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죽을꺼] 연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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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댁에 갔던 어느 날 물건을 찾느라 어머니의 화장대를 열게 되었다.
그 안에는 작은 상자가 있었는데 ‘이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호기심에 열어보게 되었다.
건들면 다 부서질 것 같은 오래된 종이를 펼쳐보니 거즈 덩어리가 나왔다.
조심스레 거즈 덩어리를 펼쳐보니 그 안에는 정체를 짐작 할 수 없는
말라 비틀어진 작은 나무줄기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께 물어보니 내가 태어났을 때 자른 탯줄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병원이 아닌 조산원에서 태어났다고도 했다.
그 옛날 누군가 저 탯줄을 보관해뒀다가 아이가 크게 아프면
그 탯줄을 달여먹으면 낫는다고 하여 보관해오고 있다고 하셨다.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아기가 태어났을 때 제대혈을 보관해두면,
나중에 아기가 아플 때 치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옛날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았을까.
어찌 됐든 내가 태어났을 때 어미와 나를 이어주던 탯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괜시리 기분이 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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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면 말라비틀어진 멸치 같기도 하고, 또 딱딱한 딱지 같기도 하다.
어미는 자신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를 낳으며,
이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아프면 어떨까 조심스러운 마음에 잘라낸 탯줄 하나를 소중히 간직했을 것이다.
다행히 어미의 품에서 나온 나는 잔병치레를 자주 하기는 하지만 이젠 마흔이 넘어 이런 저런 수술을 받으며 고쳐쓰고 있는 몸이지만, 그래도 큰 아픔없이 무사히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얼마전에는 담낭에 담석과 만성담낭염으로 복강경 수술을 받아 탯줄이 있던 자리, 그 배꼽에 불룩한 흉터 하나를 갖게 되었다.
이제 어미는 나를 낳은지 40여년이 지나 할머니라 불리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저 말라비틀어진 탯줄 하나를 버리지 않고 끝끝내 간직하고 있다.
내 자식이 아프면 어떻게라도 살려내겠다는 어미로써의 마지막 결기인가
아니면 열달동안 뱃속에 품으며 탯줄로 먹이고 키운 자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픈 증명서와 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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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찾아다니다 보니 가끔 자식을 잃은 아비를 그리고 어미를 만날 때가 있다.
어쩌면 그들도 탯줄이라도 달여 먹였으면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먹고 살기 위해 험한 일을 시키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가 죽지 않았을까.
공부를 더 시켰다면, 집이라도 한 채 사주었다면, 돈이라도 쥐어줬다면 죽지 않았을까.
마지막까지 품에 안고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까.
말라 비틀어진 탯줄을 만지작 거리며 눈물 흘리고 있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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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비틀어진 탯줄처럼
이제 어미도 늙고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그 몸에서 태어났다는
그래서 나는 당신의 자식이라는
그 사실 하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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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먼 훗날 어미도 떠나고
나도 세상을 떠날 때
탯줄을 손에 꼭 쥐고 다시 흙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줄을 쫓아 다음생에는 내가 부모가 되어
이 생에 받은 은혜를 다시 갚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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