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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웰다잉 플래너 Mar 29. 2021

나도 인기 강사가 되고 싶다.

[어차피 죽을꺼]연재 3


오전 11시. 한 교회에 웰다잉 수업을 하러 가게 되었다. 담당 목사님께서 어르신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교육일 것 같다고, 의욕적으로 추진하셨고, 그런 부름에 감사하며 기꺼이 찾아뵙게 되었다. 교육을 들으시는 분들은 교회를 다니는 어르신들이시고, 한 백 여분 정도가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교육을 마친 이후에는 교회에서 점심 식사를 드시고 귀가한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큰 규모의 많은 분들이라 서로 각자의 생각과 경험들을 이야기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  며칠 전부터 강의 내용을 신경 쓰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며 찾아가게 되었다. 


한 시간여를 운전하여 도착한 경기도의 한 교회. 매주 1회, 1시간씩 총 여덟 번의 만남이 예정되었고 그 첫 번째 만남이었다. 교회는 건물도 크고, 깨끗하고 단아했다. 사실 교육을 다녀보면 최근에는 복지관들보다 왠만한 교회의 시설들이 음향장비나 시스템이 훨씬 잘 되어있다. 긴장되는 마음을 추슬러며 교육 30분 전, 교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뭐랄까 뭔가 마음이 싸했다. 나름대로 강사 생활하면서 생긴 직감이란게 있는데, 여지없이 그날의 직감이 뭔가 착 달라붙는 느낌이 아니라 빳빳하고 긴장된 기분이었다. 현관에서 안내해주시는 봉사자분들과 교육 담당자 분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도대체 이 싸한 기분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감이 오지 않았는데, 30분 뒤 나는 그 싸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고 교육 장소로 이동하면서 그 싸함의 정체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 교육 장에는 쿵쿵 거리는 우퍼음과 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성이 가득했다. 교육 시작 20분전. 도대체 그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문을 열고 교육장으로 들어가보니 아뿔싸. 어르신들이 빽빽이 가득찬 그 곳에서는 환한 미소와 열광적인 박수와 함께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 못지않게 어르신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흥이 나 계셨고, 중간중간 흥이 난 어르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계셨다. 앞에는 정말 누가 봐도 노련하고 즐겁게 장내를 휘저으시며 노래를 가르치시는 노래 교실 강사님이 계셨다. 



나도 모르게 아.... 탄식이 흘러 나왔다. 그 탄식은 단지 노래교실 강사님의 반짝이가 가득한 화려한 중절모를 바라보며 놀라는 탄식이 아니었다. 이 노래교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바로 그 다음 시간이 내 수업 시간인데. 심지어 나는 죽는 이야기를 해야 되는 사람인데. 이 분위기를 어떻게 이어 받아야 할까. 심지어 나는 노래도 못부르고 옷도 반짝이가 아닌데. 마음이 쪼그라들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때와 장소와 상황이 맞아야 한다. 분위기가 정돈되지 않으면, 나도 수업의 페이스를 잃게 되고, 교육을 들으시는 분들도 지루하게 된다. 어찌해야 할까. 


곧 노래교실 수업이 끝났고 교육 담당자가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주신 노래교실 선생님께 다시 한번 박수를 쳐주십사 청하고 안내멘트를 한다. 

“네 바로 다음 시간이 이어질꺼니까요 어르신들. 화장실 용무 있으신 분들만 개별적으로 다녀오시고, 이어서 수업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서 나에게 전하는 말. “저도 이 수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또 죽음 어쩌구 저쩌구 미리 말씀 드리면 처음부터 나가실지 몰라서 말씀 드리지 않았어요. 강사님께서 어떤 수업인지 소개해주시고 수업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아. 수업 중에 난이도가 제일 높은 수업은 참여자가 교육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자발적으로 듣는 수업이다. 더군다나 아직도 어르신들은 노래교실의 여흥이 끝나지 않은 채 붉게 상기된 얼굴로 도대체 저 젊은 양반은 누구일까, 왜 우리의 즐거운 노래교실을 끝내고 들어왔을까. 얼마나 우리를 재미있게 해줄까. 무슨 이야기를 할려고 그럴까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초반 기싸움에서 밀리면 수업의 주도권을 놓치게 된다. 200여개의 눈싸움에서 져선 안된다. 마이크를 쥐고 ‘밀리지 말자’ 기합을 넣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어르신들! 안녕하세요! 노래 교실 수업 즐거우셨어요? 아이코 저도 노래를 못해서 다음부터는 좀 일찍 와서 우리 어르신들이랑 같이 노래교실 수업 들어야겠어요. 그런데 어쩌죠? 저는 노래교실 선생님처럼 노래도 못부르고, 즐겁게도 못해드리고, 옷도 이쁜 걸 못입고 왔는데. 

그런데 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한번 배워야 하는 거를 알려드리려고 왔어요. 잘 죽는 법! 돈 많이 안쓰고 안아프게 편안하게 하느님 품안에 안기는 법! 잘 죽는거를 도와주는 사람이에요. 아휴 세상에 별에별 직업이 다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잘 죽는 거까지 도와주는 사람이 있데요. 제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인데요. 궁금하시죠? 어떤 이야기 인지 한번 들어보실까요? 어떻게 하면 잘 살다 잘 죽을 수 있는지? ^^”


이렇게 해서 시작된 수업. 수업 시작 후 첫 10분이 전체 수업을 좌우하고, 총 8회기의 수업 중에 첫 회기 수업이 앞으로의 수업을 좌우한다. 이내 웃음이 가득했던 표정에서 호기심 어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집중하신다. 50여분의 시간이 지나 다행히 첫 번째 수업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어르신들과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배웅을 한다. 

“선생님. 오늘 중요한거 배웠어요. 감사해요. 그렇잖아도 내가 앞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뭘 준비해야 하나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목조목 하나 하나 알게 되어서 마음에 짐을 좀 내려놓는 것 같아요. 무섭지 않았냐고? 노래 부르고 웃고 떠드는 것도 좋지만 이런 수업을 또 어디서 배워요. 아휴 난 너무 좋았어. 다음주에 또 오시죠?”  


   

나도 인기 강사가 되고 싶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수업을 하러 갈 때마다 참 부러운 강사분들이 계신다. 노래교실, 레크리에이션, 웃음치료, 건강 체조 등등. 이 분들은 어르신들의 열열한 성원을 받으며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신다. 나름대로의 팬덤을 자랑하기도 하시고, 수업시간에는 음료수와 사탕, 다양한 간식꺼리가 늘 쌓여있다. “우리 선생님, 우리 선생님” 쉬는 시간에도 어르신들에게 둘러 쌓여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강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애정이 흘러 넘친다. 


반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분들에 비하면 호불호가 갈린다. 수업의 인기는 당연히 노래교실과 건강체조보다 적다. 첫 만남에서 어르신들의 경계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내가 죽는 걸 배우러 왔는데 저렇게 새파랗게 젊은 양반이 감히 얼마나 살아봤다구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고? 내가 저런 양반한테 배워야 돼?’ 어떤 말은 굳이 입으로 꺼내지 않아도 시선에서 느껴진다. 본격적으로 웰다잉 강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35살이었으니 이제 갓 마흔을 넘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나은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경계를 풀고, 진지하게 수업을 들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왕왕 수업 중간 자리를 박차고 헛기침을 하며 나가시는 분들도 계신다. 심지어 복지관에서 어르신들께 수업 안내를 위해 보낸 문자메세지에 죽음준비교육, 웰다잉 교육 문구를 본 자녀나 손자들이 깜짝 놀라 부모님을 만류하는 경우도 있고, 복지관에 민원 전화를 넣으시는 경우도 있었다. 또 자발적으로 수업을 신청하신 어르신들도 진지하시며 철학적이시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과 슬픔을 마주하고 찾아오신 경우도 많다. 그렇게 그분들 앞에서 나는 죽음을 펼쳐놓고 이야기 한다. 수업을 마치고도 쉬이 아픈 마음을 달래지 못해 손을 꼭 잡고 눈물 흘리시거나, 혹은 연명의료중단과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을 말씀하신다. 본인의 장례식을 말씀하신다.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하고 귀를 기울인다. 



나도 인기 강사가 되고 싶다. 그런데 나는 인기 강사가 될 수 없다. 웃음을 주는 강사도 필요하지만 눈물을 닦아주는 강사도 필요하다. 삶을 펼치는 강사도 필요하지만 거두는 강사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인기 강사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먼 훗날 꼭 한번 나를 만난 어르신들께 잊혀지지 않는 강사가 되고 싶다. 그 때 만난 그 양반 때문에, 그 선생 때문에 그래도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삶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덜 아프게, 돈 많이 안쓰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서와 화해를 하며, 다 내려놓고 돌아설 수 있었다고, 미리 알려줘서 고마웠다고, 그래서 잘 준비했다고. 딱 한번이라도 기억에 남는다면, 강사로써 참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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