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시행 후 불법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소비자 간 정보 차이로 손해 보는 사람만 늘어난 셈이다.
내가 현재 쓰고 있는 갤럭시 A90 5G는 삼성의 보급형 스마트폰이다. 모델명의 A는 보급형이라는 의미이고 숫자 2개 중 첫 번째 9는 성능의 척도를 가리킨다. 첫 번째 자리가 높을수록 성능이 좋다는 의미다. 두 번째 0은 해당 시리즈에서 모델이 나온 순서를 가리킨다.
이 핸드폰의 모델명을 풀이하자면 플래그십과 동일한 CPU 칩셋을 사용한 모델 중 가장 먼저 나온 스마트폰이고 5G를 지원한다는 의미가 된다.
핸드폰을 쉽게 바꾸지는 않는 나에게 이 A90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무료 폰이나 중고폰으로 기기 변경을 하지 않은 경우이면서 나름대로 핸드폰에 돈과 발품을 들인 사례다.
단통법 이후로 핸드폰을 바꾸는 일은 꽤나 골치가 아파졌다. 단통법 이전처럼 대리점이 알아서 불법 보조금을 줘가며 핸드폰을 싸게 바꿔주는 일이 없어졌다.
불법 보조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암암리에 많은 대리점들이 불법 보조금을 제공한다. 소비자들은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곳을 찾아다닌다.
성지란 핸드폰을 싸게 바꿀 수 있는 특별한 대리점을 가리킨다. 온라인으로만 핸드폰을 살 수 있는 곳일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 어딘가 음습한 장소를 빌려 임시적으로 운영하는 대리점일 수도 있다.
이런 성지를 통해 핸드폰을 바꾸는 건 물론 불법이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인터넷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법 보조금을 주는 성지를 찾아낼 수 있다.
단통법 시행 후 불법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소비자 간 정보 차이로 손해 보는 사람만 늘어난 셈이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 성지를 찾지 못해 결국 제값을 다 주고 핸드폰을 바꾸게 된다. 물론 합법적인 보조금도 널뛰기를 하듯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경우가 있긴 하다. 이것도 일종의 정보 싸움이다.
핸드폰을 판매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합법적인 보조금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해당 모델이 판매를 막 시작하는 시기라고 한다. 재빠르게 신모델이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고 있다가 구매를 한다면 그나마 손해를 덜 보는 일이 된다.
핸드폰을 바꾸기 전에 기본적인 용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합법 보조금을 받고 핸드폰을 바꾸든 불법 보조금을 받고 핸드폰을 바꾸든 마찬가지다.
무릎이라든가 내방, 꽃다발 같은 은어도 있지만 이는 불법 보조금을 받아서 쓸 경우에만 필요하니 여기서는 합법 보조금을 받을 경우의 용어만 설명하겠다. 기변, 번이, 신규가입, 할부원금과 같은 단어들이 그것이다.
기변이란 기기변경의 준말로 자급제 핸드폰을 사서 유심 등록을 하거나 통신사를 바꾸지 않고 기계만 새로 사는 경우를 가리킨다.
번이는 번호이동의 준말로 통신사를 바꾸면서 기계도 같이 바꾸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때가 가장 보조금이 많이 나오는 경우인데 KT에서 SK로 바꾸는 것보다 시장 점유율이 낮은 LG로 바꾸는 것이 보조금이 더 많이 나온다.
아예 통신사에 신규로 가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도 보조금이 많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기기변경, 번호 이동, 신규 가입 중 가장 보조금이 낮게 나오는 경우는 기기변경으로 부가 서비스나 과도한 요금제가 싫다면 선택해야 할 방법이다.
할부원금이란 할부로 휴대폰을 구입할 때 기계의 실제 가격을 말한다. 만약 할부원금이 24만 원인 휴대폰을 24개월 할부로 구입한다면 월할부원금은 1만 원이 된다.
소비자는 쓰고 있는 요금제 금액에 더해 1만 원을 앞으로 24개월 동안 지급해야 한다. 핸드폰을 살 때 할부원금이 얼마인지 똑바로 계산해보지 않으면 싸게 산 느낌은 들지만 실제로는 바가지를 쓴 경우도 생긴다.
대리점에서 핸드폰을 바꿀 때 점원이 계산기를 탁탁 쳐보며 한 달에 이 정도 금액을 더 내시면 되요라고 말한다면 할부원금이 얼마인지, 위약금은 얼마인지 물어보자. 그 정도만 해도 핸드폰을 제대로 바꾸는 첫걸음을 뗀 것이라 할 수 있다.
핸드폰의 정확한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 이것이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핸드폰의 가격에는 단말기 출고가와 실구매가가 있다. 단말기 출고가는 제조사에서 책정한 기계의 실제 가격을 의미한다. 할부원금은 이 단말기 출고가에서 통신사 보조금을 뺀 가격이다.
실구매가는 통신사의 가격 인하 정책 2가지를 알고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 통신사에서는 보조금과 요금할인을 통해 핸드폰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요금할인은 선택 약정을 가리키며 통신사의 보조금(공시 지원금)을 받는 대신에 통신 요금의 25%를 할인받는 제도다. 선택 약정을 받게 되면 12개월 또는 24개월 약정이 들어가게 된다. 물론 약정이란 말은 중간에 핸드폰을 분실하는 등의 교체 사유가 발생하면 위약금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경우에는 갤럭시 A90 5G 출고가가 89만 9800원이었다. 통신사를 바꾸지 않고 기기만 변경해서 보조금이 20만 원 정도 나왔다. 할부원금은 70만 원 정도였다.
만약 여기에서 불법 보조금을 받았다면 할부원금이 0원이 되는 것도 가능하며 때에 따라서는 마이너스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돈을 받는 경우도 있다.
물론 부가서비스 만원 짜리를 1개월 정도 의무로 써야 하고 7~8만 원대의 비싼 요금제를 6개월 유지해야 한다. 이 조건을 두고 득실을 따져보면 불법 보조금을 받을 경우 핸드폰을 공짜로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현재는 갤럭시 A90 5G가 출시된 지 몇 년이 흘러서 KT의 경우 출고가가 55만 원으로 떨어졌고 슈퍼플랜 베이직 요금제를 쓸 경우 보조금 48만 원, 합법적인 추가 지원금 7만 원을 더해 할부원금 0원에 핸드폰을 바꿀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핸드폰을 싸게 바꾸는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불법 보조금을 받는 것.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다 보면 언젠가는 방법을 찾게 된다. 하지만 불법을 저질렀다는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핸드폰이 출시되고 1년이나 2년이 흐른 후에 사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단말기 출고가가 내려가서 싼 값에 좋은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 그 사이에 다른 핸드폰의 성능이 좋아지니 크게 봐서는 사람에 따라 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핸드폰을 바꾸는 일은 골치가 아프다. 돈이 많다면 플래그십 핸드폰을 출고가 그대로 다 지급하고 사는 게 속 편하다. 하지만 100만 원 혹은 200만 원을 넘는 핸드폰을 그렇게 속 시원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때문에 인터넷 세계에서는 오늘도 핸드폰 용어 공부를 해가며 어떻게 1만 원이라도 더 싸게 핸드폰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여기서 단통법의 어리석음이라거나 단통법이 악법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건 현재 휴대폰 시장은 소비자들을 기만하기 쉬운 체제라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불법 보조금을 많이 받더라도 비싼 요금제를 통해 수익을 보전하려는 통신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불법 보조금은 개인에게는 잠깐 이득일지 몰라도 공동체 전체로 봐서는 장기적으로 손해인 선택이다. 방통위든 산자부든 이 혼탁한 핸드폰 시장을 바꿔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by 벨레 매거진
갤럭시 A90 5G
사진 출처 :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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