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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ekly hoonyeon Mar 19. 2023

최소의 정원 설계

입문형 정원..


정원 청탁


얼마 전 10년 동안 알고 지냈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설계를 하면서 알게 된 강남에서 세련된 건축 자재를 수입/ 유통하시는 사장님인데 비록 나보다 십수 년이 많은 연배가 있는 분이지만 언제나 의욕적이고 꿈이 있는 청년 같은 사람이다.


연락 온 이유는 예전에 약속했던 양평에 짓고 있는 본인 집의 정원 설계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작년 제주에 집을 지을 당시 실내의 타일이나 원목마루 선정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나 역시 그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고, 건축공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이사와 함께 이제야 본격적인 정원 계획을 할 시기에 연락이 온 것이다.


선배 건축주


우리는 그간 지극히 이해관계에 얽힌 업무적인 관계가 아닌 비슷한 시기에 난생처음 단독주택을 짓기로 마음먹은 초보 건축주로서 나이 차이를 떠나 서로 깊은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고작 몇 개월이 차이지만 당당히 단독주택을 먼저 완공한 어엿한 선배 건축주로서 아낌없는 조언자가 되어주었고 더불어 현역에서 활동하는 프로 조경가로서도 외부공간 계획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홍익인간 조경가


무엇보다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아닌 한 사람의 조경가로서  단군할아버지의 가르침처럼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데에 가진 재능을 이바지하는 것이 설계자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돈 많은 부자들의 거드름에 신물이 나기도 했었고..

평면도


‘최소의 정원_양평’



나는 막.. 단독주택을 준공한 건축주로서 뼈를 깎는 듯 고통스러운 건축비와 꿈에도 예상 못한 추가 공사비.. 그리고 숨만 쉬어도 떼어가는 지자체들의 악랄한 세금징수를 경험해 본 터라 상대적이지만 어느 정도 지인이 지금 겪고 있을 심리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장조사


입문형 정원


게다가 전원주택 생활과 가드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초보 건축주에게 과도한 관리나 초기 비용이 들어가는 정원 계획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 나는 이런 일련의 상황과 조건들을 설명하며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최소한의 기능과 경관 연출을 만족하는 제주도 대흘에 이은 입문형  ‘최소의 정원_양평’을 제안하기로 마음먹는다.  

태블릿을 이용한 도면 작성


합리적 재료


절대적으로 물리적인 차폐가 필요한 영역에 값비싼 서양 측백류보단 일반 측백나무를.. 꼭 필요한 이용 동선을 제외하고는 관리가 까다로운 잔디 대신 하자가 거의 없고 관리가 용이한 왕마사 포설을 선택했다.


일반 측백나무 대신 에메랄드그린이니 블루엔젤같은 값비싼 서양 측백나무들이 보기에 좋을 수도 있겠고, 시공 즉시 이상적인 경관을 연출하는 잔디밭이 얼마간의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준공을 하고 시공자도 설계자도 떠나게 되면 결국 오롯이 이곳에 남겨지는 건 건축주뿐이며, 평일에 도시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지친 몸을 일으켜 주말에 잔디밭의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머지않아 닭장 같던 아파트의 삶이 다시 그리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유연성


무엇보다 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볼 때 건축물과는 달리 정원 계획은 한 번에 완성을 하는 것이 아닌 살아보면서 조금씩 발전시키며 유연한 가치를 두고 조금 천천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왕마사 포설은 기능적으로 흙을 피복하는 멀칭재의 역할을 하는데 언제든 원하는 식물을 추가로 심고 쉽게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제주 대흘리 집
GARDEN INFRA


대신 전원생활을 하면서 정원에 꼭 필요한 인프라는 초반에 갖춰야 한다. 대표적인 정원의 인프라는 외부 전원이나 수도 그리고 조명이 있다. 특히 생각 외로 단독주택 설계 시 외부 조명에 대한 소극적인 접근을 하는 설계가 적지 않은데 건축물의 내외장재만큼 외부 활동이 많은 전원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들 외부 인프라임을 잊지 말자.


특히 평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귀가를 하는 지인의 행태를 볼 때 주로 외부 정원을 이용하는 시간은 저녁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고, 빈약한 조명 계획은 저녁 외부 프로그램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외부조명은 폴 pole형태의 보안등보단 가급적 낮은 잔디 등이나 볼라드등을 여러 군데 설치하는 것이 비용적이나 이용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흘리 ‘최소의 정원’ 수종들
  검증된 수종


왕마사 포설로 자칫 드라이하게 보일 수 있는 경관은 투입비용대비 관리가 용이하며 화기가 길고 볼륨이 풍성한 그라스류와 초화류를 기본으로 일부 목본 관목들을 도입했다. 도입수종은 이미 내가 제주에서 직접 심어 보고 경험한 수종을 중심으로 기후와 환경은 다르지만 전원생활에서 나름 몸소 검증한 수종을 선정했다.


특히 그라스류와 가우라는 정말이지 들인 정성에 비해 놀랄만한 감동을 안겨주는 수종들이다. 딱히 별다른 관리가 없어도 잘 자라고 오랫동안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해 주는 가성비 가심비 최고의 수종들이다. 단점이 있다면 이른 봄에서 여름까지는 빈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초본류의 특성일 뿐이다.

정원 계획 도면
중매쟁이


비용을 받고 진행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고작 견적을 받고 공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면을 작성해서 지인에게 전달하였다. 거기에 더해 그간 내가 함께 작업했었던 유능한 시공업체중 적합한 업체를 골라 견적과 함께 건축주의 특이사항과 공사의 유형, 성격에 대해 설명한 후 직접 연결시켜 주었다.


아무리 작은 공사라 해도 설계의 의도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설계 수량만을 가지고 견적과 시공사를 결정하게 되는 경우 의도치 않은 왜곡된 결과물이 되기 쉽다. 설계자는 권한이 주어지는 한 최소한 자신의 계획을 잘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시공을 해줄 수 있는 시공사를 선정하는 데까지 건축주와 긴밀하게 상의하며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재능을 기부하는 선의의 마음으로 작업한 설계가 자칫 서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서먹한 관계로 되어서는 안 될 테니깐…


곧..


양평에 만들어질 weekly hoonyeon의 세 번째 ‘최소의 정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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