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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앞맵시 이복연 Nov 07. 2022

[조직 문화] 수평적 문화로 가는 길

기술 스타트업이 세계 무대에서 살아 남으려면..

★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를 발표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많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번 글은 그에 대한 답변의 일환입니다. 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그중 수평적 문화는 이미 바람이 불고 있어서 불씨를 널리 퍼뜨리기가 비교적 수월할 것입니다. 기술 기업에 수평적 문화가 중요한 이유와 이 문화를 제대로 일구려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이 주제의 글이 이미 많지만, 다행히 저와 같은 관점의 글은 못 찾았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수평적 문화를 추구하는 이유

요즘은 많은 회사, 특히 기술 기업에서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추세입니다. 채용 공고에서도 수평적 문화를 명시하는 경우도 늘고 있죠.


그런데 기술 기업에서 수평적 문화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목적은 원활한 소통을 바탕으로 창의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IT와 같은 기술 기업의 경쟁력은 구성원들의 창의력에서 나옵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글로벌 경쟁이 점차 기본이 되어가기 때문에 기업 생존을 위해서라도 빠르게 도입하고 정착시켜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의 위치

수평적 문화로 내세우는 대표적인 예가 직급 철폐, 호칭, 존대입니다. 직급을 없애고 모두가 '아무개 님'으로 호칭하며 서로 존대하는 것이죠. 10여 년 전만 해도 수평적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서양 방법론은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으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들의 출발선은 더 멀리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선진 기술 기업을 키워낸 서양은 사회 자체가 우리보다는 대체로 훨씬 수평적입니다. 어린아이와 노인이 친구로 지내는 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반면 고작 1년 차이로도 선후배가 나뉘는 문화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에게 갑자기 열 살 스무 살 차이 나는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지내라고 하면 쉽게 될 리가 없겠죠.


<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의 '문화' 파트에서는 수평적 문화를 따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는 너무 당연하여 중요하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은 많은 외국계 선진 기업에서 당연한 이 문화를 따라가기 위해 뒤늦게 옷을 갈아입는 중입니다. 환복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입던 옷이 아니니 여러 모로 불편합니다. 새 옷에 몸을 맞추려면 우리는 또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더 필요한 것

떠오르는 생각들 중 다섯 가지만 적어봤습니다.


친구가 되자

평가 제도

공유하고 배우는 문화

참여 기회 확대

능력에 따른 역할 배분(권한 위임)


1. 친구가 되자

직급, 호칭, 존대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입니다. 형식도 당연히 갖춰야 합니다만 본질이 더 중요하겠죠. 직급, 역할, 연차,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가 정말 수평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라는 마음이 생겨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회 초년생 때부터 “위아래 4살까지는 친구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상사 앞에서도요. 당시가 2004년이군요. 30대 초중반쯤 되어서는 위아래 '8살'로 늘렸고, 지금은 아무런 경계도 없습니다. 말을 놓는다거나 버르장머리 없게 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항시 언행을 겸손히 하고, 상대를 존중하며, 동료로서 지킬 것은 다 지켜야 합니다. 다만 꼭 해야 할 말을 위계 때문에 꾹 참는다거나 다른 이의 직언을 위계를 내세워 내리누르지 않는다는 뜻이죠.


아직까지 “우리는 모두 친구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며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꼭 남에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 조용히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듬질하는 정도를 추천합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제 이야기를 굳이 끼워 넣은 이유가 있습니다. 직급이 다르거나 나이 차이가 많다는 이유로 '스스로 먼저 벽을 세우지 말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관리자에게 할 말은 하고, 경력이 적거나 어린 동료의 이야기도 귀담아들읍시다.


그런데 관리자에게 직언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의 고과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2. 평가 제도

설령 '진짜' 친구라도 내 관리자가 되면 말을 조심하게 됩니다. 옳은 이야기라도 관리자의 심기를 거스르면 내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관리자는 나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힘을 부여하는 공식적인 장치가 바로 평가 제도입니다.


평가 제도가 수직적이라면 수평적 문화를 구축하는 데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팀원들을 평가할 권한이 직속 관리자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또한 직속 관리자보다 윗사람들과는 직접 소통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관리자와의 갈등은 거의 항상 내 손해로 귀결됩니다.


조직 운영 효율상 평가의 수직성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다면 평가(360 Degree Feedback)'라는 보완책이 있습니다. 다면 평가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공통적인 핵심은 조직원도 관리자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관리자가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특정인이나 팀을 괴롭히는 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1:1 대립에서는 관리자가 유리하겠지만, 팀원 여럿이 공통적으로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일이 누적된다면 관리자에게도 타격이 갑니다.


물론 다면 평가의 주요 목적이 수평적 문화 구축은 아니며, 섣불리 운영하면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지금 글에서는 '수평적 문화를 가로막는 평가 제도를 보완한다'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이니, 도입을 고려해보려거든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고심해서 추진하기 바랍니다.


3. 공유하고 배우는 문화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공유하고 배우는 문화 역시 수평적 문화 도입에 중요합니다. 공유와 배움의 문화는 조직 내에 '나의 기술적 성취와 노하우를 알리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의 말은 귀담아듣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인간의 본능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권위/힘에 호소하는 오류'도 있죠. 폐쇄적인 조직에서는 직급(역할)에 권위(힘)가 집중되기 쉽습니다.


공유와 배움의 문화가 발달된 조직에서는 자신의 기술과 노하우를 정리하고 공유할 기회가 늘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숨어 있는 실력자가 드러나기도 하고 서로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든 배울 게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습니다. 직급이나 역할에 집중되던 힘이 자연스럽게 분산되는 효과가 있죠. 물론 리더가 실력까지 뛰어남을 보여준다면 팀원들이 더 믿고 따르는 상승효과도 얻게 될 테고요.


어떤 책의 저자는 출간 후에 회사에서의 자기 영향력이 극명하게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책 출간은 극단적인 예지만, 공유와 배움의 문화는 비슷한 효과를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게 해 줍니다. 문화를 구축하고 나의 영향력을 키우는 매개로 활용해보세요.


4. 참여 기회 확대

팀원들도 회사와 프로젝트 관련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세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다면 '수평적'이라는 느낌을 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과정에 참여시킬 수는 없고, 강제로 참여시키는 것도 문제입니다. 구체적인 범위와 방식은 조직의 상황에 맞게 정하여 점진적으로 도입해야겠지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 방향성에 관심 많은 엔지니어를 기획 회의에 참석시키거나 주요 기술적 의사결정 시 팀원들과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5. 능력에 따른 역할 배분(권한 위임)

앞 절들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공유와 배움의 문화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관심사와 기술적 성취를 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발언에 힘이 실리고, 원한다면 다른 영역이나 더 큰 역할로의 참여 기회를 쟁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조직 차원에서 엔지니어들의 기술적 참여 기회를 늘려주는 멋진 제도로 '테크 리드(tech lead)'가 있습니다. 테크 리드는 특정 기술을 잘 아는 엔지니어에게 해당 기술 관련 결정의 리더 역할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엔지니어링 관리자 vs. 테크 리드' 글을 참고하세요. 1인 관리자 체계에서 탈피해 테크 리드와 협력해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바꾸면 엔지니어들이 전문성을 살려 더 큰 역할로 참여할 기회가 늘어납니다.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가짐은 더 진지해지고 태도는 주도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테크 리드 같은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특정 모듈이나 기술 등으로 범위를 한정하여 적절히 '위임'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더 많은 엔지니어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서 부담도 적죠. 모듈 소유자(owner)는 맡겨진 모듈의 코드와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는 변경된 코드를 커밋하려면 해당 모듈 소유자의 승인을 반드시 얻도록 합니다. 테크 리드의 권한과 책임 일부를 위임하는 제도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테크 리드와 소유자 모두 위아래 개념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특히 소유자는 승진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어떤 모듈의 소유자가 된다 함은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팀을 옮기거나 프로젝트 방향이 바뀌면 더 이상 소유자가 아니게 될 수 있는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팀에 필요해서 전문성이 더 뛰어난 사람을 충원했다면 약간의 적응 기간 후 소유자 역할을 이전해야 할 것입니다. 테크 리드도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지만, 권한과 책임이 훨씬 크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선정해야 합니다.


이처럼 능력과 역할에 따른 문화가 잘 뿌리내린다면 조직이 훨씬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굴러갈 것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결정은 네가 해. 책임은 내가 질게."

작은 팀을 리드하던 시절, 친구였던 팀원 한 명이 그래픽스 라이브러리 관련 이슈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설명을 들어 보니, 판단하기에 저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친구가 전문가였고, 어떤 선택을 해도 치명적인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했죠.



기술적인 세부 결정은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위임하고, 저는 제품이 요구사항대로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검증했습니다. 그후 비슷한 일이 또 생기면 '무엇이 문제였고, 왜 어떤 결정을 내렸나' 정도를 간단하게만 알려주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따로 공부하여 해당 결정에 대해 다른 이에게 설명할 수 있을 수준까지 알아두었습니다.


조직에 '테크 리드'와 유사한 공식 제도가 없더라도, 능력 있는 팀원에게는 이런 식으로 권한을 위임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기대 효과

글을 마치면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아이디어들의 기대 효과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친구다'라는 자세를 키우고 '평가 제도'를 보완한다면 상사와 부하, 혹은 절대적인 평가자와 피평가자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전이 개선되어 소통이 원활해지고, 좋은 아이디어가 토론 테이블에 올라와 논의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리더들이 더 성장하도록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무능한 리더를 걸러낼 수도 있습니다.


'공유와 배움의 문화'는 숨은 전문가들이 드러나게 해 주고 모두가 함께 성장할 기회를 넓힙니다. 자신의 성취와 성장을 알리고 내 발언의 영향력을 넓힐 기회이기도 합니다.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확대'되면 프로젝트에 더 관심이 생기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의욕적으로 일할 것입니다.


'능력을 토대로 역할을 배분'하면 조직 내 위치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엔지니어는 기술과 역량에 바탕을 둔 성장 로드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조직은 한 명에 집중되던 의사결정을 전문가들에 위임하여 병목을 줄이고 더 신뢰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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