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은지 May 21. 2021

연구자의 발표실력은 생존력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발표하는 것을 꺼려했다. 발표를 하는 와중 말이 헛나오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고, 사실은 화면을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는 것일텐데도 무표정한 청중들의 얼굴과 마주치면 혹시 내 발표가 너무 지루한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막 쏟아지면서 발표를 하는 내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자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는 했다. 발표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심해져서, 대여섯명 정도가 모인 랩세미나에서도 화면에 뜬 글자를 읽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발표 정말 재미있게 잘 한다’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연구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납득이 가게끔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발표를 하는 것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발표 실력이 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목적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의 발표를 종합해보면, 내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는 네 가지 정도의 유형이 있었다. 첫번째는 학위 심사, 박사 면접, 프로포절 등으로, 학과 내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두번째는 국제디자인학술대회로 주로 디자인 매니지먼트 분야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발표를 했다. 세번째는 국내 도시재생 실무자, 네번째는 내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혹은 앞으로 도움을 주게 될) 대전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각 청중들의 배경지식이나 특성은 가지각색이지만, 결국 내가 이런 발표들로부터 얻고자 하는 바는 분명했다. 내 연구가 가치있고 재미있다는 것을 설득하거나, 또는 이런 참신한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알려, 연구를 계속 해나가기 위한 기회들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연구를 생존시키고, 나 자신이 연구자로서 생존하기 위해 ‘발표’라는 능력을 강화해온 것이다.


연구자는 그저 연구만 잘 하고 논문만 잘 쓰면 되는 줄 알았다. 논문을 잘 쓰려면 리더십과 사회성이 필요하다더니 이젠 발표실력까지 갖춰야 하다니. 누군가가 연구자는 종합예술가와 같다더니, 정말 그렇다.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독립연구자가 되었을 때 혼자서 잘 살아남으려면, 이런 생존능력을 미리 미리 길러야겠구나, 이런 다양한 종류의 능력들을 골고루 기르기 위해서 박사과정 4년은 절대 긴 게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를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으로, 여전히 발표를 하면 후들 후들 떠는 내가 그나마 발표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팁을 공유하려고 한다 (잘 하시는 분들은 패스). 바로 ‘대본’과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기능’이다. 내 발표 대본에는, 슬라이드는 넘기는 포인트나 목소리 크기, 말하는 속도, 제스처 등이 적힌 지시문도 함께 적혀있다. 발표 상황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지시문이 큰 도움이 된다. 두번째는, 파워포인트에 있는 애니메이션 기능이다. 특히, 국제 학회와 같이 영어로 발표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면 내용 전달력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긴장하면 자칫 빨라질 수도 있는 말하기에 적당한 쉼 (pause)을 주어 여유있는 발표가 가능하다.

작가의 이전글 제1저자의 역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