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ekly hoonyeon Jan 29. 2023

하루에 떠나는 국내여행.. 취향의 정원 #1

친근한 예술_piknic

오늘은 첫 번째 ‘취향의 정원’을 산책하는 날이다. 유독 추웠던 토요일 아침 이불속 게으름을 애써 떼어놓고 무거운 발걸음을 움직여본다.


평일이면 북적될시간이지만 추운 겨울 주말 아침은 꾀나 기분 좋게 한산하다. 용기를 내어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지하철 플랫폼 앞 셀카를 찍는 여유도 가져본다.


본디 이른 아침 정원을 산책하는 길이란 이렇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들뜬기분이 드는 거 아닐까?


골목길..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


오늘의 정원을 찾아가는 길이 참 정겹다. 회현역에서 내려 출구를 올라오자마자 초행길에 보이는 여러 갈래의 골목길 중심에 서서 나는 한참을 망설인다.


격자형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길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작은 핸드폰 화면의 지도에 의지해 두리번거리기를 여러 번 중간에 손이 시려 주머니 속에서 손을 데운 후 다시 보기도 여러 번이다.     

정문인줄 알고 다가선 후문


piknic


오늘 찾아온 취향의 정원은 서울의 옛 풍경을 간직한 남산자락에 자리 잡은 복합문화공간 piknic이다.이제는 걸으면 발에 치일 듯 흔해빠진 복합문화공간이라는 표현보단 전시 주제에 맞는 콘텐츠를 이용자가 기분 좋게 경험할 수 있는 문화플랫폼으로 칭하는 게 좋겠다.


그리 넓지 않은 전시공간을 골목골목을 살피며 거닐고 계단을 오르며 결국 옥상의 풍경을 마주하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람을 마치는 이 일련의 경험은 정말이지 기분 좋은 산책을 한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자리한 남산자락의 달동네의 골목길을 살피고 온듯한 기분이다. 입체적인 경험은 평면적인 경험보다 강렬하기 마련이다. 비록 몸이 불편한 분들에겐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기획의 힘

수많은 전시공간 중에 내가 제일 먼저 piknic을 찾은 이유는 ‘국내여행 grand tour korea’이라는 독특한 전시 콘텐츠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대개의 전시 콘텐츠의 경우 어떤 개인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형태가 많은데 반면 이번 piknic의 전시는 국내여행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국내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활동하는 여러 작가들의 예술작품이나 사진, 영상, 지도 등 다채로운 콘텐츠로 큐레이팅된 이색적인 전시였다. 굳이 평소에 예술가나 관련 작품에 관심이 없는 누구라도 즐겁게 공감하고 이색적인 경험을 하기에 충분했다.


좋은 주제로 엮인 큐레이팅으로 자칫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친근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좋은 기획의 힘이라 느껴졌다.


내가 장담하건대 어느 누구든 이번 전시에 큐레이팅된 작품들 중 단 하나쯤은 반드시 개개인이 공감하고 추억할만한 조각이 있을 것이다.


자 여행을 떠나볼까..


이타미준_포도호텔
제주.. 이타미준


나는 직업병인지 유독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이타미준의 포도호텔의 전시물 앞에 오래 서있었다. 오래전 막 조경가에 입문했을 적 우연히 제주에서 조우한 포도호텔의 파사드를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구나..라 생각했었고 그때부터 건축가 이타미준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예술품처럼 화려한 금박으로 치장한 포도호텔의 모형을 보니 이전에 알고 있었던 기억과 사뭇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여담으로 얼마 전 이타미준의 자녀인 건축가 유이화씨의 설계로 이타미준 뮤지엄이 개장했다.사연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이타미 준의 업적을 다룬 전시물보다는 사악한 입장료가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타미 준의 팬으로서 꼭 방문을 해볼 생각이다. 비싼 입장료가 위대한 건축가 이타미준의 업적을 증명해 주는 건 아니라 확신한다.

박종우_소쇄원
소쇄원


무더운 8월의 여름 아장아장 걷던 아들의 손을 잡고방문했던 그 시원했던 소쇄원의 추억이 떠오른다. 시원하게 뻗은 대나무 숲을 지나 풍류 가득한 광풍각에 앉아 장맛비의 기운인 탓인지 우렁차게 계곡에내리치던 물소리가 기억난다.


사람의 시선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드론 영상으로 아제껏 알지못했던 소쇄원의 또 다른 풍경을 보니 그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쇄원의 모습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진다.

김영갑


다랑쉬오름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갑작가는 루게릭병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면서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제주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자신의 열정을 다했던 사진작가이다.


이곳에서 김영갑 작가가 담은 제주의 풍경을 다시 만나니 제주에 살면서 익숙하게 수십 번 수백 번 보았던 제주의 오름이 다시금 새롭게 느껴진다. 다랑쉬 오름은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제주의 대표적인 오름이며 나 역시 이곳을 오른 적이 있다.


서울 남산 자락의 남루한 이곳에 서서 비록 시간이 정지된 사진이지만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 다랑쉬 오름의 사계를 단번에 경험해 본다.

권태훈_병산서원


만대루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병풍처럼 둘러싼 산천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불어오던 그 산들바람이 떠오른다.때마침 만개한 배롱나무의 화려했던 꽃사위와 함께.


우리가 친근하게 경험했던 추억의 장소들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공감.. 나는 어렵고 모호함보단 공감의 예술을 좋아한다.

김영일_평창의 산


평창의 산


수년 전 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평창의 어느 산에 올라가 3개월 동안 경험했던 산의 변덕스러움을 추억한다. 산은 결코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산은 언제나 인간에게 혹독하고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낮이 유독 짧은 겨울 산중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이면 적지 않은 공포심으로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굳이 아무도 없건만 문을 꼭 잠그고 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김영일 작가가 사진에 담은 평창의 산은 그런 산의 어두움이 담아있다.

하미현, 일러스트_앙드레드헨


입말음식


하미현은 문헌에는 없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입말음식’을 취재라고 수집하는 요리 연구가이다. 제주의 음식을 주제로 구성된 재미난 일러스트와 푸근해 보이는 필체가 비릿한 바다음식을 기피하는 깍쟁이 서울 남자의 식욕을 자극한다.


100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말은 대개 다음의 둘 중 하나를 뜻했다.
‘금강산 유람’과 ‘서울구경’.걸어 다니는 것이 가장 유효한 교통수단이었고 대부분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평생을 살아가야했으니, 금강산이나 서울은 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꿈의 지명이었다.

이제 우리는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우주여행의 가능성마저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이 전시의 여정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직은 다다를 수 없는 장소를 향한 동경과 경험해보지 못한 어제의 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꿈을 맺는다.

피크닉 디렉터 김범상


여행


전시의 여정은 경험자에게 여행이라는 상대적 의미를 곱씹게 하며 아직은 가보지 못한 동경의 장소에 대한 기대와 이제껏 각자의 흐린 기억 속에 담고 있는 소중했던 여정의 그리움을 나타내며 끝이 난다.


글에서 소개하지 못한 전시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굳이 일일이 소개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이 전시를 통해 강렬하게 기억되는 그리움과 동경은 상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영선님의 옥상정원


하루에 떠나는 국내여행


전시를 모두 관람하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건물의 옥상까지 다다른다. 지하 1층에서부터 골목골목 커튼을 헤치고 좁은 계단을 올라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 여행의 최종 종착지에는 근사한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어렴풋한 기억에 이곳은 조경계의 대모이신 정영선 님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참고로 1층엔 정원사 김봉찬 님의 정원작품이 있다.) 싸늘하게 생명력을 잃은 식물들의 고즈넉한 모습에 서울의 풍경이 겹쳐지니 꾀나 근사한 풍경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이 옥상정원이 전시 플랫폼인 piknic에서 단순히 장식적인 기능이 아닌 당당히 전시의 일부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 조경가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정말 우리나라 곳곳의 장소들을 꽃피는 봄에서 풍성한 녹음의 여름 그리고  산천이 온통 붉게 물드는 가을을 지나 이곳 겨울의 정원에 도착한 기분이다.       

shop & kafe piknic

여행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남아 풍경이 좋은 kafe piknic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여운을 달랜다. 추억 한 조각 뭐 하나 남길 게 있나 shop에 들러 만지작만지작.. 머뭇머뭇..

기어이 포스터 한 장과 책자를 구입했다.


취향의 정원..


기분 좋은 정원 산책이었다. 아름다운 식물들로 채워진 정원을 여유 있게 즐기고 나온 후의 그 개운함과 청량감처럼..


문화플랫폼 piknic은 남산자락의 구도심에 자리한 고즈넉한 입지, 좁지만 마치 긴 골목길을 입체적으로 구부린 것 같은 흥미로운 공간 구조의 물리적인 요소 그리고 그 장소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인 브랜딩, 콘텐츠, 큐레이팅이 잘 조화된 ‘취향의 정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의 정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