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위로를 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살다 보면 위로의 말을 해야 할 순간이 있다.
누군가는 실연을 겪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큰 일을 겪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상실을 경험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 멈칫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마음속에서는 분명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막상 입을 열려고 하면
적절한 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이런 말을 한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어봤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지금은 힘들겠지만 다 이유가 있을 거야.”
나쁜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위로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듣는 사람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발생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커뮤니케이션을 관찰하다 보면
사람들이 위로에 실패하는 이유를
한 가지 패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위로를 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상황을 분석하고
조언을 하고
의미를 찾으려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이번 일을 통해 배운 게 있을 거야.”
“너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좋은 경험이 될 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대부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그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을 견디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로를
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이 좋은지
어떤 조언이 도움이 되는지 고민한다.
하지만 위로는
말의 문제가 아니다.
위로는
내가 그 사람과 어떤 위치에 서 있을 것인지의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에 서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옆에 서 있을 것인지의 문제인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꾸 해결자의 자리로 올라간다.
하지만 정작 힘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결자가 아니라 동행자다.
우리가 종종 잊는 사실이 있다.
위로의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위로의 목적은
정서적 동행이다.
지금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는 당신의 편이라는 것,
그리고 이 시간을 함께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백 마디 말보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된다.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대단한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많이 놀랐겠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랬구나."
이 정도의 말이면 충분하다.
상대의 감정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말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종종
좋은 위로를 하려면
좋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위로는
멋진 문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위로는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에서 나온다.
내가 당신의 편이라는 것,
당신이 넘어지더라도
옆에서 함께 서 있겠다는 것.
위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능력이다.
그래서 어쩌면
성인들 사이의 위로란
아주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네 편이야.”
그리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일지도 모른다.
- 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