 없더라도 러시아워를 피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율적 야근을 하곤 했다.

신월 아이들에게 보이는 비행기


신월의 보물 +1


이런 원망 섞인 편협한 생각으로 신월은 교통지옥에 변변한 문화 인프라도 없는 그저 그런 서울에 오래된 변두리 동네이지만 이곳에도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보물 같은 장소가 있다.


2009년 방치된 신월정수장을 리모델링해 개장한 서서울공원이 그것이다. 이 공원은 기존의 방치된 폐 정수 시설을 경관 요소로 적극 활용해 이용자들의 다양한 행태를 유가적인 입체적 공간으로 담아낸 21세기 한국 조경사의 걸작으로 조경분야 세계 최고권위인 ASLA 어워드에서 수상까지 받은 대한민국의 보물이기도 하다.


사실 공원 근처에 사는 이용자의 처지를 떠나 십수 년 전 이곳 현상설계에 경쟁사로 참여했던 터라 개인적으로도 나에게 인연이 깊다.


그리고 이런 뜻깊은 서서울공원 초입엔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보물 같은 장소가 있는데 바로 서서울예술교육센터의 외부공간이다.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서서울예술교육센터는 김포가압장을 리모델링하여 2016년 개관한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국내 최초 예술교육 전용 공간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예술적 놀 권리” 구현을 위해 차별화된 예술놀이 콘텐츠를 연구‧개발하여 서울 서남권 학교와 지역에 제공하고 있다. 총 3개의 교육 스튜디오와 예술놀이 연구실, 전시·체험 공간인 미디어랩으로 구성됐다. _서울문화재단


창의적 놀이공간


나는 유독 비어있는 공간 ‘공터’를 좋아한다. 여기 건물로 빽빽이 가득 차있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을 지닌 아이들의 창의적 놀이 공간으로서 뚱하니 비워놓은 공터가 있다.


이 공터는 신월정수장 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서울공원과 함께 조성된 서울문화재단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 플랫폼이다.


가압장 외부 수조로 사용되던 시설을 다양한 문화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연결로와 인프라만을 설치하고 오롯이 비워 놓은 마치 외부 갤러리 같은 선큰 공간이다.


평상시 이벤트가 없을 때는 주변 동네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찾아와 안전하게 공을 차고 숨바꼭질을 할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는 가변적 공간, 그야말로 예전 어릴 적 내가 경험했던 추억 속 공터 같은 장소이다.    


매력적인 공터의 조건


하지만 단순히 비어만 있는 공터라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열광하며 모여들지는 않는다. 보통 사랑받는 장소에는 반드시 요구되는 공간의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갓 만난 연인들이 은밀한 애정행각을 벌이기 위해 으슥한 곳을 찾아 헤매듯 아이들도 잠시라도 어른들의 눈을 피해 자신들만의 사적인 공간을 찾아 은밀한 놀이와 대화를 즐기려는 본능을 갖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런 인간의 본능을 충족할만한 물리적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곳 선큰형 구조에서 풍기는 묘한 위요감과 군데군데 남아있는 콘크리트 벽과 기둥들은 공공영역에서 잠시나마 최소한의 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준다.


거기에 더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건 공항이 인근에 있는 탓에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선큰에서 밖을 올려다봤을 때 간섭되는 건물 없이 푸른 하늘만 보이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지붕 없는 건축물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능동을 이끄는 에너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일 뿐인데 이곳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능동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발 빠르게 움직이게 만드는 묘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입체적인 벽과 벽사이 선큰과 지상층에서 보이는 풍경이 시야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며 다양한 시퀀스를 만들어내고 모든 동선은 무한 순환이 가능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고정된 시설을 이용한 프로그램은 지극히 지속가능한 공간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 화려한 색채의 값비싼 놀이시설로 꾸며진 아파트 놀이터를 찾는 아이들은 처음엔 열광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싸늘한 싫증을 느끼며 관심에서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조바심


이따금씩 머리 위로 날아드는 신월의 상징 비행기는 시끄러운 굉음에 얼굴을 찌부리기보다는 익살스럽고 호기심 가득한 공간의 분위기를 더해주며 나도 모르게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조바심을 느끼게 한다.

사람과나무 팀원들과 비행기의 순간포착

만약 이곳이 푸르른 잔디와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는 정원에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면 아마도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날렸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주기적으로 지나가는 비행기가 파도풀장의 그것처럼 자꾸자꾸 기다려지는 공간 콘텐츠의 요소가 되어버린다. 여기에서만큼은 항공소음 피해를 안기는 불청객이 아닌 반가운 손님처럼..


공간의 마침표


언제든 어떤 것을 채우고 담느냐에 따라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곳.. 공간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을 미리 틀지어놓지 않고 이용자의 콘텐츠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작동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콘텐츠 중심의 공간.. 하드웨어의 제공자 즉 디자이너는 공간에 최소한의 간섭만을 한다.


공간의 마침표는 그냥 이용자에게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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