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엔지니어는 이렇게 일한다>에서 다룬 문화, 프로세스, 도구 중 가장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바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화를 바꾼다는 건 사람을 바꾼다는 뜻이므로 현실에 녹이기가 가장 어려운 영역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변화시키기 어려운데 남을, 그것도 팀과 조직 전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하죠.
그래서인지 현실적인 방법론 묻는 분이 종종 계셨습니다. 아마도 이미 몇 차례 좌절을 경험해보신 분들이겠죠. 다행히 저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고민한 주제라서 이번 기회에 생각을 더 정리해봤습니다.
먼저 전체 흐름을 간략히 보여주는 그림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절에서는 틀만 잡고 자세한 내용은 이어지는 절들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화살표로 연결된 노란 박스들은 대체로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는 절차입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실패’는 한 번 강조하며 시작하고 싶네요. 여러분은 실패할 것입니다. 천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문화를 바꾸긴 어렵습니다. 그러니 실패를 인정할 줄 알고, 다시 정비하여 재도전해야 합니다. 실패는 필수 코스이니 절대 좌절하지 마세요.
‘두려움 없애기’는 리더와 조직 차원에서 항시 신경 써줘야 하는 일입니다. 배우길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문화를 퍼뜨리는 데 유리합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이끌려면,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해 주면 좋겠지요. 그래서 조직이 변화해온 역사를 모두가 알 수 있게 정리해두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또한 질문하는 게 두렵지 않고 배움을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주변의 성장에 기여한 사람에게 적절히 보상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정착되면 함께 변화한 모두에게 작은 선물을 돌아가도록 하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변화에 더 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협력해줄 겁니다.
‘의지할 동료 찾기’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의 멘탈을 지켜내기 위한 보호막입니다. 반복되는 실패가 좌절이 아닌 성장의 밑거름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료는 조직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도 있습니다. 내부 동료는 동병상련하는 끈끈한 동지가 되어줄 것이고, 외부의 동료는 다른 경험을 토대로 한 걸음 떨어져서 냉철한 피드백을 줄 것입니다.
마지막 ‘조직의 비전과 성장’은 모두의 전제조건입니다. 정체된 조직, 비전 없는 조직, 생계형 조직에서는 사람들에게 변화할 동기를 불어넣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하루빨리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요. 경영진과 리더들이 풀어야 할 중요한 난제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노란색 단계들을 조금씩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동료들과 같은 편이 되어주세요. 내가 동료들을 같은 편으로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상대방이 여러분을 같은 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같은 편이 아니라면 무언가를 시작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이가 틀어지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본인들에게 득이 되는 이야기도 단지 ‘여러분이 말했기 때문에’ 거부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같은 편이 되려면 ‘척’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중하고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평소에 본연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주변에 피해 주는 일이 없게 하고, 동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며,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성심껏 도와주세요. 때론 궂은일을 맡아야 할 때도 있겠죠.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하는 진정한 동료가 되어주세요.
나아가 조직 전체가 같은 편이 되도록 힘써주세요. 리더(특히 엔지니어링 관리자) 분들은 조직 내 갈등 해소와 예방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람을 이해하고 팀원들과 소통하는 데 많이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팀원 분들은 자신이 갈등의 씨앗이 되거나 불씨를 키우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뒷담화 금지, 겸손과 존중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변화에 저항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니어 분들은 저항이 훨씬 덜 합니다. 아직 호기심이 왕성하고 기존 방식이 완전히 손에 익지 않은 상태죠.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비용도 적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더 나아 보이는 방식을 들고 오면 관심을 보이고 확실히 더 협조적입니다.
한편 연차가 쌓인 분들은 익숙해진 방식을 버리는 게 내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소 효율이 떨어지거나 유행에 뒤쳐졌다 해도, 지금도 속도가 충분히 나오고 눈 감고도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미 비슷한 방식을 시도해봤을 수도 있고, 변화가 정착되기까지의 혼란 자체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연착륙시키려면 이 분들도 반드시 동참해야 합니다.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게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책을 선정해 스터디하거나,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열어보세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에는 힘이 실리는 법이니, 관련한 경력자를 채용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모두가 ‘꼭 필요한 변화네’라고 생각해주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재미있는 시도겠구나. 큰 기대는 없지만, 해보자는 분위기가 커지면 같이 해보지 뭐’ 정도만 이끌어내도 다행일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리더에게는 이 단계를 건너뛸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잡음을 줄이고 성공률을 높이려면 팀원 다수가 변화를 원할 때 진행하는 게 유리한 건 당연합니다.
리더는 이야기를 공론화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단, ‘답정너’로 흐르지 않게 주의해야 하겠죠. 팀원들이 리더를 답정너로 생각하는지 여부는 평소 행실에서 정해집니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남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않는 리더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리더가 본인은 남의 말을 잘 듣는다고 착각하죠. 많이 물어보고 ‘귀로’ 듣기는 하니까요. 이런 인식을 누그러뜨리는 문제는 또 다른 긴 이야기라서 생략하겠습니다.
설혹 상황이 녹녹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끌어내려는 노력을 권합니다. 변화를 주려는 이유를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세요. 이때 철저하게 실무자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걸 추천합니다. 어떤 일이 줄어들고, 어떤 불편이 해소되는지, 어떤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지 등등.
반대로 회사나 관리자 관점의 장점 등 실무자가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는 배제하세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거나 비용이 줄어든다는 등의 이야기 말이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날 겁니다. 이중적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무자 눈높이에서 고민해보기’가 핵심입니다.
평소에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팀원이 있다면 먼저 검토를 부탁해보세요. 그런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인맥이나 커뮤니티를 활용해서 비슷한 환경의 다른 회사 실무자의 피드백을 받아보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리더는 공감 끌어내기 단계를 생략할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때나 생략하면 안 되겠죠? 생략할 때는 다음 경우들에 해당하는지 먼저 고민해봅시다.
공감을 끌어내려는 노력 자체가 에너지 낭비일 수 있습니다. 쉽게 바꿀 수 있고 효과가 즉각 나타난다면 결과로 느끼게끔 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겁니다.
필요성을 공감하더라도 변화가 너무 크면 심적으로 부담됩니다. 다행히 조금씩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최종 목적지를 숨기는 게 유리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때로는 단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술 부채를 안고 가는 전략을 택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문화 바꾸기도 하나의 프로젝트로 본다면, 공감을 얻고 뿌리내리는 일은 기술 부채로 볼 수 있습니다.
공감대가 형성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이라면 필요한 변화를 먼저 시행하고 반응을 살피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업보로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새로 부임하여 아직 신뢰가 쌓이지 못했다.
패배주의가 만연하여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방향성에 대한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시간만 흐르고 있다.
..
특히 3번의 상황이라면 반드시 주의할 게 있습니다. ‘위에서 시켜서’ 한 변화라면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위에서 원하는 대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한 번 바꾼 걸 되돌리는 것도 큰 일이라서, 문제가 어지간히 심각하지 않으면 부정적인 피드백은 잘 올라가지 않습니다. 특히나 저 위에서 주도한 변화라면 중간 관리자를 거치면서 문제점들이 걸러지고 희석될 겁니다.
리더와 달리 팀원은 공감 끌어내기 단계를 생략할 수 없습니다. 하향식(top-down)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변 동료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고, 결정적으로 리더의 허락이 떨어져야 합니다. 리더의 공감만 잘 얻어내고 리더가 직접 움직이게 만들면 ‘하향식’으로 전환할 수 있으나, 팀원이라서 누릴(?) 수 있는 장점 하나가 사라지게 됩니다.
앞서 리더가 주도하면 ‘답정너’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팀원이 주도할 때는 불가능하겠죠. 팀원의 이야기에는 훨씬 솔직한 피드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시당할 가능성도 커지며, 처음부터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거부감부터 일으키기 쉽습니다. 이런 위험들을 극복하고 공감을 끌어낸다면 다음 단계가 훨씬 부드러울 겁니다.
무시당하지 않고 거부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 먼저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관련하여 잘 정리된 좋은 글을 공유하거나 작게 스터디를 시작해보는 방법도 괜찮을 겁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창의력을 십분 발휘해보세요.
이때 “우리가 이런 점을 못하고 있다” 같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부정의 메시지는 기존 방식을 따르는 분들에게 공격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주니어 시절 자주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이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군을 최대한 확보해야 합니다. 되도록 나보다 평판 좋고 영향력 있는 분들이 동참하고, 나아가 그들이 앞장서게 만드세요. 성공 확률이 몇 배는 늘어날 겁니다. 그 끝에는 물론 리더가 있겠죠?
앞에서 리더가 주도할 때는 철저하게 실무자 관점의 메시지만 전달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반대로 팀원이 주도할 때는 리더가 얻는 혜택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리더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면 시작도 못해보고, 심지어 갈등만 일으키고 끝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행동할 차례입니다. 아주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면 계획을 세워서 단계별로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조직이 크다면 적용하는 범위도 단계별로 늘려야 하겠죠.
당연하지만, 단계별로 적용하는 이유는 시행착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죠. 아무리 쉬워 보여도 새로운 문화가 모든 사람에게 단 번에 스며들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적응하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마다 이해한 바가 모두 다를 겁니다.
어쨌든 단계별로 실천해보며, 앞 단계에서 발견한 결함을 보완하고 확대 적용하는 속도를 조절합니다.
또한 적절한 영향력을 갖춘 사람을 등에 업고 진행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더 신경 써서 협조해겠죠. 앞서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었다면 흔히 생각하는 하향식(top-down) 변화와는 다를 겁니다.
단, 형식적인 보고가 뒤따르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죠. 보고를 위해 아름답게 포장해야 할 것 같다면 윗분을 끌어들이지 않음만 못합니다. 그러니 말이 잘 통하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분을 찾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실패할 것입니다. 문화, 즉 사람을 바꾸는 일이 실패 없이 이루어지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시고, “실패”라는 성적표가 주어지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절대 외면하거나 좌절하시면 안 됩니다.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입니다. 처음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더라도 배운 게 있다면 과거보다 발전한 것입니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곱씹어보세요. 특히 다음 관점에서도 살펴봐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방향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었나?
변화를 시도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나?
목표한 변화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해 보이는가?
과정을 더 작은 단계들로 나눌 수 있을까?
우선순위를 달리 하여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변화해야 할 부분을 더 줄일 수 있을까?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나?)
재정비를 마쳤다면 다시 시작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3단계인 ‘실천하기’로 바로 뛰어들고 싶겠지만, 1단계부터 되짚어봐야 합니다.
실패 후 혹시라도 남 탓을 한다면 ‘같은 편 되기’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특정인을 향한 비난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또한 내가 실패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전히 같은 마음인지 살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의욕 넘치던 동료도 한두 번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싹틀 것입니다. 가까워진 마감일이나 다음 프로젝트로 관심사가 옮겨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의 휴식, 혹은 색다른 이벤트나 계기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인내하며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큰 변화가 단번에 이루어지기보다는 작은 변화들이, 그것도 아주 느릿느릿 쌓일 겁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전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릅니다. 다음은 높으신 분께 제가 주니어 때 듣고 많이 인용하는 말입니다.
“8년쯤 지나 돌아보니 내가 바라던 모습에 제법 가깝게 달라져 있었다.”
당시에는 전혀 와닿지 않았지만, 8년을 조금 못 채우고 그 회사를 떠날 즈음 돌아보니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주니어일 때부터 큰 변화에 목말라해서 성공 확률도 낮았고 빠르게 지쳤습니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내 영향력과 신뢰가 충분히 커졌을 때 시도했다면, 혹은 더 많은 동료를 끌어들여 시도했다면 많이 달랐을 거 같습니다.
처음엔 아주 간단히 핵심만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살이 점점 붙어서 왠지 거창해 보이는 사태(?)가.. 제가 무슨 전문가도 아닌데 너무 커진 느낌이 들어서 가위질을 좀 했습니다.
5줄 요약
문화 바꾸기는 마라톤이다.
변화시키야 할 사람들은 극복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동료다.
공감대 형성이 절반이다.
실패는 필수다.
동료를 모아 멘탈을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