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중독자가 될수록 더 피곤해지는 이유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 있다.
약속을 빠지지 않고, 먼저 연락을 하고,
누가 부탁하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좋은 사람이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늘 피곤하다.
이 피곤함은 일정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금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배려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관계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상태,
즉 관계중독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반응하는 상태.
그래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화를 먼저 끊지 못하고,
내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고려한다.
이건 배려가 아니라
의존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다.
갈등을 피한다.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다.
관계가 끊기는 상황을 극도로 회피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괜찮아요.”
“맞아요.”
“제가 할게요.”
문제는 이 말들이
진짜 의사 표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신호일 뿐이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편해하고, 관계는 유지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관계는 남는데,
나는 사라진다.
하루를 돌아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쓴 말은 많지만,
정작 나를 위해 한 말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건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표현의 문제,
조금 더 오버하면 자기 붕괴의 문제일 수 있다.
조직에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분위기를 맞추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다.
“김프로는 팀의 윤활유 같은 존재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이건 동시에 경고이기도 하다.
윤활유는 윤활유일뿐,
엔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힘의 원동력과 방향을 만들 수는 없다.
주체적인 힘이 없는 것이다.
관계중독자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일을 못하는 것보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더 불편하다.
그래서 관계를 유지한다.
아니, 유지하려고 애쓴다.
이때의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방식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더 많은 배려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내 기준을 드러내는 표현,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
이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이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은 계속해서
나를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좋은 관계는 잘 맞춰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좋은 관계는
맞추는 것이 아니라,
걸러지는 과정에서도 남게 된다.
떠날 사람은 떠난다.
그리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관계를 유지하는 말은 어렵지 않다.
맞추면 된다.
하지만 나를 지키는 말은 어렵다.
드러내야 하고, 거절해야 하고, 때로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나는 관계를 지키는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키는 말을 할 것인가.
관계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나를 잃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우는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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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