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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an 24. 2019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출간 도서


프롤로그_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습니다. 맛있기로 소문난 레스토랑을 찾아 갑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와인 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친구가 묻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냈어?”

“일만 했지, 뭐.” 

데자뷰처럼 이 대화가 머리에 스칩니다. 몇 달 전, 같은 친구와 정확하게 똑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뭔가 새로운 소식을 들려주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난 6개월 간 내가 한 것이라고는 ‘일’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쳇바퀴를 돌고 있는 햄스터가 떠오릅니다. 분명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내 인생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까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의 삶은 역동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뜨거운 사랑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도전이 날마다 이어졌고 조금씩 성장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청량한 희열을 맛보았습니다. 당연히 누군가를 만나면 수다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직장 이야기, 연애 이야기, 창작의 소재가 울컥 울컥 솟아 나왔습니다. 새로 발견한 유전처럼 말이지요.  


 롤러코스터를 타듯 짜릿했던 20대가 지나고 제 인생은 점점 자리를 잡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막내작가 시절 그렇게 동경했던 메인작가가 되었고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과 결혼도 했습니다. ‘안정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마치 잘 설계된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뛰어내리지 않는 한 이대로 무사히 노년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는 배부른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삶은 전보다 즐겁지 않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늘 똑같다고 답하는 내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TV를 켭니다.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요즘 유행하는 광고 카피가 조용한 집안에 울려 퍼집니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외국 여성은 한껏 들뜬 모습입니다. 

‘나도 여행 참 좋아하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열 살 때부터 하게 된 해외여행. 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매 년 수차례씩 해외에 나갔습니다. 직장에서 받았던 첫 월급은 몽땅 미국 횡단 여행에 썼고, 틈만 나면 배낭을 꾸려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 마니아였습니다. 그런 제게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라는 광고 카피가 왜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까요? 


 그건 아마도 제가 “서른을 넘긴 직장인 유부녀”가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 저는 낯선 곳에서 혼자 한 달을 보내는 자유를 꿈꿀 수 없는 걸까요? 그제서 깨닫게 됩니다. ‘안정감’이라는 녀석은 ‘유부녀’, ‘며느리’, ‘성실한 직장인’ 같은 여러 가지 껍데기를 달고 제 인생에 들어왔다는 사실을요. 덕분에 저는 항상 신나는 일을 벌이는 ‘나’의 본모습을 어딘가 묻어둔 채, ‘서른을 넘긴, 직장인, 유부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내가 어느새 ‘나’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자 제 안에서 잠자던 열정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이 부어진 듯 욕구가 활활 타오릅니다. ‘나’ 다움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결심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릅니다. 


‘그래. 혼자서 한 달 동안 살아보자. 로망의 도시 파리에서.’


저의 파리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책 정보 

[파리에서 한 달을 살다]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에세이 / 2017.8월 출간 / 도서출판 리얼북스

교보문고, 영풍문고, 알라딘, YES24 등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


목차            


프롤로그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다 
일상에 내미는 소심한 사표 
내 꿈의 무게 
파리의 구름 
버킷리스트 No.1 
내가 꿈에 그리던 동네 
일정의 여백 
한참 책을 읽었다 
더 미루기로 한다 
고양이처럼 오늘만 살기 
자연스러운 치유의 눈물 
국경 너머 행복을 찾아서 

#2 파리 너는 사랑이다 
파리, 너는 사랑이다 
행복의 순도는 어떻게 될까 
수다쟁이 파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유 룩 라이크 어 패리지앵 
내 친구 헤밍웨이 
파리 한복판에서 외치다 
카페 알롱줴, 실부쁠레 
다락방 비우기 
라라랑 
육회의 추억 
나에게 튤립을 선물하다 
센 강을 달리는 배, 바토무슈 
잘못하면 턱 빠져요 
내 사랑은 거기까지 
얼굴에서 빛이 나 
몽마르트르 언덕 오르기 
오늘도 돼지런하게 
마카롱의 마법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다시, 파리에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 
와인 한 잔의 행복 

#3 파리가 가르쳐준 것들 
날아라 내 인생아 
혼자라서 더 좋다 
찾았다, 김종욱 
햇살의 힘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기 
파리의 봄 
그나저나 참 소박하다 
사랑 한 잔에 담뿍 취하다 
괜찮아. 너도 괜찮아 
사랑에 빠지지 않고 못 배길 테니까 
맛있는 젤라토에 대한 예의 
우리 사랑은 스물두 살 
밥에 대한 갈망 
꿈과 그럴듯한 현실 사이 
파리에서도 가끔 서점에 갔다 
디즈니랜드 
20년 말 정산 
맑은 웃음소리 
엄마는 보통 엄마가 아니다 
카메라를 질투해 
이제 우리 같이 행복하자 
여유 수업 
꽃길만 걷자 
비 올 때 제일 예쁜 파리 
나의 영원한 여행 메이트 
시간을 잊고 살다 
희희낙락한 인생 
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에서의 한 달이 지나간다 
파리에 간 큰언니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4 너와 나의 파리 
익명과 호명 사이 
Fucking Heavy! 
어느 작은 재즈바에서 
무계획속의 서프라이즈 
고추장 밥과 까르보나라 
아이폰 키다리 아저씨 
이민자들의 가게 
장 자끄 쌍뻬 
새로운 뮤즈의 발견 
파티에 초대해도 될까요 
특별한 우정 
인생 또한 그렇단다 
권태로운 일상과 잠깐의 헤어짐


에필로그 


저자 소개 


전혜인


작은 체구에 어울리는 배낭을 메고, 발로 여행지를 누비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의 전도사로, 길게는 두어 달, 짧게는 일주일씩 나를 위해 고독한 여행을 하고 있다. 2017년 봄,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쉼표를 찍고, 로망의 도시 파리에서 달을 살았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유롭고 아름다웠던 파리 달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파리에서 만끽한 행복이 다른 이들에게 큰 행복으로 번져나가기를 소망한다. 

일, 공부, 사랑, 사람, 마주하는 모든 것에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하며, 선한 마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학에서는 어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EBS에서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해 수년간 방송과 함께 울고 웃었다. 이제는 조금 더 솔직하게, 나와 당신의 이야기를 섬세한 글로 쓰고자 한다. 


Insta @amour_l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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